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경 Dec 15. 2022

23.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응원하며

그림책 <엄마 왜 안 와>, <엄마의 이상한 출근길> 외 2권

언니,


언니랑 준호의 등원/등교 전쟁 이야기가 웬만한 액션 영화보다 훨씬 흥미진진해서 완전히 몰입해서 읽었어. 물론 남 이야기 같지 않기도 했고. 우주도 한동안 아침마다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써서 등원 전쟁의 시기를 보낸 적이 있거든. 근데 언니 이야기를 들으니 우주의 등원 거부는 귀여운 수준이었던 것 같아. 

그런데 언니, 돌아보니까 나는 우주와의 등원 전쟁보다 나와의 전쟁을 더 치열하게 했던 것 같아. 우주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아무리 울며불며해도 막상 어린이집에 가면 아주 잘 논다고 들었어. 선생님들이 나를 안심시키려고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우주는 비교적 어린이집에서 잘 지냈던 것 같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마음이 편치 않았어. 우주는 만 11개월부터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왠지 모를 죄책감과 미안함에 사로잡혀서 이렇게 어린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내가 뭔가를 하는 게 맞나,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했어. 세상에 엄마가 전부 인, 그래서 엄마랑 한시도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내서 기관에 보내는 게 늘 마음에 걸렸거든. 아이가 조금만 아파도 내 탓인 것만 같고 뉴스에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라도 나오면 불안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에 통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지. 내 생활을 다 포기하고 아이만 양육할 수 있는 성질의 사람도 못되면서 말이야. 회사에 가든, 집안일을 하든, 아니면 파트타임으로 다른 일을 하거나 뭔가를 배우든, 엄마에겐 엄마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내가 나쁜 엄마인 것처럼 느껴지곤 했는데, 그런 마음이 나를 오랫동안 힘들게 했어. 어쩌면 아빠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엄마들 상당수는 나와 비슷한 감정과 싸우며 아이를 기관에 보내지 않을까 싶어.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프리랜서건 직장인이건 계속 쉬지 않고 일을 했는데, 우주를 임신했을 때는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고 있었어. 우주가 태어났을 때 나는 돌아갈 직장도, 어디에 소속된 곳도 없었는데 그게 참 불안하더라. 내가 원하던 나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아이만 키우다가 평생 집에서 살림만 하고 살게 될까 봐, 어떤 곳에서도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을까 봐 내 미래가 너무 암울하게 느껴지고 초조한 거야. 우주가 돌이 되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무슨 일이든 할 생각으로 첫 1년을 버텼어. 우주가 어린이집에 간 후 처음엔 프리랜서로 조금씩 일을 하기 시작하다가 아이가 두 돌이 지나서 지금 다니는 직장에 다닐 수 있게 되었어. 월급은 적어도 상관없다, 그냥 되기만 해라, 하면서 합격 소식을 기다렸는데 채용이 확정되고 얼마나 신났는지 몰라. 한동안은 매일 아침 출근길이 즐거워 미칠 지경이었다니까. 

그런데 매일 어린이집에 가더라도 항상 5시부터 잠자는 시간까지 나와 시간을 보내던 우주에게 나의 부재는 생각보다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나 봐.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다니는 직장은 근무 시간이 오전 11시부터 저녁 8시까지라서 집에 가면 9시가 넘거든. 우주 입장에서는 하루 온종일 엄마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날이 반복되는 거야. 고작 세 살 된 아이에게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까. 우주는 내가 야근이라도 하는 날엔 울면서 엄마를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어. 결국 내가 직장에 다니고 6개월 만에 우주는 심각한 분리불안 증세를 갖게 됐지.

그 당시에 우주는 나랑 같이 놀다가도 내가 잠깐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면 울고, 노는 내내 내 손을 붙잡고 있느라 편하게 놀지도 못했어. 부엌에 물을 가지러 가는 것도, 화장실에 가는 것도, 잠깐 쓰레기를 버리러 밖에 나가는 것도 할 수가 없었어. 아기 때부터 ‘엄마 껌딱지’ 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때 우주의 상태는 정말 심각했고, 나는 그런 우주 때문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지쳐갔어. 얼마 안 되는 월급, 별거 아닌 커리어와 맞바꾼 내 삶의 다른 일부(어쩌면 아이에겐 제 삶의 전부)를 계속 견주며 퇴사를 고민했지. 


하지만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어.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지금 여기서 그만두면 나에겐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것 같았거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엄마가 일을 하는 상황에 대해 아이에게 끊임없이 설명하고 이해를 시키는 것과 항상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안심시켜주는 것뿐이었어. 그래서 우주랑 함께 본 책이 정말 많은데 그중에 좋았던 책 몇 권을 오늘 소개할까 해. 이제 준호는 훌쩍 커서 언니에게는 그렇게 필요한 그림책이 아닐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우리의 편지는 수신자가 많으니까, 나와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다른 엄마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면 좋겠다.


첫 번째 책은 고정순 작가의 <엄마 왜 안 와>라는 그림책이야.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에게 엄마가 빨리 가지 못하는 상황과 아이에게 빨리 가려고 열심히 애쓰는 엄마의 모습을 재치 있고 따뜻하게 담고 있어.


