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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Mar 08. 2024

바쁜데 해찰하는 마음

몇 날 며칠 블루베리 화분에 잣껍질을 올리고  있다. 보충할 흙은 모두 채웠다. 가지치기를 마치고 화분 위에 떨어진 나뭇잎과 자갈돌을 골라내고 보이는 풀도 뽑아야 한다.



1. 가지치기

2. 나뭇잎과 자갈돌 고르기

3. 풀 뽑아내기



다음에 잣껍질을 올려야 한다. 잣껍질을 올린다는 말만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화분이 배치된 골목마다 리어카로 잣껍질이 담긴 포대를 옮겨서 화분 위에 삽으로 퍼 올린다. 그 작업이 발목과 무릎과 허리와 어깨까지 아프면서도 저절로 힘이 가게 돼서 나는 환자가 돼 가고 있다.



한꺼번에 작업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니라 블록별로 전체과정을 마무리해 가면서 한 줄 한 줄 작업을 마치고 있다. 일 단계로 잣껍질을 왕겨 포대에 담아서 트럭으로 운반해 놓고 다음 단계 작업을 시작한다. (왕겨 옮기기-가지치기-화분청소-잣껍질 올리기)




일주일을 예상했던 작업은 두 배의 시간으로도 모자랄 지경이다. 중간에 돌발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우스 조절장치가 설치된 곳에 고질적으로 물이 고여서 퍼내곤 했었다. 기계들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원인이다. 파이프를 바깥으로 빼낼 수 있게 바닥에 작은 구멍을 뚫어 물이 바깥으로 빠지도록 만들었다.



배수로를 만들고 블루베리 하우스와 복숭아밭 사이에 다리가 필요했다. 갑자기 오늘 만들고 싶었는지 삽과 나무 팔레트들을 뒤적거린다. 땅을 파서 수평을 맞추고 삼매경에 빠졌다. 완성된 다리가 그럴싸하다.



"완전 멋져요!"

"난 목수로 살고 싶었어."

"농부가 되고 싶었다면서요?"

"농부도 목수도 다 좋아. 이제야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것 같아..."




바쁜 가지치기를 밀쳐 두고 해찰하듯 엉뚱한 일을 먼저 하자고 한다. 블루베리 나무의 가지치기가 먼저인 것 같은데 바쁜 줄을 알면서도, 속 타는 내 마음과는 다르게  해찰을 즐기는 듯하다. 복숭아 밭 관수 시설 파이프를 연결하고 물받이통으로 물이 들어갈 수 있도록 설치했다. 남편은 수리공, 나는 보조원으로.


파이프를 연결할 때, 고무링을 끼우는 노하우가 이제는 잘 습득되었다. 밀어서 끼우는 게 아니다. 반듯한 모양대로 끼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플라스틱 연결관을 끼울 때 고무링이 꼬여서 물이 세게 된다. 이제는 연결 후에 실험을 하지 않아도 완벽하게 성공이다.




블루베리 하우스에 부직포를 깔고 화분에 흙을 담고 배치했을 때까지만 해도, 바닥에 떨어진 흙을 쓸어 담느라 온갖 신경이 쓰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게으르다고 할 것 같았다. 지금은 비 올 때 하늘 창을 닫지 못해서 몇 차례 빗물이 들어왔었고, 흙을 올리는 등의 작업으로 바닥에 흙과 낙엽이 많다. 방문객이 올 때마다 이불이 개켜지지 않은 거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하우스 바닥을 쓸어야겠어서 빗자루를 찾았더니 두 개나 손잡이가 부러져 있다. 플라스틱 빗자루는 손잡이 부분이 약한 게 흠이다. 손잡이가 짧으면 허리를 더 많이 구부려야 해서 협착이 있는 내게 엄청 힘든 작업이 된다. 빗자루를 만지작 거리고 있으려니 손잡이를 고쳐 주겠단다. 적당한 길이의 가벼운 재질 쇠붙이를 찾아 끼워서 철사로 튼튼하게 고정시켜 주었다.



"어때, 완벽하지?"

"맥가이버 다 되었네요."




칭찬 한 마디에 남편이 춤추고 있다. 몇 가지 작업을 마친 남편이 숙제 같던 일들을 해버려서 시원하다고 말한다. 블루베리 가지치기는 내일부터 이제 또 발등의 불이다. 마치, 발등의 불을 만들어서 일을 하는 사람들 같다. 등 뒤에서 시간이 채찍을 들고 쫓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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