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노의 세살
엄마. 하면 많은 사람들이 무한한 사랑을 떠올린다. 힘들면 아무런 조건없이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쉴 수 있는 곳이 엄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주노에게 그런 엄마일까. 그런 엄마일 수 있을까. 나처럼 이기적이고 혼자이길 좋아하는 사람도 누군가의 조건없는 휴식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나의 엄마를 좋아하지만 엄마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힘들때 찾는 사람은 더욱이 엄마가 아니다. 그런 내가 주노만은 나에게 무한한 신뢰를 가질 수 있게되길 바란다. 무조건적인 사랑. 무한한 신뢰. 그것이 부모 자식간이라고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
오늘은 주노랑 하루종일 삐걱댔다. 주노는 정말 내게 꼭 붙어사는 아이다. 주노가 아주 어렸을때부터 이건 내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어쩜 일초도 혼자 놀 수 없단 말인가. 아이들이 여럿 있는 모임에 가도 놀자고 엄마를 찾는건 주노 뿐이었다. 그런 주노에게 동생이 생기고 엄마가 일하느라 바빠졌다.
학교가 없는 수요일. 나는 하루종일 주노와 놀아주고 함께 요리를 했다. 리아는 자거나 혼자 놀 뿐, 내가 필요한 순간은 그저 기저귀, 우유, 잠 뿐이었다. 주노는 이 세가지 순간을 견디지를 못하고 나를 따라다니며 매달렸다. 잠깐만 기다리라는 그 말을 지키지를 못하고 계속 놀아달라고 질척였다. 한번은 리아의 응가 기저귀가 넘쳐서 갈아주고 옷 입히려고 했는데 본인이 응가를 하고 싶단다. (왜 응가는 항상 같은 순간에 오는지 미스터리다) 너무 급하다길래 먼저 가서 바지 내리고 있어. 하니까 절대 싫단다. 나는 리아를 벌거벗겨 놓고 주노를 돕는다. 주노 뒤처리도 해주느라 리아는 계속 벗은 상태였는데 그새 또 우유 먹을 시간이 된거다. 벌거벗고 배고프다고 우는 애를 또 옷을 입히고 분유를 타고 하는데 주노는 계속 나에게 역할극을 걸고 놀아달라고 보챈다. 리아 울음소리에 주노 목소리는 더 커지고. 소음에 약한 나는 거의 미칠지경이 되어 주노에게 소리치고 말았다.
“주노야 제발 혼자 좀 놀아 !!!”
주노는 토라져서 혼자 방에 들어갔다. 나는 리아에게 우유를 주었다. 하루종일 주노랑 씨름한터라 달래주고 싶지도 않았다. 리아 우유를 먹이고 재워야했다. 주노는 그 뒤에서 또 놀아줘 타령을 했고 소음에 약한 리아는 또 잠에 들지 못하고 칭얼댔다. 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아마 주노도 그랬나보다. 난 주노에게 차가운 얼굴로 나가라는 손짓을 했고 주노는 화가 났는지 내게 입술을 부르르 부딪히며 침을 발사했다. 나는 화가 났다.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공격할 때 쓰는 방식이란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리아는 뒷전으로 하고 놀아주고 놀아줬는데도 그거 잠깐을 못 기다리고 보채는 주노에 지쳐버렸다. 나는 주노에게 벌을 주었다.
“오늘 밤에 재밌는 이야기 안해줄거야!”
주노에게는 엄청 가혹한 형벌이다. 주노는 “아무하고도 안 놀거야!!!” 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발을 굴렀다. 그리고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재밌는 이야기는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는지 다시 오더니 “미안해 !” 라고 눈도 쳐다보지 않고 화를 억누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재밌는 이야기 해줄거지?”라며 귀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건 생존을 위한 귀여움이었다. 그러고도 놀아달라며 매달리는 건 끝나지 않았다.