“엄마, 언제 와?”라고 묻는 아이에게 엄마가 집에 가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 중요한 순간 꼭 말썽을 일으키는 프린터기를 두고 ‘자꾸만 토하는 코끼리를 만났다’고 이야기하고, 끝나지 않는 회의 상황을 ‘갑자기 길 잃은 동물 친구들을 만나서 길을 찾아주고 간다’고 말해. 

아이는 재차 말하지. “엄마, 빨리 와.”

계속 울려대는 전화를 받으며 엄마는 말해. “잠 안 자고 울어 대는 새들이 모두 잠들면 곧 갈게.”

산더미 같은 서류를 내미는 상사의 잔소리를 들으면서는 이렇게 말해. “화가 잔뜩 난 꽥꽥이 오리를 만났지만 엄마가 잘 해결하고 갈게.”


회사에서 고군분투하다가 만원 지하철을 타고 부랴부랴 마트에서 장을 봐가지고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가는 엄마의 모습은 모든 워킹맘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아. 힘들지만 아이가 있어 씩씩하다는 엄마의 말은 나에게도 지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주고, ‘언제나 나를 기다려 준 네게로 무사히 돌아올 거야’라고 말하는 엄마의 말은 내 온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읽어주게 만들어. 나의 마음과도 같은 이 말이 우주에게도 꼭 전해졌으면 해서 말이야. 

이 책을 처음 우주에게 보여줬을 때는 책에 나오는 비유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지 책에 별 관심이 없었어. 그런데 얼마 전에 내가 야근하는 날, ‘엄마 왜 안 와’하고 묻는 우주에게 남편이 이 책을 읽어주었대.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우주가 그랬다더라. “이 아이 마음이 지금 내 마음이랑 똑같네.”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돌아가지 못해 초조한 엄마의 마음도, 우주를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엄마의 마음도 우주가 읽었을까. 


그다음 소개할 책은 김영진 작가의 <엄마도 회사에서 내 생각해?>랑 <엄마의 이상한 출근길>이라는 그림책이야. <엄마 왜 안 와>가 일하는 엄마의 상황을 우화처럼 표현했다면 이 두 책은 일하는 엄마의 현실을 굉장히 사실감 있게 표현해서 우주랑 이야기할 거리가 많았어. 장면 하나하나가 꼭 우리의 이야기 같거든. 물론 <엄마의 이상한 출근길>은 그림책 특유의 상상력이 가득 담겨있긴 하지만 말이야.


이게 <엄마는 회사에서 내 생각해?>의 첫 장면이야. 꿈나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아이를 깨워서 억지로 밥을 먹이고 ‘빨리빨리’ 하라고 재촉하는 것도, 지각할까 봐 조급한 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회사에 안 가면 안 되냐고 묻는 아이의 모습도 모두 다 나랑 우주의 모습 같아서 웃음이 나더라.

이 그림책은 회사에 간 엄마와 유치원에 간 아이의 하루 모습이 계속 병렬식으로 보여져. 왼쪽엔 회사에서 엄마의 모습, 오른쪽엔 유치원에서 아이의 모습. 엄마는 엄마대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아이는 아이대로 유치원에서 하루 일과를 보내. 때로는 즐겁지만 때로는 속상한 일도 생기지. 상사에게 혼난다거나 친구와 싸운다거나 하는 일처럼.

퇴근이 늦어져 초조해하는 엄마와 엄마를 기다리느라 제일 늦게까지 교실에 남은 아이의 모습이 나오는 장면은 정말이지 남 이야기 같지가 않았어. 어린이집 다닐 때 우주는 늘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아이였거든. 야속할 정도로 다들 빨리 하원을 해서 나는 매번 숨을 헐떡이며, 죄짓는 마음으로 우주를 데리러 가곤 했어.

나는 우주랑 ‘엄마도 회사에서 이래’, ‘엄마도 이런 날 있었는데’ 하면서 이 책을 같이 봤어. ‘우주는 엄마가 늦게 데리러 갔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 물어보기도 하고. 우주에겐 알기 어려운 ‘회사’라는 곳의 이미지나 엄마가 보내는 하루의 모습을 조금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난 이 책이 참 좋았어. 

<엄마의 이상한 출근길>은 아이가 출근하는 엄마의 주머니 속에 몰래 넣어둔 ‘엄마 수호신’ 인형 통통이가 엄마를 돕는 이야기야. 통통이 덕분에 엄마는 버스를 놓치지 않고, 지하철에서도 편안하게 자리에 앉을 수 있어. 통통이 덕분에 평소보다 달리는 발걸음도 가볍고, 좋아하는 음악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잠시 쉬는 시간도 가질 수 있지. 

이야기 속 엄마는 이날 아주 중요한 발표가 있는 날이야. 아침부터 모든 게 술술 잘 풀렸지만 막상 발표를 시작하려고 하니까 머릿속이 하얘지고 말아. 그런데 그때 귓가에서 ‘엄마, 할 수 있다!’라고 외치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엄마는 용기가 절로 나지. 발표는 대 성공이야.

