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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아무르 Dec 08. 2022

22. 나는 학교를 좋아하지 않았어.

그림책 <엄마의 손뽀뽀>

다경아,


   너는 학교를 좋아했어? 나는 학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아. 학교는 늘 스트레스가 가득한 장소라고 생각했어. 강압적인 선생님들과 규칙들, 교실 아이들 사이의 관계, 더러운 화장실까지. 물론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좋았지만 그 즐거움은 짧은 쉬는 시간 혹은 집에 가는 길에서나 느낄 수 있는 찰나의 것이었지. 나는 얌전하고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어. 내가 학교의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은 눈에 띄지 않기 위함이었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이었어. 나는 체육시간을 무척 싫어했어. 체육을 못 했거든. 비가 와서 체육시간이 취소되면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하는 것은 나뿐이었지. 아니, 모르지, 나 같이 속으로 좋아했을 학생이 또 있었을지도. 나는 학교 아이들 간의 힘의 논리를 볼 때마다 사람이 만드는 집단은 참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나의 비겁함에 치를 떨었지. 중학교 때, 한 때 잘 지내던 친구가 하나 있었어. 무척 친해서 늘 이야기하고 그러진 않았지만 그래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아이가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어. 반 아이들 전체에게 따돌림을 당했다기보다는 교실 집단에서 힘이 센 아이들이 그 아이를 괴롭혔어. 아이가 쉬는 시간에 앉아있으면 힘이 센 아이들은 옆에 가서 이죽거리거나 종이를 뭉쳐 아이에게 던졌어. 나는 그때 뭘 했는 줄 알아? 내 자리에 앉아 그걸 보기만 했지. 힘이 센 아이들이 무서웠어. 나도 초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해봤는데 다시 그 자리로 가게 될 까 봐 두려웠어. 그러면서도 가만히 있는 내가 역겨웠어. 나는 그 힘센 아이들을 다 밀치고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를 위해 외치는 상상을 했어. 이게 재밌어? 그런 너희가 인간이니?


난 두려움에 그 친구를 돕지 못했고 그 친구는 결국 전학을 갔어.  


뭐.. 어쨌든, 난 이런 점들 때문에 학교가 싫었어. 싫었던 이유가 또 하나 있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거였지. 아침잠이 많은 나는 늘 상상했어. 학교가 열 시에 시작하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 학교에 안 가는 지금은 너무 좋아. 난 다시 어린이나 청소년이 되는 것이 싫은데 솔직히 그 당시 성장하며 겪는 모든 마음의 바람이 힘겹고 어른에 의해 정해진 규칙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 버겁기 때문이야.


그래서 준호가 단체 생활에 적응을 잘하지 못했을 때, 준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어. 물론 이해만 했어. 매일 안 가겠다고 문고리 잡고 매달리는 애를 억지로 데리고 가는 고통은 이해를 넘어서기도 했거든. 어떤 날은 한숨 쉬고 어떤 날은 공감의 말을 하고 어떤 날은 소리를 지르고 어떤 날은 단체생활의 행복에 대해 떠들어댔지. (그 행복에 공감하지도 않으면서 말이야.)