님이 볼일을 보고 늦은 시간에 들어왔다. 그 때 나와 주노는 또, 대치중이었다. 나는 멀리서 주노와 님의 대화를 들었다. 주노는 엄마가 리아만 보호해줘서 속상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나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건 주노였는데 주노 입장에서는 엄마가 놀다가 리아 운다고 나가니 그게 방해처럼 느껴지고 횟수가 빈번했다고 생각했나보다. 나는 주노를 재울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포근한 침대에 누워 은은한 조명아래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가 더 잘 받아들이기 때문이었다.
"주노야. 오늘은 엄마가 뭘 보여줄게."
"뭔데?"
나는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게 주노의 하루야. 주노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뭐했지?"
"카메라 가지고 놀았어."
나는 시간표를 그리듯 동그라미를 나누고 카메라를 그려주었다. 아이가 글씨를 모르니 그림이 필요했다.
"그리고나서 엄마랑 빵 먹으면서 놀았지?
"응."
나는 주노의 하루를 일일이 나누어 상기시켜주었다. 아침 먹고 엄마랑 놀았고. 그 때 리아는 자고 있었고. 점심 먹기 전에 엄마랑 같이 요리했고 그 때 리아는 우리 뒤에서 가만히 누워있었고... 아이는 그림이 된 자신의 하루를 보며 엄마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기와 보내주었는지, 리아는 그에 비해 얼마나 적은 시간을 엄마와 보냈는지 알게되었다.
"이거 봐. 여기, 여기 여기 다 엄마랑 주노랑 놀았잖아. 리아는 뭐했지?"
"리아는 잤어."
"주노야. 엄마가 예전처럼 많이 못 놀아줘서 속상했지?"
내가 이 이야기를 하자마자 아이의 표정이 변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데 그걸 꾹 참더니 이불 속으로 얼굴을 숨겼다. 나는 주노가 감정을 참고 숨기는 단계에 이르렀다는게 신기했다. 그리고 실제로는 내가 주노와 최선을 다해 시간을 보냈는데 아이가 그걸 몰라주고 떼를 썼다는 것과 상관없이, 아이의 참는 얼굴을 보며 나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때 깨달았다. 나와 아이에게는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것을. 나의 세계는 주노의 세계 보다 훨씬 더 많은 요소들이 존재한다. 내게는 주노와의 시간이 10이었대도 주노에겐 1이었을 수도 있었던 거다. 주노의 세계에서 내가 차지하는 자리는 크니까.
"주노 속상한거 엄마도 잘 알아. 그래도 엄마가 주노랑 아주 많이 놀아주려고 엄청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어. 아까 그림에서 봤지? 엄마는 일도 있고 리아도 돌봐야하고 우리 주노 밥도 해줘야해. 할일이 아주 많아. 그래도 주노랑 같이 놀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어."
주노는 여전히 이불 속에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을 빼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주노 많이 속상했어?"
"응. 슬펐어."
"그래도 엄마가 노력하는거 알아줄거지?"
"응."
주노는 잠들기 전까지 “주노 많이 속상했어?” 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를 반복해달라고 했고 하루를 그린 그림도 보여달라고 했다. 별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냥 자기 마음을 읽어주고 내 입장을 솔직히 말하는 이 이야기가 좋았나보다. 나는 마치 연극 대사를 반복하듯 이 이야기를 반복해주었다.
아이가 자랄수록 육아가 참 어렵다. 나의 행동 하나하나 언행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시나브로 영향을 준다는 것이 참 무섭기도하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어렵다. 나조차 완벽한 인간은 아닌데, 아니 한참 부족한 인간인데 부족한 인간이 더 나은 인간을 키우려고 용을 쓰다보니 온갖 감정이 넘쳐버릴때가 있다. 모두가 다 등을 돌려도, 그래도 기댈 곳은 있다는 걸. 그게 너의 엄마라는 걸. 알 수 있게 아이를 키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