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긴 더 이상 내리막길이 아니야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by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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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에서만 페달을 밟던 내게 큰 고난이 닥쳤다. 바로 4동에서 3동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이었다. 두 살이나 어린 내 동생은 이미 신나게 소리를 지르며 내려간 후였다. 내 오른발은 페달 위에, 왼발은 땅에 붙인 상태로 가만히 서 있었다. 말이 땅에 붙인 거지, 거의 시커먼 땅에 발을 심은 거나 다름없었다. 눈 앞에 보이는 내리막길이 어찌나 가팔라보이던지. 며칠 간 우리 남매의 자전거 강습을 도맡아하던 아빠의 응원을 받고도 나는 한참동안 고민했다. 결국 왼발을 바닥에서 뗐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신나게 내려왔다. 넘어져서 다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동생에게 지고 싶지 않았던 승부욕 사이에서 승부욕이 이겼던 건 아닐까. 시작이 반이라고 했나, 한 번 내리막길을 맛 본 나는 겁 없이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여러 번의 이사 끝에 4동에 살았던 나는 같은 아파트 1동으로 돌아왔다. 이제 자전거를 타는 일이 너무도 쉬워질 나이가 됐다. 오늘은 회식을 하고 너무 배가 불러 아파트 단지를 걸어다녔다. 걷다 보니 내가 그렇게도 무서워했던 그 내리막길에 다다랐다. 겁 먹었던 내가 무색하리만큼 내리막길은 내리막길이 아니었다. 더 이상 내리막길이 아니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보다 키가 30cm는 컸고, 나이도 훨씬 먹었고, 자전거를 수도 없이 타 봤고, 더한 내리막길도 겪어봤으니까. 이제는 내게 내리막길보다는 평지에 가까운 그 길 앞에 서 있자니, 왠지 웃음이 났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인생은 상대적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어린 내게 두려웠던 것은 더 이상 내게 두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반면 어린 내게 두렵지 않았던 어떤 일들은 지금의 내게 너무도 두려운 일이 되었다. 예전에 비해 나는 덜 웃고, 주변 사람의 눈치를 보고, 하고 싶은 일을 쉽게 포기하기도 한다. 슬픈 일이다. 그렇지만 뭐, 이것도 상대적인 것 아닐까. 나는 언제든지 같은 일도 다르게 받아들이고 대처할 수 있는 상대적인 인간이니까.⠀⠀⠀


P.S. 집에 돌아와 아빠에게 물었다. 내게 자전거를 가르쳐주었던 것이 기억이 나냐고. 아빠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내리막길이 이젠 평지로 보이더라는 내 말에 웃어주었다. 아빠에게 자전거를 배울 수 있었던 내 어린 시절과, 그 어린 시절을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아빠가 내 옆에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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