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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아무르 Dec 24. 2022

24. 프랑스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 풍경

그림책 <Noël (크리스마스)> 

다경에게,


난 일하는 엄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네 편지를 정말 공감하며 읽었어. 아이를 낳고 집에서 갓난쟁이를 돌보며 하던 생각. ‘일은 언제 시작하지?’ 나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시작하고 싶은데, 또 내가 제 세상의 전부인 조그마한 아기를 보면 이 아이를 두고 어딜 간다는 거지, 하는 생각도 들었어. 아이가 6개월이 되면 어린이집에 보내겠다던 나의 결심은 12개월로 바뀌었고 12개월에 도달하자 18개월로 바뀌었어.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일의 세계와 멀어지면 다시 돌아갈 자리가 있을까, 하며 두려워했지. 그렇게 나는 주부가 되었어. 아이는 18개월부터 어린이집에 갔지만 나는 그동안 학위를 따고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만 했지 진짜 일의 세계에 뛰어들지는 못했어. 두려웠거든. 그간의 공백이 너무나 큰 흠이 될 까봐 두려웠어. 그렇게 떨어진 자신감이 6년 동안 나를 가정주부로 살게 한 것 같아. 한편으로는 이것도 복이라는 생각도 해. 아이가 자라는 것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고, 남편은 일 때문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도 내가 있으니 안심하고 자기 일 마음껏 할 수 있으니까. 언젠가 그런 일이 있었어. 준호를 데리고 학교에 갔는데, (내가 학교라고 하는 것은 프랑스는 만 3세부터 의무교육이 시작되거든. 한국의 유치원 정도라고 생각하면 돼.) 임직원 중 한 분이 학교 정문 앞에서 준호네 반 담임 선생님이 아파서 학교에 못 오셨으니 집에서 아이를 돌 볼 수 있으면 다시 데려가라는 거야. 그리고 일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맡아는 주지만 그냥 다른 나이대 아이들과 이리저리 섞여있을 거라고 했지. 이 학교에는 반이 딱 세 개야. 만 3세, 4세, 5세 반. 그리고 한 반에 대략 25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있어. 선생님은 담임선생님과 보조 선생님 딱 두 분이고. 이런 상황에서 일하러 가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두고 가는 부모들은 신경이 쓰일 거야. 아무런 제약 없이 아이를 데려갈 수 있는 나는 그래도 복이라고 여기곤 했어. 아이에게도 마찬가지고 말이지. 파업도 얼마나 빈번한지, 여기 프랑스 부모들은 누누(등하교 도와주고 방과 후에 돌봐 주는 사람)나, 조부모의 도움 없이는 일을 할 수가 없어. 방학도 엄청 많고 말이야.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에는 학교를 안 가는데, 그 덕에 부모들은 아이들을 하루 종일 맡길 수 있는 기관이나 누누, 조부모를 늘 찾아두어야 해. 일하는 부모로 사는 것은 만만찮은 준비가 필요한 것을 보고서는 나는 가정주부로 살 수 있음이 감사하기도 했어.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 아이들이 더 이상 내 도움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 때 즈음에는 일을 구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겠지. 나도 두려워할 테고 나를 원하는 곳도 많지는 않을 거고. 아! 잘 모르겠다. 닥치면 또 무언가는 하고 있겠지. 지금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는 것처럼 말이야.


이번주 월요일부터 우리 집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방학을 즐기고 있어. 방학은 1월 2일까지야. 2주 하고도 하루가 더 있는 이 방학은 정말 복작복작 엄청 바쁜 기간이야. 아니 이미 11월부터가 그렇긴 해. 11월 내내 아이들이 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선물 리스트를 만드는 일이야. 보통 이때즈음 우편함에 장난감 회사들의 카탈로그들이 들어오는데 그걸 보면서 아이들이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자르고 붙여서 목록을 만들어. 그리고 12월이 되면 산타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지. 보통 주소 없이 ‘산타할아버지께’라고만 써도 답장이 와. 이걸 우체국에서 맡아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단체가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 


준호가 쓴 편지 내용 :  “산타 할아버지 요정들한테 장난 좀 그만 하라고 말해주실 수 있으세요?


