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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Feb 02. 2024

그 힘든 일을 다시 하자고?

초보 농부와 프로 농부

수로를 만드느라 며칠째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수로에 통을 모두 설치하고 한시름 놓고 있었다. 남편은 내 생각과 달랐다.



"앞쪽이 더 깊은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던 남편의 입에서 나온 불안한 말이었다. 어쩌면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는지.



"다시 뜯어야겠어."

"......"



망치로 힘껏 때려서 깊이 박아 놓은 긴 나사(40cm) 다시 뽑아야 했다. 모두 38장을 깔았는데 앞쪽 10장을 뜯어야겠단다.



장비가 없어서 철물점에 간다고 나섰다. 요새  철물점을 쥐방울 드나들 듯하 있다. 장비빨이라고 하더니만...  "빠루"라고 이름부터  난감한 쇠막대기를 사 왔다.



열 장을 뜯어 내는데, 통을 연결하면서 철사로 묶어 놓은 것을 풀어야 한다. 통의 양 옆에 꽉꽉 채워진 흙을 파야 하는데 땅이 얼어서... 글로 쓰려고 하니 눈물이 날 것 같다... ㅠㅠ



온 힘을 다해 완성한 일을 내 손으로 해체하고  그 고생을 다시 하려고 하니, 기운이 빠져서 열 배는 더 힘이 드는 것 같았다. 이런 시행착오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남편은 빠루로 못을 빼내고 흙과 밀착되어 있는  통을 분리했다. 깊다고 생각되는 에 흙을 채워서 골랐다. 수평자를 올려가며 반듯한지, 물길이 흐르는 방향 쪽이 낮게 놓였는지 마치, 도를 닦듯 묵묵히 일을 다. 평생 그 일만 해 온 사람처럼 꼼꼼한 손길로 공들여 물길을 만들었다.



둘째는 수평이 맞지 않는 통 위에서 쿵쿵 뛰면서 수평을 맞추는 것을 도왔다.

"콩콩이 놀이다."

농장일을 돕겠다고 휴가까지 받고 기껏 한다는 일이 놀이 반, 일 반이다.



옆에서 시중들고 작은 삽으로 몇 번 삽질을 했다.  대부분은 이렇게 저렇게 추임새 정도인데도 자세 때문인지 무릎도 발목도 움직일 때마다 "아이고" 소리를 동반한다.



통을 배치하고 양 옆에 흙을 채우는 일까지 완성했다. 천정에서 내려오는 물기둥을 세워야 하는 만만찮은 숙제가 남았다.



우리는 아직도 갈길이 먼 초보 농부다. 농사에도 때가 있는 법인데, 매번 시기를 놓치고 있다. 그렇다고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추운 날이나 비가 오는 날 바깥일을 하거나, 더운 날에 비닐하우스 속이나 땡볕에서 일을 하는 등 미련스레 더 어렵게 일을 하게 된다.



프로 농부는 농사일의 공정을 일기에 맞춰서 하는 농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이 생기기 전에 예방적으로 농사일을 하고, 계절(특히, 24 절기)에 맞춰서 제 때 해야 하는 일들을 해 나가는 농부가 프로 농부가 아닐까.



올해까지는 농장의 모든 의 공정을 처음 겪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 치고... 내년부터는 예행연습을 끝내고 프로다운 면모를 갖춰야 할 터다. 



우리의 일과는 상관없이 기차는 목적지를 향해 기운차게 달려가고 있다. 아무리 바빠도 기차가 지나가면 카메라를 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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