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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아무르 Oct 20. 2023

결핍 더하기 결핍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님 옆에 다가가 자리를 잡았다.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한 손으로 그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움푹 들어간 가슴팍, 쑤욱 솟아있는 늑골을 지났다. 님을 볼 때면 성인이 된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녀석들도 이런 가슴을 가지게 되겠지. 그럼 아이들도 우리 부부처럼 각자 결핍이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 힘을 합쳐 살게 될까.


나는 몇 번의 연애를 했다. 그들의 신체는 (세상이 말하는) 정상이었다. (세상이 말하는) 잘생긴 사람도 있었고 못생긴 사람도 있었으며 그저 그런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종국에 당신과 함께 여생을 일구겠소, 하고 약속한 사람은 나처럼 (세상이 말하는) 비정상이었다. 


나는 좀 둔하다. 처음 그의 가슴이 내려가 있다는 걸 인지했을 때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다. 왜냐고 물을 만큼 궁금하지 않았다. 내게는 그냥 그렇게 생긴 사람이었다. 그의 가슴이 유전적인 기형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그가 먼저 내 입술의 상처에 관해 물었기 때문이었다. 질문을 듣고 나는 쉽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다. 이미 한번 그 상처 때문에 영혼의 짝이라 믿었던 그 사람, 내게는 단 하나뿐이었던 사람과 오랜 연애를 끝내야 했기 때문이다. 결혼 반대. 이별 독촉. 도망. 기다림. 이별. 내 입술의 상처는 나를 주말 연속극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두려웠다. 다시 한번, 입술의 상처 때문에 관계 밖으로 밀려나게 될까. ‘구순열’이라는 단순한 단어가 입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나는 조금 돌아서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수술했어. 여기 골반에도 수술 자국이 있어.” “무슨 수술인데?” 그렇게 구순열 수술을 시작으로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그의 눈을 피하고 이야기했다. 이야기 사이에 침묵도 많았다. 자기 연민에 빠지고 싶지 않았고 나를 관계에서 밀어낸 사람들을 욕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부드럽고 동그랗게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가슴뼈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어. 수술도 생각했었는데 너무 위험한 수술이고 나중에 혹시라도 내게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말에 누나가 말렸어.” 

“왜 효과가 없는데?”

“가슴에 봉긋 올라온 인공 뼈를 넣는 거니까 심폐소생술을 해도 심장에 닿지 못하는 거지.”


서로의 기형을 이야기하다 보니 침묵은 사라지고 대화에 생기가 돌았다. 우리는 학창 시절에 겪었던 혼란, 사람들의 반응, 거기서 느낀 콤플렉스, 그리고 그걸 극복해 온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고 서로 공감했다. 


우리는 ‘정상’을 가지지 못했지만, 그 결핍으로 더 풍요로운 연대를 가졌다.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왜 나만 다를까. 나는 왜 남들처럼 정상이 아닐까, 생각하며 속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결핍이 내게 더 풍요로운 이야기와 관계, 그리고 성찰을 가져다준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구순열로 나는 다름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은 더 큰 범주의 다름에 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인종, 젠더, 장애, 혹은 세상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반하는 것들. 일부 ‘정상인’들이 두려워하고 배척하는 그 ‘다름’. 틀림이 아닌 다름. 


나의 구순열은 내가 (세상이 말하는) 정상이었다면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이야기들을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 얼마나 행운인가. 물론 이 결핍이 항상 기뻤던 건 아니다. 하지만 놀림과 배척을 넘어서니 거기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지우고 서로 다른 모양을 인정하며 살아가고픈 마음과 노력이 생겼다. 


우리 아이들도 결핍을 빼기로만 느끼지 않고 더하기로 느끼길. 그러려면 때로는 상처와 눈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위에서 더 단단해지길. 아이들이 타인을 통해 자신의 다름을 인식했을 때 내가 당황하지 않고 잘 도와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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