그리고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트리와 크리스마스 달력 (어드벤트 캘린더)을 만들어야 해.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놓지 않으면 산타 할아버지가 오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트리는 정말 중요해. 우리 가족은 매해 아이들에게 새로운 크리스마스 장식을 사게 해 줘. 학교에서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만드는 것이 거의 공식적인 연례행사고. 그래서 매년 크리스마스 장식이 늘어나. 잘 보관해 놓았던 장식들을 보면서 이건 준호가 어린이 집에서 만든 거, 이건 리아가 작년에 고른 거, 하면서 추억을 떠올리기도 해. 추억이 담긴 장식들이 가득 달린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면 기분이 좋아. 아이들도 장식하는 것을 좋아하고. 크리스마스 달력은 시중에서 파는 것도 많아. 초콜릿도 있고, 장난감도 있고, 종류는 다양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것이 힘든 아이들에게 매일 맛있는 것 하나씩 까먹으며 기다리는 재미를 주지. 우리 집의 전통은, 시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나무 달력에 핼러윈 때 모은 젤리들을 넣어두는 것이야. 매일 아침 아이들은 일어나자마자 젤리를 꺼내먹지. 그게 매일의 작은 즐거움이야. 



마지막 전통은 크리스마스 요정의 장난이야. 이건 프랑스보다는 북미 쪽에서 더 많이 하는 것 같아. 프랑스 사람들 중에는 모르는 사람도 많더라고. 나는 캐나다에 사는 친구가 하는 것을 보고 재밌어 보여서 남편에게 해보자고 제안했어. 인터넷에서 크리스마스 요정 인형을 두 개 구입해서 아이들이 잠들고 난 뒤에 요정들이 장난해 놓은 장면을 연출해 두는 거야. 준호는 12월이 되면 깨우지 않아도 엄청 일찍 일어나. 심지어 새벽에 일어나기도 하는데 요정이 어떤 장난을 해두었을지 궁금해서야. 나와 남편은 아이들을 재우고 난 뒤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 요정들의 장난을 찾고 설치해 두지. 보통 아이들이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에 가면 슬슬 크리스마스의 마법을 믿지 않기 시작하거든? 준호가 지금 초등학교 1년 차인데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장난 장면을 연출하고 있어.


집안의 초콜릿과 젤리를 먹어 치우고 똥을 싼 요정                                                              밀가루로 장난친 요정

        

텔레비전 위에 장난친 요정                                                                온 집안에 화장실 휴지 풀어두고 논 요정


준호와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책을 본 일이 별로 없어. 이미 사방에서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그럴 필요를 못 느꼈지. 하지만 이번 편지를 위해서 크리스마스에 대한 책을 찾아보았는데, 재밌는 책을 하나 찾아냈어. 바로 크리스마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책이야. 크리스마스 행사 때 하는 모든 일들의 이유와 시초를 알려주는데, 몰랐던 사실들이 많아서 준호도 나도 재밌게 읽었어.


가령 예를 들면 이런 거야. 크리스마스에 크리스마스트리와 크리스마스 달력 말고도 꼭 만드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예수의 탄생을 나타내는 장식이야. 여기서는 크레쉬 Crèche라고 부르는데 우리처럼 그냥 하나의 장식을 사서 놓는 사람들도 있고, 일일이 구유, 동물들, 성모 마리아, 동방박사들 장식을 사서 꾸미는 사람들도 있어. 


우리 집에 있는 크레쉬야


우리 집 크레쉬에는 이미 아기 예수가 장식에 고정되어 있어서 몰랐는데, 이 책을 보니까 원래 아기 예수 인형은 크리스마스 저녁에 놓아야 한대. 왜냐하면 그때 태어났으니까! 


이후, 기독교인들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날로 12월 25일을 골랐어요.
기독교인들은 아기 예수가 팔레스타인의 한 축사에서 태어났으며 신의 아들이라고 믿었지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기독교인 가족들은 크레쉬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아기 예수는 크리스마스 저녁이 되면 크레쉬 안에 놓았지요.
크리스마스 마켓은 알자스 지방과 독일에서 시작되었어요. 나무로 된 작은 가게들에서는 크리스마스 장식이나 여러 가지 모양의 빵데피스 (pain d’épice : 각종 향신료를 넣은 빵이야.)를 팔지요. 프랑스 남부에서는 크레쉬에 넣는 인형을 파는 시장이 열려요. 사람들은 여기서 크레쉬에 넣을 점토 인형을 사지요.


