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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수 있을까. 15년쯤 후에

최진영 소설집 『겨울방학』 (민음사, 2022) 중 「의자」를 읽고

by 민휴

최진영 작가는 2006년에 계간지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2010년에 첫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 간 그 소녀의 이름은』, 2011년에 장편소설 『끝나지 않는 노래』, 2013년에 첫 소설집 『팽이』, 이후에 장편소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이제야 언니에게』, 소설집 『겨울방학』, 장편소설 『내가 되는 꿈』, 『일주일』 등을 썼다.

『겨울방학』은 열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낯선 형식에 놀랐다. 대화 표시인 큰따옴표가 없다. 형식상으로 묘사와 대화 표시가 없는데도 읽어 나가는데 어려움 없이 매끄럽게 읽힌다. 새로운 형식을 제시한 단편들인데도 좋은 문장들이 많아서 단박에 팬이 되었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의 「의자」에서 나는 가구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동안 많은 가구를 만들었고, 식탁을 만들 때 가장 즐거웠다고 한다. 평생 의자를 두 개 만든다. 15년 전에 첫 의자를 만들었고, 어제 두 번째 의자를 완성했다고 한다.


의자를 이야기하는 것 같으면서도 인물 간의 관계를 말한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상황을 보여주는 문장들로 그려주고 있어서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떠나고 남겨지고 남겨 두던 일들이 차근차근 일어나던 한 시절의 이야기를 그런 날이 지나고 오롯이 남은 하나의 의자에 대해”이야기한다고 밝히며 전개해 나간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7년 동안 중동에서 일하며 돈을 부쳤고, 어머니는 그 돈을 모아 아파트를 한 채 마련했다. 가족의 생활비는 어머니의 월급으로 해결했다. 어머니는 나를 낳은 다음 해부터 버스 터미널의 매표소에서 일했다.


나는 집과 10분 거리에 있는 외할머니 집에서 자랐다. 20년 동안 외할머니와 나는 매일 만났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 그런 사람은 외할머니뿐이다. 외할머니는 할머니의 자식과 손주들까지 열 명 넘게 키워냈다.

“죽는 건 참 무서운 일이라고, 이만큼 살아 놓고도 죽는 게 무서우니 내가 세상을 참 헛살았다”라고 중얼거렸다. 94세에 노환인 할머니를 위로하며 죽음을 무서워하지 말라고 위로하는 손자의 모습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성장한 주인공과 할머니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할머니의 푸념 섞인 이야기들을 모두 들어주는 자상함이 좋았다.



부모와의 관계는 친밀감이 떨어지는 양상으로 차가운 관계성을 보여준다. 내가 15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7년 만에 중동에서 돌아왔기 때문에 ‘어머니는 손님 대하듯, 나는 선생님 대하듯 아버지를 했다.’ 서먹하고 소원한 부모들의 부부싸움 후에 묘사된 집안 분위기가 절묘했다.


“여명을 받아 거실은 쇳빛이었다. 무섭게 고요했고 차가웠다. 그때 본 차고 고요한 쇳빛은 그 느낌 그대로 우리 집의 밑그림이 되었다.” (p147)



문장만으로도 어떤 분위기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최진영 작가의 감정과 내면을 묘사하는 문장들에 마음 깊이 공감하였고, 몰입해서 읽으며 주인공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풀처럼 돌처럼 가만있었다. 가만있는데도 찌그러지는 느낌이었다.” (p148)

부모의 불화와 평화롭지 못한 집안 분위기는 사춘기 시절의 주인공에게 깊은 우울과 힘겨운 사춘기를 견디도록 만든다. 자정 가까이 집에 들어가지 않는 처음을 경험한다. 커피를 처음 마셔보고 주머니의 담배를 받는다. 친구는 담배를 피우고 처음을 경험해 보는 관계성에서 무언가에 빠져드는 신기한 일에 대해 말한다. 사춘기가 되어 가는 아이의 감각을 깨우는 이야기.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된다.


외할머니도 내가 만든 관에 누우면 무섭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과거의 소진을 만나서 새롭고 처음이었던 것들에 눈떴던 시간을 회상하고 소진과 함께 있기 위해 마음을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자신다움을 버리고 용기를 낸다.

시간적 배경은 15살과 30살에 15년 단위로 만나게 되는 나와 소진은 갈등 자체와 엉뚱한 방식으로 내적 갈등이 보인다. 그런 만남이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소진은 우연이라고, 나는 우연이 아닌 운명이라고 느끼는 마음들이 갈등한다. 작가는 내면을 묘사하는 문장들에 집중해서 쓰고 있다. 자기에게 의미 있는 시간만큼만 앉아 있을 수 있는 일인용 의자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긴 서사에서 중요한 부분만 묘사해서 써진 글을 통해 소설에서의 시간은 작가가 운용하기 나름”이라는 설명도 기억난다.

“편하지는 않지만 잠시 앉아 쉬기에는 좋은 의자”를 만든다는 주인공과 그리운 친구를 떠나보내며 더는 욕심을 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판기 커피가 식을 동안이 이별하는 시간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주인공이 안타깝기도 해서 여운이 많이 남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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