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양장 제본서 전기」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소설집 『실수하는 인간』, 『품위 있는 삶』, 중편소설 『가해자들』이 있다. 미사여구로 말을 꾸미지 않고 담담한 문체로 서사를 끌어 나가는 정소현 작가의 책을 마주한다.
난생처음 도서관에 가서 1983년 신문 전부를 찾는 주인공, 20년이 지난 신문은 마이크로필름에 보관한다며 가져다준다. 데스크 가까운 창가에 자리 잡고 앉는다. 자기의 존재를 부정당한 주인공은 출생을 밝히기 위해 지난 신문을 찾아 읽다가 “합법적으로 사라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무료 서비스”라는 문구가 적힌 봉투를 받는다.
“의사는 장기간의 음주로 인해 나타나는 기억력 장애라며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테니 초기에 입원 치료를 하라고 권유했다. 우리가 가진 돈은 월세방 보증금뿐이었고 내가 받는 월급으로는 간신히 생활을 유지할 정도였기에 입원은 엄두를 못 냈다.” 15p
엄마가 자기의 의지로 술을 끊을 수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믿는 체 했다. 급기야 딸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다.” 엄마도 딸도 하루하루 힘겹게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서로를 귀찮아하면서도 엄마도 딸을 버리지 않았고, 딸도 버거운 엄마를 끌어안고 서로 다투고 싸우면서도 함께 살아간다.
“일을 했던 건 노동의 기쁨이나 자아 성취 같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내가 벌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16p
누군가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심지어 부모조차도, 주인공은 스스로 자기를 돌볼 수밖에 없었고, 그 이유를 단순하다고 표현한 작가의 담백한 묘사가 인상 깊었다. 주인공은 중학교 때 부모가 이혼했고, 엄마는 딸을 돌보지 않았고, 집을 나가 며칠씩 돌아오지 않을 때가 많아서 굶지 않으려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했고, 고등학교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실업계 야간고를 졸업하고 20대가 되는 현재까지도 생계를 위해서 온갖 잡다한 일들을 해가며 스스로를 먹이고 입히는 일을 하다. 최근에 일을 그만두었다.
주인공은 지나간 신문에서 출생의 비밀을 찾기 위해 신생아 유기 사건을 찾는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딸을 화장실에서 낳았다는 말도 하고, 자기의 딸이 아니라고도 했으며, 언제 태어났는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치매인 지금은 이모라고 했다. 여고생인 엄마는 소화불량인 줄 알고 약을 챙겨 먹었지만, 나는 결국 소화되지 않고 태어났으며, 공중변소의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주인공은 화장실이 편안하게 느껴졌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고 적고 있다.
도서관에서 기록이 보관된 마이크로필름을 보다가 서비스 신청서를 받으며 묻는다.
“이건 죽는 것과는 다른 거겠지요?
그럼요, 고달픈 삶을 사는 사람이라며 죽음을 생각해 볼 수 있지요.
하지만 죽는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요.”
이 서비스는 개인의 기록을 추출하여 양장 제본서로 남긴다고 했다. 몸은 사라지지만 정신은 제본된 기억 속에 머물게 되는 방식이라고 설명해 준다. 엄마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자기도 엄마를 점점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벽이랑 장판 등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엄마를 의식하지 못했고, 엄마가 아닌 사물로 인식하게 되었다. 엄마는 늘 함께 있기도 했고, 없기도 했으며 결국은 집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의 심리가 이해되기도 했다.
기억 보관용 서비스 신청서의 신청인란에 엄마의 이름을 적는다. 엄마의 기억과 삶을 채워 넣는 부분을 적지 못했다.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보이지도 않는 엄마를 제본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무의미한 일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아빠의 딸일 거라고 믿었는데 아빠는 자기의 딸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쨌든 너는 내 핏줄이 아니야.”
이 말을 듣는 주인공의 심정이 어땠을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누구인지를 알 수 없다는 건, 정체성을 모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앞도 뒤도 분간하기 어려운 안갯속을 평생 걷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었다.
오히려 주인공은 그 말을 듣고 “이리저리 엉켜버린 끈을 툭 잘라내 버린 것처럼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라고 말한다. 이미 그 말을 듣기 전부터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기로 작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집이 되어버린 엄마를 내팽개치고 짐을 싸서 집을 나오는 부분에서부터 사라지기로 작정했을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합법적으로 사라지기로 한다.
“일대기를 쓰다 보니 내 삶이 그다지 불행하지도 않고 너무 평이해서 탈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쓰레기통에서의 출생을 끼워 넣었다.”
온갖 어려움을 겪고 살아왔지만, 그 생이 기록되고 활자화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읽힌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어려운 삶도 아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었다.
남기고 싶은 기억란에는 대부분 삶의 기억을 삭제하고 도서관 창가에 앉아 보낸 시간만을 남기기로 한다. 자기의 삶을 추적해 나가며 도서관에 앉아 있던 시간만이 주인공에게 가장 행복해서 남기고 싶은 기억이 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붉은 벨벳 표지로 양장 제본된 주인공은 해가 잘 드는 창가에 앉아 화장실에 앉은 것처럼 편안해져 더 이상 알고 싶은 진실 같은 건 없었다”라고 끝을 맺는다.
자기 존재의 진실을 찾고자 애썼던 주인공에게 책이 된 후로 생애 처음으로 존중받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더 이상 진실을 알 필요도 없었고, 어떤 진실이라도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 되었던 것 같다.
사람이 책이 된다는 특이하고 상상력이 동원된 환상적인 설정이다. 엄마가 벽이 되었다가 장판이 되었다가 아예, 집이 되었다는 부분이나 아빠가 말하는 “요즘 같은 세상엔 책상이 되기도 하고, 신발장이 되기도 하고, 이름조차 안 남기고 완전히 사라진 사람들도 있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각박한 세상에 어렵게 살아가는 현실이 배경이고, 그런 삶을 피해서 어딘가로 어떤 방법으로든 사라지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시대를 반영한 소설로 읽혔다.
사라지고 싶어 책이 되었지만, 좋은 기억만을 남겨서, 부정당했던 자기의 존재가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라는 주인공에게 공감이 갔던 소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