크리스마스 마켓은 알자스 지방과 독일에서 시작되었어요. 나무로 된 작은 가게들에서는 크리스마스 장식이나 여러 가지 모양의 빵데피스 (pain d’épice : 각종 향신료를 넣은 빵이야.)를 팔지요. 프랑스 남부에서는 크레쉬에 넣는 인형을 파는 시장이 열려요. 사람들은 여기서 크레쉬에 넣을 점토 인형을 사지요.


12월에는 크리스마스 마켓 (마흐쉐 드 노엘 marché de nöel)이 모든 도시에서 열리는데, 나는 이것이 프랑스의 알자스 지방과 독일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어. 프랑스 사람들은 11월부터 크리스마스 선물 준비로 바빠. 우리 가족은 그렇게 하지는 않지만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조부모, 사촌 등..) 선물을 하는 가족들도 있고, 어쨌든 조카아이들과 부모님 선물만 사도 개수가 만만찮으니까 선물 사냥에 여념이 없지. 크리스마스 마켓은 다양한 선물용 상품과 간식, 뱅쇼 (따뜻한 와인), 데운 사과주스 등을 파는 곳이야. 사람들은 선물할 거리가 있나 둘러보면서 길거리 음식도 먹고, 아이들은 회전목마도 타고 그래. 그리고 산타 할아버지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가 있어. 아이들은 산타 할아버지에게 인사도 하고 쪽쪽이를 끊어야 하는 아이들은 산타 할아버지에게 큰 마음먹고 주기도 하지. 사진은 물론 유료야. 하하. 



크리스마스 트리에 관한 이야기도 재밌는 것이 있는데, 프랑스에서는 트리에 종이꽃과 사과로 장식을 하는 것이 전통이었대. 그러다가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랑 여러 장식들을 다는 문화가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졌다고 해.



그리고 크리스마스 달력은 약 150년 전에 독일의 한 아빠가 아이들이 크리스마스를 참을성 있게 잘 기다릴 수 있게 도와주려고 만든 것에서 시작되었대. 원래는 초콜릿이나 그림 같은 것이 달력 안에 들어 있었다고 하네.


내가 여기서 처음 크리스마스를 보낼 때 신기 했던 것이 있는데, 12월 24일 저녁이 되면 가족들은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신발을 놔둔다는 거야. 신기하지! 양말이 아니라 신발이라니! 예전에는 그리 풍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물은 귤과 초콜릿 정도였대.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되면 사람들이 꼭 먹거나 선물하는 음식 중에 하나가 귤 하고 초콜릿이야. 크리스마스 때만 먹는 초콜릿도 있는데 빠삐요트 papillote라고 불러. 


이렇게 생겼는데 포장지 안에 수수께끼나 명언 같은 것들이 적혀 있어.


크리스마스는 프랑스에서 제일 큰 가족 행사야. 24일 저녁을 아주 거하게 먹고 신나고 놀고선 25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선물들을 열어봐. 그리고 또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지. 한국의 설이나 추석처럼 많이 요리하고 많이 먹는 날이야. 


준호는 하루하루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았는지 세면서 설레어하고, 리아는 아직 그런 개념이 없어서 매일 먹는 젤리에 그저 기뻐하며 지내고 있어. 아마 선물을 받아도 이게 웬 떡인가 하겠지!


참, 그러고 보니 준호의 재밌는 질문이 하나 생각난다. 프랑스에는 할아버지의 날, 할머니의 날, 아빠의 날, 엄마의 날이 있거든? 그중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챙기는 날은 엄마의 날이야. 어느 날 준호가 묻더라. 이 모든 날들이 있는데 왜 아이들을 위한 날은 없냐고. 그래서 나 정말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한국에는 어린이날이 있지!


벌써 12월이야. 한 해가 이렇게 또 마무리되어 가네. 이제는 내가 오십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할 지경이야. 시간 참 빠르다.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하는 너는 어떤 계획을 세웠을까? 궁금하다. 나는 계획을 전혀 세우지 않는 쪽이거든. 그런데 올해는 하나 세워보고 싶다. 건강해지는 것. 노력이 필요한 일이니 게을러지지 말아야겠어. 


한 해 마무리 잘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따뜻하게 보내. 


안녕!


2022. 12. 20.

민영.




Noël (크리스마스)


글, 그림 : Stéphanie Ledu, Rémi Saillard

Milan jenesse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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