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혁 시인은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 『다만 이야기만 남았네』, 『슬픔 비슷한 것은 눈물이 되지 않는 시간』,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산문집 『한 줄도 좋다, 만화책』 등이 있다.
2023년 김춘수 시 문학상에 선정되었으며, 2023년 대산문학상 최종후보에 오르는 등 최근 문학계의 아이돌로 주목받는 김상혁 시인의 산문집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런 우리 앞에 선물 같은 책 『선물 하나가 놓이기까지』가 도착했다.
표지와 내지의 색깔마저도 지적이다. 크기와 두께감도 양손에 착 안기는 느낌이 벌써 마음 안으로 들어온 책이다. 친근한 책과 영화 등을 다른 각도로 재해석하는 작가의 안목이 돋보이는 뛰어난 교양서라고 표현하고 싶다.
“시 쓰기는 내가 손에 쥐고 싶었던 가장 특별한 빛이었다.” (「특별한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 알고 있는 이야기와 자기 생활과 생각들을 엮어 창의적인 발상과 결론에 도달한다. 아이에게서 시작해 이야기 세계로 떠났다가 도돌이표처럼 아이에게 돌아온다. 돈에 연연하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는 작가는 물욕에 굴하지 않고 정신적인 맑음과 시 쓰기를 붙잡고 살아가는 시인이다.
“단 한 명의 가난한 아이 하비 슬럼펜버거의 머리맡에 크리스마스 선물 하나가 놓이기까지 그림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은 고통을 떠안는다.” (「우리의 고난을 아이에게 알리지 말라」)
당연하게 받아왔던 것들이 누군가의 희생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세상 모든 것에 세상 모든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 삶은 행복이기에 매일 해피엔딩의 나날을 보낼 의무가 있다.
아이에게 매일 책을 읽어주는 작가는 동화에서도 책을 읽고 받아들이는 아이의 입장에 선다. 어른으로서 여러 가지 시각으로 바라본 내용을 풀어놓는다. 비판적 독자로서의 분석적 사고로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지 배웠다.
〈잭과 콩나물〉에서는 나쁜 일을 하는 거인이 다쳤다는 부분에서 아이는 울음을 터트린다. 글의 내막과는 상관없이 누군가 다쳤다는 것을 슬퍼하는 아이가 참 착하고 순진하다.
〈백설공주〉에서도 왕비의 비참한 죽음들을 슬퍼한다.
〈신데렐라〉에서도 계모와 언니들에게 처참한 복수가 이어진다.
흔하게 알고 있는 동화들도 여러 판본과 버전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았다. 동화에서만큼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권선징악의 결말과 달리 아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해피엔딩이 존재하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도 너무 감사하다.
〈미드 나잇 인 파리〉에서는 과거로 간 작가가 과거 속에서 만나는 등장인물들과의 대화에 매료되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감상했던 영화였다.
“길이라는 ‘중심’이 영화 속 다른 인물들을 주변부로 밀어냄으로써 영화를 역동적인 현실이 아닌 완벽한 헛것으로 구성해 내고 마는 탓에 관객 또한 영화가 끝나는 즉시 아무런 부담 없이 자기들의 일상으로 밀리듯 되돌아간다.” (「서랍 속으로 들어간」)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서부영화의 대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야기도 좋았다. 석양의 무법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등을 보았던 시절이 생각나서 활자로 만나는 이름만으로도 행복했다.
“모든 명작의 새드엔딩이 관객을 안전하고 긍정적인 카타르시스로 이끈다는 점에서 관객석을 벗어나는 순간 관객은 곧바로 자기 일상의 해피엔딩에 몰입하게 된다.” (「비극의 카타르시스와 행복한 일상」)
책이나 영화나, 만화나 종국에는 현실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일이 목적일까? 내 삶이 그나마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현실로 돌아가서 또 힘을 내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책도 영화도 동화도 그냥 보면 안 된다. 사유하고 톺아봐야 제대로 보는 것이다. 다른 시각으로 보고, 사회현상과 비교해 보고, 사람의 일과 빗대어 본다. 이 책도 삶은 곧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별이 너무나도 가깝고 무수한 나머지 밤하늘이 무게를 못 이기고 무너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캐나다의 밤하늘이 환상처럼 묘사되었다. 그가 냉철한 사람만은 아니고, 다분히 낭만적인 감성을 품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이 따뜻하고 낭만적인 성품의 소유자라는 것을 애써, 모른 척하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의 문제들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독자들의 관심에서 벗어날 게 뻔하다. 작가는 책을, 영화를, 만화를 끌어와 현실과 묶어서 속속들이 해부해서 설명해 나간다. 나는, 우리는, 현실은… 이렇게 이야기를 확장해 나가면서 공감을 끌어내고, 또 한 사람의 다양한 시각과 해설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말씀에 공감하고 또 다른 사람들도 널리 읽히기를 권장한다.
“지평”을 언급한 부분을 복기한다. 작가는 강의와 토크와 시 쓰기 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뒤편에서 엄청난 책 읽기와 공부를 해낼 것이다. 제자들에게 권하는 책 한 권도 미리 다 읽고서야 권하는 성정이고 보니, 라디오에서 시를 읽고 논하는 일에서야 오죽하겠는가. 천상 교수자인 그는 학생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신뢰를 받는 영향력 높은 작가다.
김상혁 시인이 쓴 책이라면 의심할 여지없이 좋은 책이고, 빈틈없이 좋은 내용이다. 네 권의 시집과 산문이 그랬듯이 이 책 또한, 예상했던 만큼 감동적인 내용을 선물해 주는 소중한 책이다.
“문학이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따지는 효용론의 측면에서 볼 때 인간에게 인간적인 것을 돌아보게 하는 결말보다 더 아름다운 결말은 없을 것이다.”(「배드엔딩과 부드러운 마음」)
작가가 마지막 부분에 아끼고 아껴 쓴 당연한 말이지만, 쓰기 어려운 귀한 문장이다. 이렇게 happy e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