준호는 18개월부터인가 단체생활을 시작했어. 그때부터 지옥문이 열리기 시작했지. 아이는 매일 울었어. 길을 가다가도 땅에 구르며 울기도 했고 겨우 문 앞에 다다르면 어린이집 문고리를 잡고 놓지를 않았어. 안 들어간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들어간다고 버텼지. 그러면 나는 아이를 억지로 안아서 교실에 데려다 놓았어. 그리고 빠르게 인사하고 돌아섰지. 시간을 끌면 끌수록, 아이의 마음에 공감을 해주면 해줄수록 아이의 울음은 더 커졌거든. 매일 아침 마음이 좋지 않았어. 단체 생활을 이토록 싫어하고 적응도 못하는 애를 이렇게 끝까지 밀어 넣어야 할까 매일을 고민했지. 어느 날은 우는 아이를 어린이집 교실에 억지로 데려다 놓았는데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준호를 보았어. 준호는 울면서 발을 굴렀지만 달래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아는 선생님들은 준호가 혼자 울도록 놔두었어. 프랑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그런 식이야. 들어가는 순간 잠깐은 안아줄 수 있지만 그래도 진정하지 못하면 혼자 울고 있어야 해. 만약 울음소리가 너무 커서 방해가 된다고 여겨지면 아이는 구석으로 옮겨져. 어느 날은 선생님이 그러셨어. 준호는 엄마가 없어서 슬퍼서 운다기보다는 분노에 가까운 감정으로 운다고. 준호는 늘 사건이 많았어. 누가 준호를 때렸다던지, 할퀴었다던지, 어디 숨어서 혼자 울고 있었다던지. 나는 이게 준호가 만만한 성격이라 아이들에게 당하느라고 그러는 줄 알았어. 그런데 리아를 기관에 보내면서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리아는 학교보다 집을 선호하긴 하지만, 늘 교실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쭈뼛쭈뼛하지만 울지는 않아. 그리고 학교에서 누가 때렸다느니 하는 문제도 없지. 준호에게서는 유치원 마지막 해가 되어서야 친구라는 말을 들었는데 리아는 유치원 첫 해인 데도 친구라는 말을 자주 해. 왜 그럴까 가만 생각해보니 리아는 포기도 빠르고 양보도 잘하며 고집도 세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 그리고 수줍지만 기본적으로 관계를 좋아하고 그걸 표현하는데도 망설임이 없지. 하지만 준호는 포기가 어려운 아이야. 아마 어떤 아이에게 맞았다면 주노가 뭔가 고집을 부렸기 때문일 거야. 맞는 한이 있어도 이건 못 준다는 마음으로 말이야.


아무튼, 매일 우는 아이를 기관에 맡긴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기에 아이를 안심시킬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다녔어. 엄마 냄새가 나는 물건을 주면 좋다고 해서 내 체취가 담긴 스카프를 주고 간 적도 있고, 울고 들어가지 않으면 사탕이나 초콜릿을 준다고 한 적도 있지. 아이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이야기할 때 나는 알면서도 그 내용을 전혀 몰랐다는 듯이 놀라며 말한 적도 있어. ‘와, 그런 뜻이 있구나. 엄마는 몰랐는데 너한테 들으니까 되게 재미있다. 학교에서 또 뭔가 배우면 엄마한테 알려줄래?’ 아이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붙잡으며 그러겠다고 했어. 그런데 이 모든 방법의 효과는 며칠뿐이거나 집을 나설 때뿐이었어. 결국 학교 문 앞에서 울고불고하면서 여러 가지 사건 사고를 일으켰지. 정말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지만 지나고 나니 다 추억이다. 그래도 좋은 추억은 아니야. 하하.


내가 한국에 갔을 때, 네가 책을 한가득 선물해줬었지? 난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어. 외국 살면서 귀하디 귀한 게 아이들 한국어 책이거든. 네가 그 귀한 걸 엄청나게 선물해줬지. 그중에 한 권이 나와 준호의 등교 전쟁 정복기를 떠오르게 하더라. 그건 바로 <엄마의 손뽀뽀>였어. 준호가 기관에 가는 걸 어려워할 때, 어떤 학무보가 추천해준 방법이 있었어. 교실에 도착하면, 문 앞에서 아이의 손에 볼펜으로 하트를 그려주는 거지. 그리고 그 하트에 엄마의 마음이 가득 있다고 엄마가 보고 싶으면 손을 펴서 그 하트를 보라고 하라는 거야. 나는 그 방법에 엄청 반해서 바로 써먹었어. 


