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순간에 만난 사람

_[사랑은 왜 밖에 서 있을까] 최문자, 난다, 2022. (산문집)

by 민휴

1982년에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시집 여덟 권, 시선집 한 권을 낸 최문자 시인의 첫 번째 산문집이다. 책을 읽는 내내 시를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책의 전체를 밑줄 긋고 싶었다. 모든 내용이 공감이 가서 아프고 슬펐다. 삶에서 어쩔 수 없이 느껴야만 하는 깊은 고독에 대한 이야기들에 매료되어 꼬박 네 시간을 앉아 읽기를 마쳤다.




80세의 연세에 쏟아져 나오는 감성의 깊이와 삶에 대한 통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수필의 정수를 읽는 듯했다. 탄탄한 구성과 술술 읽히면서도 느껴지는 깊은 사유, 인생을 이야기하는 노련한 솜씨가 글이 아닌 시낭송을 듣는 것 같았다. 폐암 판정을 받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밟고 돌아온 그가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라서 더욱 허리를 곧추 세우고, 귀를 쫑긋하고 집중하여 내면의 목소리와 행간의 뜻을 읽어내고 싶었다. “시 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했다.”는 그의 말이 책을 덮고도 계속 마음을 울렸다.



살아오면서 늘 생각하고 있는 여러 가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조목조목 알려 주는 것 같아, 상담을 받는 심정으로 읽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고뇌와 고독을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글에서 무한한 사랑의 실천이라거나, 봉사나 헌신, 이런 것들이 억지로 강요되지 않아서 좋았다.




1부는 푸르게, 불행은 날개를 단다.

어둡고 불안한 생과 사의 경계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 발 잘못 디디면 경계가 바뀔 수도 있을 것 같은 아슬아슬함을 단단히 붙잡아 줄 수 있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살아낸다는 목적으로 살아온 이야기들을 적고 있다.

2부는 시는 비밀을 어떻게 품고 있는가

시 창작에 대한 내용과 자신의 시집을 소개하기도 하고, 자신의 시를 쓰게 된 경위와 소회들이 적혀 있다. 세계적인 문학가들의 시와 말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

3부는 나무는 죽을 때 슬픈 쪽으로 쓰러진다

세상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몰론, 문학작품을 통해 이해하기 쉽도록 구성했다. 천상 이야기꾼인 그의 말을 따라가며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며 공감된다.




「그때는 정말 뿌리를 부르게 된다」에서 “거목이 거목으로 서 있는 것은 그 힘이 뿌리에 있어서다. 또 무한하게 뿌리의 뻗침을 수용하는 대지가 있어서다. 뿌리는 땅속에 수동적으로 묻혀 있는 존재가 아니라 무섭게 파고드는 존재다. 누구나 지상의 것이 무너지려 할 때 뿌리의 현존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뿌리를 부르게 된다.”라고 했다. 세상에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절대로 없다는 말을 믿는 나는 위의 글에 무한한 공감이 갔다. 무언가를 이뤄낸 사람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숨은 노력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거목은 아니지만, 나도 엄마가 그리운 순간이었다.




「시인들의 보는 법」에서 “같은 시력을 가지고 같은 지점에 서 있어도 보이는 것이 다른 것은, 그동안 사랑해왔던 시간과 더 깊은 관련성을 갖는다. 우리는 늘 보고 싶은 것, 눈에 확 띄는 것, 보기에 좋은 것, 필요한 것만 보려고 한다. 잘 보이지 않는 것, 차마 볼 수 없는 것, 보고 싶지 않은 것, 보면 해가 될 것은 최대한 피하고 싶어 한다.”라고 적고 있다. 나는 최대한 좋은 면만 보려고 한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말이 있듯이 숨겨진 이면을 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었는데 지혜를 가진 어른의 말에는 배울 점이 참 많은 것 같다.




「에미는 네 껍질이야」에서 “누구나 변화를 두려워한다. 지금 있는 그대로가 안정되고 편하다. 그러나 변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더 혹독한 고통과 만나야 하고, 변화하고 싶어도 변화할 수 없는 지점에 서 있게 된다. 산자락에서 본 나무껍질들, 신은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변화의 필연성을 일깨워준다. 세상의 모든 껍질들은 쓸쓸하다.”라고 했다. 알맹이에 대한 껍질의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유년 시절 그의 어머니께서 혼잣말로 가끔 하셨다는 “에미는 네 껍질이야”라는 말에 대한 사유의 확장이다.




모든 생명은 자신을 만들어 준 껍질을 버리고 알맹이로 태어나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태어나게 해 준 부모님은 물론, 살아가면서 여러 분야에서 알게 모르게 나를 도와주고 지지해준 사람들에게서 입은 은혜들을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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