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말에 심은 블루베리 나무는 5월 초가 되자 초록색 이파리를 올리며 씩씩하게 자라났다. 하우스 안에 가득 찬 1,000주 이상의 블루베리 나무는 충만함 그 자체였다. 큰 화분에 다시 옮겨 심어야 할 일도 무섭지 않았고, 열매 달린 나무를 상상하며 여러 가지 것들을 꿈꿔 보기도 했다. 그해 5월은 상상 이상으로 더웠다. 하우스의 앞뒤와 옆창까지 활짝 열어 두었지만, 한낮의 뜨거운 햇살로 인해 나무들은 열 피해를 보았다. 급하게 차광막을 설치했지만, 한발 늦었다.
작년에 다시 심어서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블루베리 나무가 50°에 육박하는 비닐하우스 속에서 20여 그루 죽었다. 올해는 유난히도 무더운 여름이었다. 우리도 나무들도 흙 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지 4년 차가 되었다. 퇴직을 앞두고 농부가 되겠노라고 선언한 남편을 따라 느닷없이 농부가 되어 우여곡절을 겪으며 버텨 온 4년이다. 첫 농사라면 나무 한 그루만 죽어도 마음이 아파서 몇 날 며칠 애를 태웠을 것이다. 올여름에도 식물의 잎과 줄기를 잘라서 키우는 삽목용 묘목이 1,000주 넘게 죽었다. 삽목으로 나무를 키워서 빈 화분에 심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어처구니없게 물 건너갔다. 사상 초유의 폭염은 묘목이 살아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부끄러운 경험들은 단단한 예방주사가 되었다. 죽은 나무를 보고도 초보 농군일 때보다는 무덤덤했다. 1,000번을 넘어져 본 사람은 저절로 알게 된다. 넘어져도 많이 아프지 않는 법을.
초보 농군으로서의 4년은 너무 부끄러워서 누구한테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나무의 생태를 알지 못하면서 욕심대로 키우려고만 했다. 성장 시기도 되지 않은 나무에 성장촉진제를 듬뿍 줘서 부작용으로 어린나무들이 죽었다. 삽목용 묘목은 물관리를 잘못해서 그렇게 되었다.
가족농으로 꾸려가기에 조금 벅찬 규모의 농원이라서, 농사를 배워가는 입장임에도 복숭아밭과 블루베리 하우스를 쫓아다니며 정신없이 일을 했다. 늘 바쁘게 돌아다녔지만, 일하는 시기를 놓치고 일에 쫓겨 다녀서 나무들에 미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블루베리 화분에서 제집인 양 풀들이 자라고 있다. 삼복더위의 비닐하우스 속은 사람까지 익히려고 한다. 벌게진 얼굴로 풀을 뽑는 동안 땀이 눈으로 들어가 따갑고 눈물까지 난다.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아! 땀 흘리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는 제목으로 글을 쓰면 어떨까? 현장에서 겪은 생생한 체험이 좋은 글감이 된다고 배웠는데, 방탄소년단의 노래 ‘피땀 눈물’과 연결해서 써볼까? 제목만 그렇지, 데미안을 모티브로 한 노래였지, 제목만 따와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들이 저희끼리 밀고 당기며 요동친다. 무더위를 글 쓰는 생각으로 잠시 물리쳐 보기도 한다.
지나간 여름들의 날씨는 모두 잊고, 올해의 여름이 더 심하게 덥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이만큼의 더위도 앞으로 닥칠 여름보다 덜하다는 지인의 말이 더 무섭게 들렸다. 관리를 잘못해서 나무들을 살리지 못했다는 자책을 날씨 탓으로 돌리며 나를 합리화해 보려는 어리석은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생명을 살려내는 일이 이토록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알아가는 여름날이다.
