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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아무르 Oct 15. 2023

사랑이야, 두려움이야?

영화 <틱,틱...붐!>과 함께

<틱,틱… 붐!>은 뮤지컬 <렌트> 만든 극작가이자 작곡가인 조너선 라슨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 동명의 공연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주인공 존(앤드루 가필드)은 뉴욕의 어느 식당에서 일하며 극작가로 데뷔할 날만 꿈꾼다. 드디어 8년을 공들여 쓴 작품을 소개할 워크숍 날짜가 다가오고, 영원히 웨이터로 남을까 봐 걱정하는 존에게 한 친구가 질문한다. 


“널 움직이는 게 두려움이야, 사랑이야?”


존은 친구에게 대답하진 않지만 곧이어 만난 여자친구에게 “앞으론 사랑을 쫓을 거야.”라며 식당을 그만두었다고 말한다. 


나는 어떨까. 날 움직이는 건 사랑일까, 두려움일까. 

아이들을 낳기 전의 내 삶은 대체로 사랑에 의해 흘러갔다고 볼 수 있다. 친구들은 모두 취직해서 월급 받을 때, 나는 좋아하는 영화를 하겠다고 대학 졸업 후 취직이 아니라 편입을 했다. 27살이 되어 겨우 첫 상업 영화에 발을 들였지만 일 년에 700만 원을 벌었다. 차비와 통신비만 겨우 받으면서, 출근은 하는데 퇴근은 잘하지 못하던 나를 엄마는 걱정했다. “이러면 나중에 고생해. 다른 회사가 싫으면 영화사 같은 곳이라도 취직하면 좋겠다.” 나는 국민연금도, 건강보험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걱정이 되질 않았다. 그건 아마도 현재에 눈이 멀어 뒷일은 생각 못하는 나의 단순함과 발을 땅에 붙이고 살지 못하는 몽상가적 기질 때문이리라. 영화가 없는 기간엔 번 돈을 까먹거나 아르바이트를 했다. 저축 통장은 있을 리 없었고 카드깡이나 안 하면 다행이었다. 그래도 난 사랑에 의해 움직였다. 늘 가난한 독거노인이 될까 봐 두려웠지만 그래도 항상 사랑이 이겼다. 영화 현장에서 일하는 것이 지친다고 생각한 어느 날 나는 유학을 결심했다. 아르바이트해서 일 년 생활비를 모으고 홀연히 프랑스로 떠났다. 내 나이 서른이었다. 결혼하든 직업적으로 무언가를 이루든 무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그 서른에 나는 캐리어 두 개만 달랑 들고 떠났다. 그것도 혼자 아니고 둘이서. 남자 쪽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했고 조용히 헤어져 달라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사랑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니까. 우물쭈물하는 남자친구를 이끌고 친구들을 모아 언약식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프랑스에서 절반의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죽을 것 같이 사랑한 양 아무도 시켜주지 않는 결혼을 해놓고는 결국 헤어졌다. 하지만 난 프랑스에 남았다. 사랑에 의해 움직이는 나는 혼자서 학업을 끝내고 누군가를 만나 결혼도 했다.


내가 두려움에 의해 살아가기 시작한 건 아이가 생기고부터였다. 아이의 존재는 너무나 강력해서 사랑에 의해 계획했던 것들을 스스로 포기하게 했다. 나는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고 그를 위해 학업을 이어가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이 어려운 내가 돈, 학업, 육아를 한꺼번에 해낼 수는 없다고 여겼다. 그렇게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둘째를 낳았다. 산후 우울증을 크게 앓았지만 죽지는 못했다. 내게는 아이들이라는 커다란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을 떠나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아이들을 세상에 내놓고 책임지지 못하는 것은 할 짓이 아니라는 두려움이 꾸역꾸역 삶을 이어가게 했다. 지금도 내 삶의 많은 부분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흘러간다. 생활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나를 위한 소비를 하지 않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친환경적인 소비를 하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 고민하고 아이들에게 더 나은 배움이 무언지 생각한다. 돈이라는 것에 콧방귀를 뀌고 제도적 교육이 또 다른 계급을 만든다고 열변을 토하던 내가 이렇게 되었다. 책임져야 할 연약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이렇게 무시무시하다.


생각해 보면 과거에 내가 사랑으로 살 수 있었던 건 주관이 뚜렷하고 개인주의적인 나의 성향, 그런 나를 걱정하면서도 응원하고 뒷받침해 주신 부모님, 그리고 나 대신 부모님을 건사하는 동생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내게 두려움은 나에게서 오지 않았다. 두려움은 아이들, 남편, 그리고 친정 부모님에게서 왔다. 그들에게 느끼는 의무감, 관계를 잘 이어가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 두려움을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두려움과 사랑은 한 끗 차이인 것 같다. 나의 두려움은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도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나를 중심으로 한, 안으로 향하는 사랑이었다면, 이제는 밖으로 향하는 사랑인가 보다.


그렇다. 나를 움직이는 것은 어찌 되었든 사랑이다. 두려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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