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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아무르 Sep 17. 2023

아이 친구 가족과 저녁을 먹었다.

큰아이에게는 엘리엇이라는 친구가 있다. 지난한 두 달의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엘리엇의 엄마인 뮤리엘에게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두 가족이 모여 식사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엘리엇에 대해 아는 거라곤 큰아이의 학교 친구라는 것뿐이었다. 2주간의 캠핑으로 피곤했기에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저녁까지 먹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었지만 초대해 주는 마음이 고마워서 그러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엘리엇이 우주선과 스파이 놀이를 좋아하고 서바이버 survivor의 아이 오브 타이거 eye of tiger (영화 록키 수록곡)을 즐겨 부른다는 것을 안다. 두려움과 부담을 넘어서면 언제나 이런 작은 기쁨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엘리엇에게는 루시앙이라는 남동생이 있다. 몇 개월인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저녁으로 우유를 마시고 이제 막 쪽쪽이를 제 입에 넣을 줄 알게 된 귀여운 아기다. 엘리엇의 부모는 임신 5개월 검진에서 루시앙에게 심장 기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루시앙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힘든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날씨가 더운 탓에 루시앙은 기저귀 차림이었다. 루시앙을 무릎에 앉히고 식전주를 하던 루시앙의 아빠가 심장 수술 자국에 대해 말했다. 가슴 가운데 일자로 그어진 수술 자국은 그래도 예쁘게 아물었는데 그 밑에 대여섯 개의 구멍 자국은 유난히 눈에 띈다는 이야기였다. 


“크면서 또 달라지겠지. 혹시 알아? 아이 가슴팍에 무성하게 털이 자랄지.” 


뮤리엘은 싱긋 웃으며 농담조로 말했고, 그에 우리 집 님이 말을 이었다. 


“우리 큰애도 구순열 때문에 어릴 때 수술했어.” 

“정말? 네가 말하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전혀 티가 안 난다.” 


뮤리엘이 대답했다. 그리곤 구순구개열이 있는 조카이야기를 이어갔다. 여러 차례 수술했지만 수술 자국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고 했다. 양쪽 콧구멍 크기가 많이 달라서 그걸 교정하는 수술을 할 예정이지만 그거 빼면 나무랄 데가 없다고 말이다. 


구순열 수술 자국은 신체의 성장과 함께 모양이 달라진다. 수술 후 처음 몇 년은 괜찮아 보이다가도 몸이 자라면서 몸과 함께 자라지 않는 상처 때문에 얼굴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이다. 구순열 수술 자국이 있는 성인으로서, 구순열 때문에 누군가에게 배척당해 본 사람으로서, 나는 이 대화가 불편했다. 수술 자국은 안 보일수록 좋은 것인가? 상처가 없는 신체가 더 아름답다거나 정상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인가? 어느 모습이 더 좋다는 가치판단이 이루어진다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아기 가슴의 수술 자국을 보며 그것이 어떻게 하면 덜 보일까를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수술 기간  느꼈던 자신의 감정이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면 어떨까. 우리 집 큰아이가 구순열 수술을 했다고 했을 때, 조카의 구순구개열 상처에 관한 가치판단이 아닌 큰아이 수술 당시 우리가 겪었던 일이나 감정에 관해 물었다면 어떠했을까. 자신이 직접 겪은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 속에서 느낀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만 타인이 겪은 일에 대한 가치판단은 조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한때의 나는 내 인중 상처에 대한 타인의 가치판단이 절대적이라고 믿었다. 상처는 감추어야 하는 것, 최대한 없애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인중이 없는 오른쪽 얼굴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 애썼다. 왼쪽 얼굴이 드러나게 사진을 찍고 누구와 나란히 걸을 때는 항상 그 사람 오른쪽에 섰다. 무표정하면 더 두드러지는 얼굴의 비대칭 덕분에 중학교 졸업앨범 사진은 오려 버린 지 오래다. 한창 화장하던 때도 색깔이 있는 것은 입술에 바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상처가 없는 얼굴이 어떠한 기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구순열은 그저 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구순열 상처가 없는 나는 내가 아니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결핍이든, 상처든, 비정상이든 당신의 이야기를 이루는 모든 것을 인정해 주길. 당신을 이해하고 사랑해 주길. 남들이 못 해주면 당신이라도 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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