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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Feb 09. 2024

추위는 눈을 타고

블루베리 나무 구하기

대설특보가 내렸다. 블루베리 나무가 걱정되어 측창까지 내리자고 말했는데 나무는 사람과 다르다고 괜한 말을 한다고 타박만 들었다.



며칠 전 대설특보 때는 내려 두었던 창들이 얼어서 말려 올라가는 바람에 어려움이 많았다. 손으로 얼어있는 부분을 떼느라 힘들었다.



조절기의 퓨즈가 나간 것을 모르고 원인을 몰라 철물점을 찾아다니며 상담하고 퓨즈를 갈아 끼우느라 한나절을 소비했던 일이 있었다.



이번의 거꾸로 상황도 비슷할 것 같았다. 나중에 비닐창을 내리려면 내린 눈이 얼어서 힘들 것 같다고 말했지만, 청개구리 남편은 한사코 괜찮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상보다 대설특보가 길어지고 있었다.



"하우스 옆창을 내려야 할 것 같은데..."



저녁에 영하 10도까지 내려간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오후 늦은 시간에야 농장에 가자고 말한다. 나무가 추울까 봐 걱정하고 있던 나는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다.



농장에 도착해 보니 눈발이 하우스 안까지 날아들었다. 옆창을 내려야 해서 남편은 하우스 안쪽에서 기계장치를 조절하고 내가 바깥에서 창문이 바르게 내려오는지를 살피게 되었다.



조금씩 잘 내려오던 비닐이 30cm 정도 내려오다 속으로 말려서 들어가는 곳이 생겨서 '스톱'을 외쳤다. 다시 올려서 천천히 내리며 살펴보니 얼음이 얼어서 엉겨 붙은 부분들이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남편도 바깥으로 나와서 손으로  부분을 떼어가며 한쪽을 겨우 겨우 내릴 수 있었다.



장갑 낀 손으로 얼음을 떼어내는데도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언 손가락이 아파서 입으로 호호 불면서 녹여보려고 해도 속수무책이었다. 예민한 손끝으로 얼음을 만지는 시간이 길어서 그런 것 같았다.



어찌나 추운지 토지에서 독립운동하던 용정의 추위가 이 정도는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독립운동하셨던 조상님들께는 죄송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과 심정이 그랬다. 내 기억으로는 그렇게 추워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작업을 모두 마치고 들어오는데 온몸이 추워서 덜덜 떨렸다. 특히, 손가락이 아파서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꾹꾹 참고 있었다.



"아! 추울 때는 비닐에 내린 눈이 엉겨 붙어서 이런 현상이 나오는구나. 이제야 원리를 알겠네!"



남편은 춥고 아픈 내 사정은 전혀 모르는지 "원리를 알았다"라는 말을 세 번째 반복하고 있었다.



"당신은 그 원리를 알아낸 것이 그렇게 장해요? 지금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고!!!"



"아차차! 내가 우리 민ㅇㅇ 한테 천인공노할 짓을 했네! 정~말 미안해!"



"이미 늦었다고! 진~짜 진~짜 뭘 모르는 남편! 며칠 전부터 얼기 전에 창문 내리자고 말했잖아! 왜 내 말을 안 듣고, 안 해도 될 생고생을 이렇게 시키냐고! 엉엉엉..."



억지로 참았던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느닷없이 농부가 된 내력에 대한 원망이 슬그머니 또 올라왔다. 블루베리 나무들은 내 눈물을 다 보았을 터다. 우리의 노고를 알거든 부디 건강하게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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