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으로 떠나는 동화

― 윤혜숙 장편 동화 『번쩍번쩍 눈 오는 밤』(서유재, 2020)을 읽고

by 민휴

문화재단 창작지원금에 선정되었고 한우리 청소년문학상을 받았으며 각종 공모전에 당선된 이력이 있는 자타 공인 인기 작가 윤혜숙 선생님의 장편 동화다. 그의 장편 동화 『나는 인도 김씨 김수로』, 『기적을 불러온 타자기』, 『나의 숲을 지켜 줘』와 단편 동화집 『피자 맛의 진수』를 읽었던 나는 그의 동화가 얼마나 어린이들을 즐겁게 행복하게 해 주는지 잘 알고 있다.




이 책은 첫 페이지부터 “초등 교과 과정 연계”가 기록되어 있다. 초등 3학년부터 6학년까지 국어와 사회 과목과 연계된 학기와 차례를 밝혀 놓아서 책을 선택하는 사람의 손길을 유혹한다. 또한 끝부분에는 책에서 언급한 “동화 속 문화와 역사 엿보기” 코너가 있다. 전통과 역사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글쓴이의 설명까지 덧붙여 있고, 독후활동지도 있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폭넓은 지식을 얻어 가는 일석삼조의 책이다.



『번쩍번쩍 눈 오는 밤』도 어린이들의 흥미를 끌 만한 내용들로 넘쳐난다. ‘생축’, ‘톡방’, ‘이모티콘’ 등 요즘 아이들의 생활이 그려지고 있으면서도 외할머니의 장례식에 가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엄마의 어린 시절인 옛날로 돌아간다. 엄마의 입을 통해 온갖 놀이가 등장한다. 어른들의 놀이는 참 신기한 것도 많다.


묵을 좋아하는 도깨비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엄마와 함께 자랐던 사촌 오빠 ‘성국 아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성국 아재는 아버지가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사망하고 엄마는 성국을 주인공 수아의 외할머니인 고모 집에서 맡긴다. 수아의 엄마와 어렸을 때 함께 자라 가다 갑자기 집을 나간 ‘성국 아재’가 외할머니의 장례식에 올 것인가를 놓고 이야기를 끌어간다.


‘성국 아재’에 대해 엄마는 “어린 날의 행복한 기억 속에는 늘 오빠가 있었어요. 어른들 눈에는 말썽꾸러기였는지 몰라도 우리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오빠였다고요.”(「말썽꾸러기 아니야」)라고 말한다. ‘뱀도 쫓아주고, 개미굴도 찾고, 산 더덕밭도 찾았다고 한다. 개헤엄 치는 거랑, 돌로 아궁이를 만들어 짚불을 피워 콩꼬투리와 수수를 굽는 것도, 정월 대보름에 집집마다 찰밥과 김장 김치를 얻으러 다닌 것’ 등의 즐거운 일들 속에는 늘 성국 오빠가 함께 있었다고 말한다.




여러 날 외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느라 친구도 없는 시골에서 심심하던 수아는 외삼촌을 따라 본채와 떨어져 있는 광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번개’라는 도깨비를 만나게 된다. 번개를 따라 순식간에 뒷산으로 이동한 수아는 엄마가 어렸을 때 신나게 놀았다는 ‘포대 타기’를 한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나무들의 키가 점점 커진다는 것도, 높은 곳에서는 머리가 핑그르르 돌 정도로 아찔하다가도 개울이 가까워지면 등이 절로 펴진다는 것도, 포대 타기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라고 썼다. 이 부분은 실제로 포대 타기를 한 사람이라서 실감 나게 표현된 것 같다. 작가가 강원도 태백산 아랫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는 약력이 뒷받침해 준다. 나도 산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겨울이면 집 뒤의 언덕배기에서 포대기에 짚을 채워 종일 썰매를 탔던 기억이 생생하다.




주인공 수아는 “할머니는 어른의 기침 소리만 들려도 발딱 일어나고 어른이 수저 들기 전에 먼저 밥을 먹으면 안 된다고”, “문지방에 걸터앉지 말라고 했고 밤에 손톱 발톱 깎는 것도 못 하게 했다. 그것들이 도깨비로 변해서 찾아온다고” 등 외할머니의 말씀을 잘 기억하는 착한 아이다. 그를 통해 요즘의 어린이들에게도 ‘예의 있는 행동’을 알려 주는 것 같다.


도깨비와의 놀이를 마치고 외할머니 집에서의 마지막 밤, 어른 도깨비가 외할머니 집에 찾아온다. 사람처럼 보이지만 주인공 수아는 도깨비라는 것을 눈치로 알 수 있었다. 도깨비가 전해 주는 이야기를 통해 성국 아재의 사연이 밝혀진다.


착하고 성실하던 성국 아재가 갑자기 변한 것은 새아빠의 등장이었다. 술과 노름을 일삼고 엄마를 괴롭히던 새아빠는 외할머니를 찾아와 성국을 내놓으라며 돈을 요구했다. 엄마는 아빠를 피해 서울로 떠나고 성국은 엄마를 찾겠다고 집을 떠나게 된다. 그 와중에 함께 사는 가족들에게 정을 떼려고 일부러 나쁜 행동을 했다고 한다.




“부모 사랑을 받지 못 한 사람들이 그런 법이지요. 흔들리는 갈대처럼 마음 붙일 곳이 없으니까요. 새집 할머니가 품고 보듬어도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을 거예요.”, “그 또래의 아이들은 엄마의 손톱만 한 관심에도 기뻐하고, 조금만 서운하게 대해도 자기만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법이지요. 하지만 성국이는 이유가 달랐을 겁니다. 말썽 부리고 사고 치는 게 새집 식구들과 정을 떼려고 그랬을 거예요. 성국이 걔가 속이 좀 깊었어야죠.” 도깨비는 어쩌면 이리도 사람의 마음을 어린이의 마음을 속속들이 잘 알까요. 윤혜숙 작가님의 능력이겠지요?




외할머니가 집을 떠나겠다는 성국을 달래려고 성국 아빠의 산소에 데려가지만, 성국은 기어이 엄마를 찾으러 서울로 가겠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간직하고 있던 성국 아빠의 유품인 금반지를 건네며 엄마를 찾을 때 필요할 거라고 한다. 도깨비는 금반지가 없으면 성국이 떠나지 않을 거로 생각하고 금반지를 훔친다. 도깨비는 외할머니 장례식에 그 반지를 놓고 간다. 다음 날 아침, 함박눈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하늘 아래로 성국임이 분명한 사람이 마을을 향해 걸어오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끝난다.




어린 시절엔 행복했던 기억이 참 많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던 다양한 놀이는 근심 걱정 없이 마냥 즐거웠던 것 같다. 그래서 동화에서도 그런 장면들을 만나면 덩달아 과거로 돌아가 행복해지는 것 같다. 스마트폰이 없어도 게임기가 없어도 온통 자연과 함께 뛰놀았던 시절의 이야기도 요즘의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동화라서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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