엄마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아이의 마음, 아이를 지키는 것이 엄마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이로부터 많은 힘과 위안을 받는 건 엄마라는 것이 느껴져서 참 좋았어.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라는 그림책이야. 아마 이 그림책을 본 엄마들은 모두 눈물을 쏙 뺐을 것 같은데, 나는 이 책을 읽어주다가 눈물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훌쩍거리다가 결국 우주 앞에서 울고 말았어. 그 정도로 엄마의 생각과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책이야.

유치원에서 1박 2일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가 아이가 아기였을 때부터의 일을 떠올려봐. 아이가 어린 아기였을 땐 엄마가 불안한 마음에 잠시도 아기 옆을 떠날 수 없었고, 아기가 조금 더 커서는 잠시라도 엄마와 헤어지면 불안해서 울음을 터뜨렸지. 그러다 점점 커서 엄마가 잠시 눈에 보이지 않아도 기다릴 수 있게 되고, 어느덧 커서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하룻밤 자는 여행을 하고 돌아오게 된 거야.

작디작은 아기가 유치원생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떠올려 본 엄마는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생각해봐. 아이는 곧 더 자라서 엄마가 보고 싶어도 꾹 참고 재미나게 세상을 누빌 테고, 엄마는 아이가 보고 싶어도 꾹 참고 재미나게 하루하루 지내게 될 거라고, 언젠가 아이가 더 멀리 떠나고 엄마는 집에 남아 아이를 기다릴 날이 올 거라고.

하지만 그래도 엄마는 괜찮다고 말해. 왜냐하면 엄마와 아이는 “꼭 다시 만날 테니까.” 

나이 든 엄마가 밥상을 차리고 아마 어른이 되었을 아이가 ‘엄마’를 부르며 현관문을 여는 장면은 아무리 다시 봐도 울컥해.


나는 앞의 세 그림책을 보면서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고군분투하는 게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고, 출근길의 급박한 상황이나 일하면서 생기는 여러 상황 속에서 내 입장만 생각하기 쉬운데 그 상황에서 나를 기다리고, 나를 응원하고 또 나를 도와주는 아이의 마음을 조금 더 헤아려볼 수 있었어.

마지막에 이야기한 그림책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에게서 점점 독립해가는 성장의 시간을 미리 경험해보면서 마음을 조금 더 단단하게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아. 나를 기다리느라 매일 애태우고 불안해하지만 아이는 결국 이 시간을 거쳐 홀로서기를 하게 될 것이고, 나는 점점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면서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아이를 기다리게 될 것이고. 이처럼 단순하면서 정확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한 진실이 지금 나와 우주가 겪는 어려움을 긴 여정 속의 짧은 한 시기, 결국은 겪어내야 할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것 같아.


이런 그림책들을 함께 보면서 나눈 대화들이 우주에게는 얼마나 힘이 되고 위안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어. 나는 우주의 심각한 분리불안 증세 때문에 입사하고 1년도 안 돼서 단축근무를 신청했고, 우주는 나와 충분히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분리불안이 없어졌어.

이제 다섯 살이 된 우주는 예전처럼 나에게서 떨어지지 못해 힘들어하거나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지 않아. 가끔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해도, 그게 나랑 떨어지기 싫어서라기보다 아무런 규칙 없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집에서 놀고 싶다는 표현이라 내 마음도 예전처럼 불편하지 않고. 불과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일을 그만두고 우주랑 더 있어 주고 싶다, 그래야 하는 거 아닐까, 이런 고민을 정말 많이 했는데 이제는 그런 고민을 많이 안 해. 당연히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준호가 이제 나름의 방법을 찾아서 스스로의 불안을 다독일 수 있게 된 것처럼, 내가 더 이상 괜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전전긍긍하지 않는 것처럼, 우주 역시 엄마 없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터득해나가는 것처럼 결국 시간이 우리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나 봐.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적응해나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분명 우리는 이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걸 거야.


언니, 벌써 연말이야. 해가 바뀌면 아이들은 또 많이 성장해있겠지? 우리도 그럴 테고.

요즘 나는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어. 작년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에 큰 관심이 없던 우주가 올해는 가을이 되면서부터 계속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거든. 어렸을 때 산타를 믿어본 적 없는 나로선, 아이의 이 판타지를 어떻게 지켜줄 수 있을지 어려운 문제야. 

프랑스는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겠다. 크리스마스 그리고 연말,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고 따뜻하게 잘 보내고, 우리 또 다음 편지에서 만나.




22.12.11

새해 계획 세울 생각에 설레는 다경으로부터






엄마 왜 안 와



글, 그림 : 고정순

웅진주니어┃2018





엄마는 회사에서 내 생각해?



글, 그림 : 김영진

길벗어린이 ┃2014







엄마의 이상한 출근길





글, 그림 : 김영진

책읽는곰 ┃2021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글 : 윤여림

그림 : 안녕달


위즈덤하우스 ┃2017

매거진의 이전글 22. 나는 학교를 좋아하지 않았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