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손은 언제 잡는 것?

by 몽아무르



데이트 삼개월. 아직 사랑한다는 고백을 들은 적 없음. 주말마다 그의 집에서 보냄.

우리 관계를 요약해 보자면, 이렇다.


그가 정말 연애 경험이 많지 않다고 느낀 이유 중 하나가 데이트의 내용이었다.

주말마다 우리는 함께 였지만 정작 둘만 데이트한 적은 없었다.

하루는 형집, 하루는 누나집, 하루는 엄마집, 하루는 아빠집.

이러다보면 주말은 끝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란히 길을 걸을 일이 전혀 없었다.


어느 날 그는 근처 궁을 구경가자고 했다.

우리나라 덕수궁 구경하듯 말이다.

나란히 궁의 정원을 걷는데, 이미 할거 다 한 사이임에도 손을 잡고 걸어야 하는건지 아닌건지 헛갈렸다.


나에게 '손을 잡기'는 키스보다도 더 어려웁고 친밀한 행위이다.

키스는 술에 취해 정신없이도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면,

뭐랄까 '손을 잡기'란 마치 정말로 정신적 유대가 없으면 불가능한

키스보다도 더 떨리는 그런 행위인 것같다.


내가 <월-E>의 손 잡는 장면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혹은 키스는 타인이 없는 곳에서 하는 경우가 더 많아 연인 사이가 아니더라도 종종 발생하지만,

'손을 잡기'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연인임을 인정하는 행위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란히 걷는데 그와의 간격을 얼마나 해서 걸어야 할지

이 어색한 내 두손을 어디에 두고 걸어야 할지 고민했더랬다.

어느덧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깨'는 '손'과 다르다.

첫 데이트를 하는 남녀의 경우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이 손을 잡는 것 보다 조금은 더 쉽다고 생각했다.

두 손이 맞닿는 것.

그 만큼 친밀한 행위도 없다.


그도 조금은 어색해 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걸으며 그는 어깨에 손을 올리기도 하고, 안아주며 이마에 키스를 해주기도 했지만

아직 손은 잡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외국인들은 한국 연인들처럼 시종일관 손을 붙잡고 걷지 않는건가?' 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사실 이 고민은 이 후 한참동안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고 나는 그가 먼저 내 손을 잡지 않는 이상은

절대 먼저 손을 잡지 않았다.


이따금 손을 잡고 걷는데 손에서 땀이 나면 이 손을 빼야하나 빼면 언제 빼야하지. 하는 온갖 고민을 했고

그가 두 손이 필요해 손을 빼면 그가 다시 잡을 때까지 먼저 그의 손을 찾지 않았다.


그러다 몇 개월이 지나고 그의 친구 커플과 디즈니랜드에 갔더랬다.

친구 커플은 시종일관 손을 잡고 걸어다녔다.


그제서야 나는 세상의 모든 연인은 국가를 불문하고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결국은 사람에 따라 모두 경우가 다르다는 것.


그때서야 나는 이따금 용기를 내어 그의 손을 찾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보다 내가 더 자주 찾는다.


그는 항상 손을 잡는 사람이 아니었던 거였고

나는 괜한 걸로 애정도와 연인관계의 정의를 고민한 거였다.


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다치면 어떠리'하는 생각으로 살아야 삶이 풍성해진다는 것이다.

생채기가 무서워 시도하지 못하면 그 뒤에는 생채기보다도 더 아픈 후회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늘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이야기가 많은 사람은 매력적이다.

많이 다치고 일어선 사람이 아무것도 안하고 갖혀있는 사람보다 매력있다.


알면서도 방콕하는 내가 참으로 한심하도다.


삼천포로 빠졌지만,

어쨌든, 사랑한다면 손을 잡을 지어다. 우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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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함께 사진 찍는 것, 혹은 상대를 찍는 것은 쑥쓰러웠던 우리.

그 성 마당에서 처음으로 그의 사진을 찍었더랬다.

그 흔한 둘이 찍는 셀카는 한참 뒤에나 가능했던 수줍고 느린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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