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취미 #1 셀프 세차

네 방이나 치워라 - 엄마

by 감자

주말이 오기 며칠 전부터 포털 검색 창에 "주말 날씨"를 검색하고, 핸드폰 날씨 어플을 꺼내 주말 날씨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드디어! 비가 오지 않는 주말이다. 설렌다. 어디 좋은 데 놀러 가냐고? 아니다.


세차하러 갑니다!!!

누가 깨우지 않아도 나른한 주말 아침, 7시 15분에 눈을 뜬다. 평상 시라면 눈을 떴어도 애써 감고 더 자야지 나를 토닥이며 다시 꿈나라로 떠나겠지만 오늘은 침대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이른 아침 방문을 열고 나오는 나를 보며 엄마는 토끼눈이 된다. 다른 것도 아니고 "세차"하러 일찍 일어났다는 나를 보며 엄마는 한심과 이해불가가 담긴 표정을 짓는다. 이미 몇 번 겪은 일이기 때문에 양치와 세수를 마치고 쿨하게 집을 나섰다.




세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7시 30분. 친구와 아침에 눈을 뜨는 대로 세차장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녀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 시간이면 나 혼자 아니야?라는 설레는 마음으로 세차장을 왔지만 이 작은 도시에도 세차에 미친 사람들이 있다. 평상 시라면 외부세차 존으로 향했겠지만, 오늘은 큰 맘먹고 나왔으니 드라잉 존에 주차를 했다. 차 문을 활짝 열고, 코일 매트 연결고리를 풀고 코일 매트에 쌓인 먼지들을 제거한다.


자고로 세차란, 세차장까지 주행하며 열 받았을 엔진을 식히고 외부세차 시 신발에 묻을 물과 거품을 차 안으로 들이지 않기 위해 내부 세차부터 하는 것이라고 세차 고수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진공청소기에 동전을 넣고 차 내부의 먼지도 쏙 빨아들인다. 나름대로 거금을 주고 구입한 실내 코팅제도 타월에 묻혀 내부를 쓱쓱 닦아준다. 세차를 시작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덥다. 실내 세차를 대충 마치고서 외부세차 존으로 이동한다.




세차를 하면서 가장 신나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순간은 내 차에 고압수를 쏴대는 순간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걸레 하나만 달랑 들고 처음 셀프세차를 하러 간 그 날, 나를 셀프세차의 길로 빠지게 한 것의 팔 할은 시원하게 쏟아지는 고압수였다. 원래 쏟아져 나오는 물도 샤워기의 몇 배의 수압이지만, 트리거를 잡아당기는 순간 호수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의 양과 수압은 어마어마하다. 몸이 뒤로 밀릴 정도의 수압이지만 야무지게 호스를 왼손에 잡아 감고 이동하며 오른손으로 차 곳곳에 고압수를 뿌리는 그 순간은 너무나도 행복하다. 내가 차에 뿌리는 것은 물이지만, 마치 쌓아두었던 내 스트레스가 물과 함께 분출되는 기분이랄까? 쏟아낸 물만큼이나, 그리고 깨끗해진 차만큼이나 나의 기분까지 후련해진다.



내 차가 눈에 하얗게 덮인냥 폼건을 뿌리고, 다시 고압수를 뿌리고, 손에 미트 장갑을 끼고서 차 곳곳을 문질대는 과정을 거친다. 차가 물과 거품에 젖듯 내 몸도 세차를 하며 땀에 젖는다. 평상시에 운동은 쥐뿔도 안 하면서 세차를 하며 흘리는 땀은 어찌나 값지게 느껴지는지. 세차는 내게 일종의 운동이라고 자위하며 쉴 새 없이 미트질을 한다. 아가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뜨겁고 습한 날씨에 세차를 하며 생각한다. 더 일찍 와야겠다, 더 시원한 옷을 입고! 장마철이니, 팔이 빠질 만큼 유막 제거까지 하고 다시 고압수를 시원하게 뿌려본다.




고압수를 뿌리는 만큼이나 셀프세차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은, 드라잉을 마치고 차에 왁스코팅을 입히는 일이다. 아직 세린 이인 나는 고체 왁스는 꿈도 못 꾸고 액체 왁스를 찍찍 뿌려가며 버핑 타월로 문질러 광이 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수준이다. 가끔 내가 외부세차-드라잉-디테일링 세 단계를 거치는 동안 고체 왁스를 꺼내 들고 차를 정성껏 문지르는 셀프세차 고수들을 보면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박수).


다운로드 (2).jpg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 세차를 마친 나의 붕붕이


차의 본닛과 유리창에 투명하게 모든 것이 비친다. 나의 팔이 빠진 보람이 느껴진다. 늦잠을 잘 수 있는 주말의 아침이 날아갔고, 힘 없이 축 늘어진 나의 팔, 땀으로 흠뻑 젖은 나의 옷, 정리해야 할 세차도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세차를 마친 나의 기분은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산뜻함과 홀가분함이다.


다운로드 (1).jpg 세차 가방도 정리를 못하면서 무슨 세차를 하겠다고.....? 치우기는 귀찮아요 정말로.




외출 후, 주차된 나의 차를 본 아빠가 엄마에게 차가 정말 깨끗하지 않냐고 감탄하자 엄마 왈, "내부를 봐야지. 밖이 번쩍번쩍하면 뭐해?" 미안해요 엄마. 내가 내 방은 더럽게 써도 내 차는 밖도 안도 깨끗하게 치우거든요!


밤늦게 혹은 이른 아침에 세차를 하겠다고 짐을 챙겨 집을 나서는 나를, 처음에는 부모님도 이해하지 못했다. 몇만 원 주고 스팀세차를 맡기면 깨끗하게 세차할 수 있을 텐데 세차용품을 사고, 세차를 하며 돈을 쓰고, 굳이 고생을 하며 세차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셀프세차는 단순히 내가 타고 다니는 차를 깨끗하게 하는 행위를 넘어선 의미 있는 행위이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서 컴퓨터를 하고 문서를 들여다보는 일은 나름의 보람이 있지만, 즉각적인 성취를 이루어내기는 어렵다. 사실 종종 지루하기도 하다. 내 몸을 직접 움직여 쓰고 땀을 흘리는 일들도 마찬가지다. 운동을 해도 그 순간은 즐겁지만, 내 몸에 바로 어떤 변화가 바로 나타나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셀프세차는 다르다.


내가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려가며, 차에 물을 뿌리고 미트질을 하고, 왁스칠을 했을 때 차는 그만큼의 노력에 대한 답을 바로 해 준다. 뭐 혹자는 집을 청소하는 일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집이 차만큼 반짝거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쉽게도 내 차는 검은색이 아니라 이것이 차인지, 길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반짝거리는 광을 내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세차를 마치고 나면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바로 받는 기분이 든다. 깨끗해진 차는 나에게는 덤일 뿐이다.




새 차라서 그렇다고 그 취미가 얼마나 지속될 것 같냐고 코웃음 치는 사람들도 있고, 여자애가 무슨 세차를 취미로 삼냐고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취미가 오래 안 가면 어떻고, 셀프세차에 여자 남자가 어딨단 말인가. 어쨌든 셀프세차는 몇 개월째 여전히 나의 취미이고, 이 취미는 앞으로도 지속될 예정이다. 왜냐면, 오늘 이 글을 쓰기 전에 본격적으로 셀프세차를 해 보려고 세차용품을 또 주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셀프세차장에서 더 많은 여성 셀프 세차러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어떤 취미에도 성별의 제한은 없는 것이니까.


여전히, 저의 취미는 셀프세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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