나는 알려준 사람의 방법을 응용해서 아이에게도 내 손에 하트를 그려달라고 했어. 아이가 없는 동안 아이가 보고 싶으면 손을 펴서 아이를 생각할 수 있게 말이야. 이 방법은 그래도 꽤 성과가 있었어. 


어때! <엄마의 손뽀뽀>와 비슷하지? 이 책 맨 앞에 이런 글이 나오잖아. “사랑과 용기가 필요한 어린이들에게” 정말 딱 맞는 말 같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주변인의 지지와 본인의 용기가 필요하지. 그리고 그 용기라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 <투 더 본>이라는 영화에서는 용기는 석탄을 삼키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용기가 특히나 더 필요한 사람에게는 정말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했어. 


아무튼, 나 정말 이 책을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 역시 사람들 생각이 다 비슷비슷하구나! 하면서. 여기에는 나와 준호의 모습이 그대로 들어가 있어. 아기 너구리 체스터는 익숙한 환경인 집에서 엄마랑 놀고 싶다고 말하지. 그러면 엄마는 기관이라는 새로운 장소에 대한 장점을 설명해줘. 새 친구, 새 장난감, 새 책, 새 그네… 그다음에는 손 뽀뽀로 아이의 마음에 사랑과 안정을 가져다 주지. 엄마는 늘 너를 생각하고 네가 힘들 때 엄마를 생각하라는 그 마음 말이야. 


난 정말 아직도 너무 신기해. 아이들에게 엄마가 전부일 수 있다는 그 사실이. 물론 한 때지만 말이야. 그러다가 서로 애증의 관계가 되는 것도 너무 흥미롭지 않아? 그렇게 서로를 사랑하던, 마치 한 몸 같던 두 사람이 각각의 개체가 되어 서로를 사랑하다가 미워하다가 이해하다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관계가. 가족을 이룬다는 것, 특히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인생의 많은 맛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 정말이지 너무 힘든데, 난 그래도 추천하고 싶어. 결혼, 출산, 육아가 내게 신경정신과 약을 먹게 하였는데도 난 그 경험이 정말이지 한 번은 해볼 만한 경험인 것 같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과 경험의 폭이 순식간에 늘어나는 것 같거든. 


아무튼! 그렇게 볼펜으로 그림을 그려주다가 준호가 그러는 거야. 학교에서 손을 씻으니까 하트가 지워진다고. 그때부터는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려주었지. 너구리 체스터의 손뽀뽀처럼 말이야. 그리고 주먹을 꼬옥 쥐어주면서 잘 간직하라고 했어. 근데 그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덜 효과적인 것 같았어. 아이의 표정에 실망이 가득했거든. 그래서 아이의 바지 주머니에 하트를 그린 종이를 넣어주기 시작했어. 원래는 학교에 집의 물건을 가지고 가면 안 되거든. 그래서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종이를 꺼내지 말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종이를 만지라고 했지. 너와 나만의 비밀이라고 신비감을 불어넣으며 말이야. 아이들 비밀 좋아하잖아. 와.. 나 정말로 많은 노력을 했다! 준호는 친구가 생긴 유치원 마지막 해에 그러니까 만 다섯 살에 우는 것을 멈추었어. 4년 만에 단체 생활이란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아무리 거부해봐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란 걸 이해했지. 그 뒤로는 아침 등굣길이 조금 편해진 것 같아. 


그런데 준호가 혼자서 집이 아닌 곳을 가야 할 때는 여전히 쪽지를 바지 주머니에 넣어주어야 했어. 준호는 불안이 높고 부끄러움이 하늘을 찌르는 아이니까. 한 번은 학교에서 제일 친한 친구 집에 가기로 했어. 이미 나하고 같이 여러 번 가본 곳이었는데 이번엔 나 없이 혼자 있기로 했지. 심지어 그 집은 같은 아파트에 걸어서 삼분이면 도착하는 곳이었어. 그런데 준호가 내게 쪽지를 써달라고 부탁하더라. 써달라고 한 말은 두 가지였어.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엄마에게 전화해 주세요.’ 난 쪽지 두 개를 써서 아이의 바지 주머니에 넣어주었어. 아이가 이걸 꺼내서 보여 줄 용기는 있을까, 의심하면서 말이지. 물론 말하지는 않았어. 주머니에 잘 넣어두었으니 필요할 때 잘 쓰라고 다독였어. 


