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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Jul 15. 2024

행복은 우리 곁에 있다네

필리프 들레름 에세이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문학과 지성사, 2021)을 읽고     


느낌 좋은 에세이를 읽는다는 것은 머리를 감고 헤어드라이어로 물기 없이 말리고 난 후의 가볍고 편안한 마음이다. 짧은 순간을 세세하게 묘사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생각이 든다.    

  

문창과에 다니면서 좋았던 점은 글쓰기를 배우는 것은 물론, 글쓰기와 생각하기에 맞춤한 책들을 추천받는다는 것이었다. 교수님들이 직접 쓴 책과 좋은 책을 소개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학우들도 자신이 읽은 것 중 인상 깊은 것들을 공유하는 문화가 좋았다. 이 책도 친한 학우가 선물해 준 책이라 깊은 애정을 갖고 읽게 되었다.   

   

프랑스 작가가 프랑스 이야기를 쓰기에 낯설기도 하면서 프랑스 사람들은 이렇게 살고 생각하는가 보다 짐작도 해 보았다. 특별한 서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경험한 것을 깊이 있게 그려 낸 특별한 책이다. 자기의 경험을 “당신은...”이라는 식으로 객관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마치 독자인 내가 주인공이 돼서 현장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에서   

  

“서서히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딘다. 당신은 황금빛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푸른빛과 잿빛을, 그리고 사라져 가는 장밋빛을 가로지른다.”(p10)     


겨울 새벽, 갓 구운 크루아상을 사서 먹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어둑한 새벽이 물러가고 아침이 시작되는 풍경에 색감을 더하며 감각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매우 인상 깊었다.     




      

「완두콩 깍지를 까는 일」에서    

 

“완두콩을 까다 보면 아무 얘기라도 나직하게 주고받게 된다. 노랫소리와도 같은 이런 말들은 우리 마음의 깊고 평온하고 친숙한 곳에서 샘솟는 것처럼 느껴진다.”(p12)     


아침 식사를 마친 부부가 식탁에 앉아 한가로이 완두콩을 까는 풍경이 그려져 있다. 샐러드 볼에 담긴 완두콩이 초록색 물처럼 느껴진다는 작가의 말이 참 그럴듯하면서도 특별한 느낌과 표현 방식을 가진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안 가득 사과 냄새」(p76)에서    

 

“지하 저장고로 들어간다. 사과 냄새가 곧장 당신을 사로잡는다. 선반 위에 엎어져 있는 고리 바구니 속에 사과가 이리저리 놓여 있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마음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과 냄새에 이토록 휩쓸리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사과 냄새에 이어 사과 모양, 사과에 얽힌 유년 등 사과 향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묘사의 상세함과 깊이가 남다르다. 더불어 10월을 기다리는 마음이 표현된다. 사과 냄새를 더 이상 우리 것으로 누릴 수 있는 ‘느림’의 냄새라고 규정한다.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완두콩깍지를 까는 일, 영화관 이야기, 이동도서관, 자동차 안에서 뉴스 듣기, 자전거 차기 등 일상의 잔잔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묘사, 문장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작고, 낮고, 깊게 들여다보는 시선이라야 가능할 것 같은 표현이다.      


작가가 느끼는 밀도 높은 순간들에 매료되어 책 속을 유영하게 된다.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삶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억지스럽지 않고 물 흐르듯 삶을 관조하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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