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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Jan 26. 2024

나보다 소중한 너

며칠 봄날처럼 따뜻하더니 눈이 내렸다. 나무들은 추운 날씨가 좋다고 해서 너무 따뜻한 겨울 날씨를 걱정했었다. 오늘 같은 추위정도는 있어야 된다고 한다. 비가림 하우스 속에 있는 블루베리 나무가 추울까 봐 옆창을 닫아주지 않아도 될까 걱정되었다.




"바깥에서 자라는 블루베리도 있고, 산과 들을 봐! 나무들이 잘만 사는데 뭘 그렇게 걱정을 해!"




이럴 때는 냉정해서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나는 눈이 와서 땅도 얼고, 추워서 일을 못하겠다며 농장에 가지 않는 것을 은근히 좋아했다. 나와는 달리 일은 할 수 없어도 농장을 둘러보고 오겠다며 눈길을 마다치 않고 농장으로 향하는 남편이 더 농부 같기는 하다.




"상추 좀 자랐던가요? 뜯어서 첫째한테 보내고 싶은데."


"추운 날씨에 얼마나 크겠어. 별로 안 자랐던데..."




야채를 키우느라 물 한 번 못 준 첫째한테 좋은 것들은 다 보내게 된다. 다행히 채소를 좋아해서 먹을 것이 떨어지겠다 싶으면 바쁜 일을 제쳐두고 큰 애한테 택배를 보내곤 했다. 여름 내내 오이, 가지, 호박, 오이고추도 크고 좋은 것은 큰 애 몫이었다.




지인분이 자신은 평생 열심히 돈 벌어서 어려운 형제들이나 자식들에게 모두 주게 되는 것을 보면, 열심히 돈만 벌었지 정작 자신에게는 쓰지 않았다면서 '자기가 쓴 돈만 자기 것'이라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부모란 그런 존재인가 보다.




그러고 보면,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줄 때는 더 좋은 것을 주게 된다. 내가 조금 못한 것을 먹고 입고 쓰더라도 그렇게 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엄마도 항상 그랬다. 좋은 것들은 자식들한테 나눠 주고, 자신은 가장 못난이만 남겨 두었다.



"엄마! 제가 고구마 사드릴게요. 제발 힘들게 심지 마세요."



작년, 고구마를 심을 시기에 엄마가 기운이 없어 못 심겠다고 걱정했다. 마침. 고향 마을에는 고구마 농사를 크게 지으셔서 로컬푸드에 납품하시는 이장님이 계셨다. 맛있기로 소문나서 주문이 폭주한다고 들었다. 그 댁에서 사서 먹자고 고구마를 심지 마시라고 했다.




"고구마 나왔단다 주문해라. 나는 이장님이 조금 상한 것 한 박스 줘서 잘 먹고 있다. 회관에도 맨날 쩌 와서 고구마 풍년이다."




지인들과 나누려고 몇 상자 주문했다. 돌아오면서 엄마 드시라고 한 상자를 놓고 왔더니, 한참 지나 고구마가 다 떨어질 무렵 다시 고구마를 사서 한사코 갚아주신다.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더 맛있게 먹자며 웃으신다.




고구마 농사를 성공하신 그분은 해마다 농업기술원에서 새로 개발한 고구마순을 가져와 농사를 지으신다고 비법을 알려 주신다.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고구마라고 입증이 되었다는 것이다. 대기자가 많아 서둘러 주문해야 한단다. 내가 고구마 농사를 지을 것도 아닌데 좋은 정보라고 생각하시고 알려 주시는 우리 엄마는 역시 베테랑 농부 최 회장님이시다~ㅎㅎㅎ




한겨울에도 배추와 상추를 지키고 있는 우리의 보물창고가 된 텃밭 하우스가 기특하다. 상추도 뜯고, 배추도 속찬 것을 골라 손질했다. 택배 박스에 직접 기른 무로 담근 조각김치와 비트절임도 넣었다. 소용될 것들로 가득 채워 첫째에게 보냈다. 택배를 받아 볼 첫째가 행복해하며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어서 내일이 빨리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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