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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아무르 Apr 02. 2022

어디선가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분들께

다경과 민영의 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18년생 남자아이, 우주를 키우고 있는 다경이라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저는, 제가 꿈꾸던 무언가 대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 없었던 ‘엄마’가 되는 길은 생각보다 너무 어려워서 많은 순간 헤매고 더듬거리다가 혼자 주저앉아 우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때 힘이 되어주었던 사람 중 한 명이 10년 동안 보지 못했던 대학 후배 언니, 민영이었어요. 저보다 일찍 아이를 낳고 키우던 언니가 인스타그램에 남기는 솔직한 육아 기록을 보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도 했고, 언니의 사유 덕분에 큰 깨달음을 얻기도 했어요. 아이에 대한 기록을 더 구체적으로 남겨봐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모두 언니의 인스타그램 덕분이었습니다.


육아의 또 다른 탈출구는 그림책이었어요. 우주는 돌 즈음부터 그림책을 읽어주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이야기에 빠져드는 아이였습니다. 특히 위기나 갈등 상황이 나오다 해소되는 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했는데, 아이가 이야기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그 모습을 보는 저는 신이 났습니다. 저도 이야기를 아주 좋아하던 아이였거든요. 


저는 아이가 관심 가질만한 이야기를 찾으려고 그림책을 뒤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그만 그림책의 매력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림도, 글도, 담고 있는 내용도 너무 좋은 그림책이 참 많았거든요. 그림책은 육아의 지혜를 담고 있기도 했고, 미처 짐작하지 못했던 아이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는 열쇠를 갖고 있기도 했어요. 어린 시절 상상하곤 했던 어떤 순간들이 그림책에서 펼쳐질 때는 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행복해졌습니다. 몸이 힘들 땐 앉아서 말만 하면 되니, 저에겐 아이와 놀아주는 가장 쉬운 방법이 책을 읽는 것이기도 했고요. 


아이와 그림책을 보던 시간과 우리가 함께 본 좋은 그림책에 대한 기억을 글로 남겨보면 좋겠다, 오랫동안 생각했는데 저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그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늘,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아주 그리웠거든요. 그래서 지난해 말, 언니에게 불쑥 물었죠. 바쁘겠지만 같이 편지를 써보자고요. 저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흔쾌히 응해준 언니 덕분에 이 편지가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Dear 그림책 읽는 엄마>는 프랑스와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두 엄마가, 좋아하는 그림책과 그에 얽힌 서로의 삶과 육아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편지글입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어디선가 이 글을 보는 다른 이들에게도 깊이 가 닿을 수 있기를, 육아를 하며 지치고 힘든 순간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프랑스에서 만 5살, 만 2살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강민영입니다. 


저는 먼저 이 책에 등장하는 저의 아이들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첫째 준호는 엉뚱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입니다. 호기심이 많아서 질문을 입에 달고 살고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라 화도 불안도 많습니다. 힘들 때도 많지만 아이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준호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다정하고 예쁜 이야기보다는 본인처럼 엉뚱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이야기나 과학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요즘 가장 좋아하는 책은 <에그 박사> 시리즈입니다. 둘째 리아는 이성적이고 공감 능력이 뛰어납니다. 이야기보다는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대부분 가리지 않고 뭐든 잘 보는 편인 준호와는 달리 리아는 취향이 확실합니다. 문제는 제가 아직 리아의 취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좋아하는 책은 앤서니 브라운의 <윌리와 휴>입니다.


이제 저에 대해 말씀드릴까요? 저는 저의 세계를 더 확장하고 싶어서 프랑스에 왔다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연애하다가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게 되었습니다. 계획과는 다르게 프랑스에 정착하게 되자 저는 많이 당황했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어렵게 공부를 마치고 전업주부로 살던 어느 날 다경이 제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다경과 저는 대학교 때 알던 사이입니다. 우리는 자주 연락하고 만나지는 않아도, 가끔 만나면 반가운 사이였습니다. 저는 다경을 잘 몰랐지만 자유롭고 따뜻하며 열려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영화를 꿈꾸던 이십 대를 지나 현실을 짊어져야 하는 삼십 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흔이 되어 십 년 만에 만났습니다. 다경은 그림책 편지를 함께 써보자며 집구석 아줌마를 밖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원래도 마른 낙엽처럼 파스스한 가슴을 가진 저는 해외에서 전업주부 생활을 하며 겁이 더 많아졌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려웠고 앞으로 아이들이 기관에 가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잘 몰랐지요. 꿈꾸는 소녀 같은 다경이 그런 저를 밖으로 꺼내 주었습니다. 다경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도 행복했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건 저와는 많이 다른 다경의 편지를 읽는 것이었습니다. 따뜻하고 사랑이 가득한 시선에 제 마음도 따뜻해졌습니다. 저희들의 편지를 읽으며 여러분들 마음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길 바랍니다. 


2022년 봄, 

다경과 민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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