심지어 벌써 11년차
어린 시절 내 꿈은 시도 때도 없이 바뀌었다. 발레를 배우니까 발레리나, 피아노 잘 치는 사람 멋있으니까 피아니스트, 책 읽는 게 너무 좋아서 작가. 그 수 많은 장래희망 중에서 선생님은 없었다.
그랬던 내가
선생님이 되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내 안에 무언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좋은 선생님들도 만났지만 이상한 선생님들도 많이 만났다. 나에게 선생님은 그냥 그 뿐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가 자신의 선생님과 편지를 주고 받는게 아닌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연락하고 싶은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게 너무 놀라웠다.
나에게도 그런 선생님이 있었을까 하면서 친구가 너무 부러워졌다. 그리고 내가 그런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기억으로 남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좋은 선생님까지는 못되더라도 떠올리면 좋은 점이 있는 선생님은 되어야지 라고 생각했다.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지. 학창시절에 만났던 그런 선생님들처럼 되지 말아야지.
교대에서의 대학생활은 불만족스러웠다. 그래서 1학기 교생실습을 해보고도 잘 맞지 않으면 그만두려고 했다. 그런데 고작 1주일의 교생 실습 후 나는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주일 동안 나는 아이들의 글쓰기 공책을 검사해주고 수업시간에는 담임선생님의 수업을 참관하며 쉬는 시간엔 아이들과 이야기를 했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좋았다.
교실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많이 써서 집에 가면 쓰러지기 바빴지만 아이들이 참 예뻤다. 처음 본 나에게 학교에 대해 알려주는 아이도, 이것저것 질문을 쏟아내는 아이도, 어색해서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는 아이도 예뻤다.
참관 실습이었기 때문에 5일 동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도 교생실습이 끝나는 날 더 아이들에게 더 해주지 못해서 아쉬웠다.
5일동안 고마웠다며 스승의 은혜를 불러주는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게도 눈물이 났다. 다음에 만나게 될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겠다는 다짐을 하며 나는 선생님이 되기로 했다.
나는 선생님이다. 이 한 문장을 글로 남기기까지 11년이 걸렸다. 선생님이라고 했을 때 뒤 따라오는 무수히 많은 말들이 나를 아프게 했으므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올해가 되어서야 알았다. 10년 넘게 해 온 일을 숨길 수 없다는 걸. 내가 했던 일을 부정하고 살 수는 없다는 걸.
이 글을 발행하기까지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브런치 작가가 되었으면서도 몇 달이나 걸렸다. 더 이상 뒤로 숨지 않고 지난 10년을 포함해서 교실 속 우리의 이야기를 남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