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부활> 중에서
“영감님 그럼 당신의 신앙은 뭐요?”
뱃전의 짐마차 옆에 서 있던 중년 사내가 물었다.
“난 신앙이 없소. 나 자신 말고는 누구도 믿지 않아요.”
노인은 언제나처럼 빠르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자신을 믿는다는 건 무슨 뜻이죠?”
네흘류도프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실수할 가능성도 있잖아요.”
“절대 그럴 일 없소이다.”
노인이 머리를 가로저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렇게 다양한 종교가 있겠습니까?”
네흘류도프가 물었다.
“자기 자신을 믿지 않고 남을 믿으니까 종교가 발생하는 겁니다. 저도 남을 믿던 때가 있었고 타이가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던 때가 있었죠. 벗어날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지독하게 방황했습니다. 구교, 신교, 안식일 엄수주의, 흘리스트, 사제인정파, 사제부정파, 오스트리아파, 몰로칸, 거세파등 모든 종교는 모두들 자기만 옳다고 합니다. 모두 눈먼 개처럼 각자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는 겁니다. 종교는 많아도 영성은 하나입니다. 당신 안에도 제 안에도 저 사람 안에도 똑같은 것이 들어있어요.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자기 안의 영성을 믿으면 결국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해요. 그래야 만인이 하나가 됩니다.”
노인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사방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럼 당신은 오래전부터 오래전부터 그런 믿음을 가지고 계셨던 건가요?”
네흘류도프가 물었다.
“저요? 오래됐습니다. 벌써 23년째 쫓겨 다니고 있으니까요.”
“쫓겨 다니다니요?”
“예수님이 쫓겨났듯이 저도 그렇게 쫓겨 다니고 있습니다. 재판도 당하고 사제한테 끌려가기도 했어요. 학자들과 바리새파에게 잡혀가기도 했고 정신병원에 갇히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제게 아무 짓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전 자유로운 사람이니까요. 네 이름이 뭐냐, 하고 묻더군요. 제가 저 자신한테 어떤 명칭을 부여하고 있다고 생각했나 봐요. 하지만 전 모든 것을 거부합니다. 저한테는 이름도 없고, 집도 없고, 조국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저는 저 자신일 뿐입니다. 이름이 뭐냐고요? 제 이름은 인간입니다. 나이는? 저는 나이를 세지 않습니다. 셀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전 과거에도 존재했고 미래에도 항상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누구냐 하고 묻더군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저한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습니다. 저한테는 오직 하느님과 대지만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이 아버지고 대지가 어머니입니다. 그들은 또 황제를 인정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인정 못할 거 없지 않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자기 자신한테 황제이고 저는 저 자신한테 황제니까요. 그랬더니 너와는 대화가 안 되는구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대답했죠. 저와 대화해 달라고 부탁한 적 없습니다. 그랬더니 저를 괴롭히더라고요.”
“지금은 어디로 가시는 중입니까.”
네흘류도프가 물었다.
“하느님이 이끄시는 대로 갑니다. 일이 있으면 일을 하고 일이 없으면 빌어먹어야지요.”
노인은 나룻배가 건너편 강가에 거의 도달하자 말을 마치고 자신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을 의기양양하게 둘러보았다. 나룻배가 건너편 강가에 닿았다. 네흘류도프는 지갑을 꺼내 노인에게 돈을 주려했지만 노인이 거절했다.
“저는 돈을 받지 않습니다. 빵은 받죠.”
노인이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없어요. 저를 모욕한 게 아니니까요. 그럴 수도 없고요.”
*이 글은 <그림책이 우리에게> 다섯 번째 메일링 '행운도 불운도 아닌 전환점'에 연결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