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억이 진짜인지… 그 차이를 어떻게 구분하죠? 말해줄 수 있나요?”
“구체적인 기억이 진짜라고들 생각하지만, 기억은 그런 게 아니에요. 감정으로 떠올리는 거니까요. 진짜 기억은 뒤죽박죽이어야 해요.”
<듄> 시리즈를 연출한 드니 빌뇌브의 2017년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세계에는 인간과 리플리컨트 (복제인간)이 함께 존재한다. 리플리컨트는 인간과 같은 지적 능력, 사고방식 그리고 신체 조건을 갖추고 인간에게 노동력을 제공한다. 인간과 리플리컨트의 차이라면, 바로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영유아 및 청소년기를 보내는 인간과 달리 리플리컨트는 성인의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자들은 리플리컨트에게 가공된 기억을 심어준다. 영화에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리플리컨트를 제거하는 일을 하는 블레이드 러너 ‘K’(라이언 고슬링)는 어린 소년이 나오는 꿈을 종종 꾸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실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아닐지 의심한다. 그러던 중 출산의 흔적을 가진 리플리컨트의 유골을 발견하고 어쩌면 자신에게도 진짜 어린 시절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인간과 리플리컨트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던 K는 리플리컨트에게 기억을 심어준다는 박사를 찾아가 기억에 관해 묻는데, 박사는 진짜 기억은 뒤죽박죽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로 인간의 기억은 객관이나 정확과는 거리가 멀다. 현상을 인지하고 인지한 것 중에 선택해서 거기에 감정까지 버무리는 것이 기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될 수 있는 한 기억이 실제와 가깝기를 바란다. 그렇게 카메라가 탄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제 멋대로 기록하는 뇌와 달리, 카메라는 보는 것을 그대로 기록하니 말이다.
카메라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시절, 프랑스의 한 작가는 카메라가 인간을 망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여행지의 사람들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나머지 가만히 시간을 두고 풍경을 오감으로 느끼는 일을 잊어버렸다고 했다. 사진이 모든 것을 기록하기 때문에 망각이라는 인간의 약점을 충분히 채워줄 것이라고 믿으며 열심히 사진을 찍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을 믿고는 서둘러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수많은 기술이 우리에게 시간을 아끼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해 준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지만 더 적은 시간을 들여 오감을 작동시킨다. 카메라가 존재하기 이전의 사람들은 풍경을 충분히 느꼈다. 눈으로, 코로, 귀로. 내 눈앞의 모든 것을 기억하기 위해 시간을 들였다.
그들은 여행에서 돌아와 자신이 본 것을 느낀 대로 이야기했다. 모두 같은 것을 보았지만 모두 다르게 말했다. 듣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말은 들은 두 명은 서로 다른 풍경과 냄새와 바람을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진이 있는 여행은 다르다. 사진을 보여주는 사람은 사진을 보여주지 않는 사람만큼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사진은 정확하기 때문이다. 그가 본 것을 그대로 청자에게 보여줄 수 있다. 보는 사람은 상상할 필요가 없다. 사진 그대로를 보면 되니까. 여기서 진짜는 어느 것일까. 풍경 그대로를 옮긴 사진? 화자의 느낌과 해석이 뒤섞이고 청자의 해석과 상상이 더해진 풍경?
나는 후자라고 말하고 싶다. 사진이 더 정확한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지만 '진짜'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상과는 다른, 현상에 대해 각자가 가지는 생각과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짜'는 하나가 아니다. '진짜'는 모두에게 다르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기술이 발전하고 메타버스 같은 새로운 세계가 생겨나 세상이 변하더라도 진짜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는다.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