이게 작년까지의 일이야. 지금은 불안을 다루는 물건이 종이에서 행운의 물건으로 바뀌었어.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예전 친구들과 떨어지게 되었는데 준호는 거의 기절 직전의 불안을 보였어. 준호가 성당을 구경하는 걸 좋아하거든? 우리가 굳이 일요일마다 미사를 드리거나 하는 건 아닌데 성당만 보면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 해. 그리고 내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이야기를 쉽게 설명해주느라고 저 사람은 사람들을 돕다가 다치게 된 영웅이라고 설명했거든. 아무튼, 준호는 그런 영웅을 좋아하더라고. 그래서 천주교인 부모님께 십자가 목걸이를 하나 부탁했어. 그런데 안전상의 이유로 목걸이를 하고 학교에 갈 수는 없다고 하더라. 여기는 유치원에서도 아이들은 목도리가 금지고 밴드 형태로 된 것으로 목을 따스히 해야 해. 아무튼 나는 목걸이를 할 수 없다길래 그걸 주머니에 넣어줄지 준호의 의견을 물었어.


“이 목걸이에 있는 사람이 너의 불안을 다 가져가 줄 거야. 이 사람이 그렇게 해준다고 여기 쓰여있어.”


실제로 목걸이에 그런 설명이 쓰여있었어. 불안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너를 지켜주겠다는 그런 말이 있었지. 준호는 처음에는 그냥 가겠다고 했어. 왜냐하면 유치원처럼 학교에 집의 물건을 가져가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을까 봐 불안해했거든. 나는 주머니에 숨겨두면 아무도 모를 테니 걱정 말라고 했지. 아이는 결국 그걸 주머니에 넣어갔어. 적응하기까지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많았어. 교장 선생님, 담임 선생님 면담까지 했다니까! 하지만 그것까지 상세히 말하진 않을게. 준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서? 하하.


준호는 그 목걸이를 두세 번 정도 더 가져갔어. 그리고 어떤 것에 기대지 않고도 스스로 불안을 이겨내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았어. 아이는 여전히 불안하고 예민해 보였지만 그걸 대신해줄 물건을 더 이상 찾지 않았거든. 아이가 자란다고 생각했어. 세상은 만만치 않잖아. 소심하고 예민하고 불안 높은 나의 아이도 자기 만의 생존법을 찾겠구나 싶더라. 이제 시작이겠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좋겠어. 나는 학창 시절에 그러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거든. 그때는 그게 괴롭힘인 줄도 모르고 아이들이 시키는 대로만 했는데, 돌아보니 그렇더라. 그런 일을 겪은 나도 더 자라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이렇게 편지를 쓰면서 마음을 채우고 있잖아. 준호도 그럴 거라고 믿어.

아픈 순간들도 있을 테지만 잘 이겨낼 거야. 그걸 보는 게 마음 아프겠지만 난 또 잘 응원할 거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든든한 엄마가 되고 싶어. 친구 같은 엄마 말고, 든든한 엄마. 



마른 낙엽 가슴인 내가 할 수 있을까? 뭐, 최고는 아니겠지만 최선은 다할 거라고 믿는다.


다경아, 문득 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넌 씩씩하니까.


추운 날씨야. 감기 조심해.


2022. 12. 4.


민영.





엄마의 손뽀뽀


글 : 오드리 펜

그림 : 루스하퍼, 낸시 리크

옮긴이 : 만두

스푼북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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