한 그루 한 그루 똑같이 애정을 쏟았건만, 대부분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데도 죽어가는 나무들이 있어서 마음을 쓰이게 한다. 그런 상황이니, 텃밭의 야채들은 말해 무엇하랴. 매일 물을 줘도 따가운 햇살에 수분을 빼앗기고, 무언가 잘못해서 호되게 야단맞은 아이처럼 잎을 축 늘어뜨리고 있다. 삶도 그런 것은 아닐지. 세상만사가 어찌 마음먹은 대로만 돌아갈 수 있겠는가. 게 중에 쩌걱이는 자갈밭도 있겠고, 콕콕 박히는 가시밭도 있을 터다. 며칠 전 내게 닥친 가시밭은 이랬다.
농원 진입로가 하루가 다르게 좁아졌다. 여름은 그런 계절이다. 필요 없는 풀과 나무가 무성히 자라서 길을 좁히기도 한다. 집의 현관 격인 농원 진입로가 복잡해지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남편에게 손 좀 봐달라고 부탁했지만, 다른 급한 일들에 밀려나곤 했다. 나는 누구에게 부탁하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성격이라 남편은 결혼생활 동안 집안의 형광등 한 번 갈아 본 적이 없다. 여러 차례 이사했어도 출근해서 이사한 집으로 퇴근하던 그였다. 이번에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해내리라 작정했다.
톱, 전정 가위, 호미 정도면 거뜬할 것 같았다. 동백나무 아래가 심하게 우거져서 풀을 뽑고, 정체 모를 잡목의 엉킨 뿌리를 자르며 정리하기 시작했다. 풀들은 말없이 뽑혀 나왔지만, 잡목의 뿌리들은 뽑히지 않으려고 땅속에서 줄다리기했다. 풀은 순하고 나무는 억세다. ‘그래도 내가 이길 거야!’ 하며 계속 잡아당겼다. 그들과 실랑이 중에 투두둑! 소리와 함께 뿌리가 끊어졌다. 내 손에 잡힌 뿌리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말릴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내 눈을 찔렀다. 나무들의 거센 반항에 내가 쓰러진 꼴이었다. 자연을 억지로 이기려고 하면 다치는 법이라는 말은 왜 뒤늦게 생각나는 걸까.
머릿속이 까마득해지고 하늘에 별조차 없이 깜깜해졌다. 뜨거운 무언가가 얼얼한 눈알로 퍼졌다. 눈물인 줄 알고 닦았는데 시뻘건 피가 묻어 나왔다. 눈 주변을 다쳤는데 온 머리가 지끈거렸다. 한쪽 눈이 부어올랐고 피가 계속 났다. 행여나 동공이 다쳐서, 그렇지 않아도 나쁜 시력에 영향을 주면 어쩌나 걱정하며 안과에 갔다. 다행히 동공은 이상이 없고, 눈꺼풀이 심하게 찢어져서 네 바늘을 꿰맸다. 자기 발등을 찍기도 하고, 자기 눈을 찌르기도 하는 것이 농부의 삶인지도 모르겠다.
내 손으로 내 눈을 찔러 놓고도 애꿎은 남편한테 원망이 돌아갔다. ‘괜히 농사는 짓자고 해서 이 고생을 시킨다’라는 마음이 농부가 된 후부터 지금까지 내 힘에 부치는 상황에 부닥칠 때마다 시시때때로 고개를 쳐들었다. 블루베리 비닐하우스 속에 화분을 배치하며 허리가 심하게 아팠을 때, 복숭아나무 가지치기를 하며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다 무릎을 다쳤을 때, 복숭아밭의 풀을 뽑으며 개미한테 물려서 팔다리가 쓰려올 때도 그랬다. 허리와 무릎과 팔다리보다 이젠 쉬어야 할 나이에 내 뜻과 다르게 어쩔 수 없이 농부가 된 것을 수긍하지 못하는 내 마음이 더 아팠다.
“왜 혼자서 일을 하다가 다치고 그래요?”
“누가 다치고 싶어서 다쳤어요?”
남편은 혼자서 일하다 다친 나를 타박하고, 나는 또 볼멘소리를 한다. 부어오른 눈보다 마음이 몇 배로 더 부은 것처럼 오래 묵은 통증이 느껴졌다. 남편의 ‘아이고’, ‘쯧쯧’, ‘내가 죄인이네’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걱정하는 말들에 마음의 붓기가 차츰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남편은 진실한 삶의 대안은 농업에 있다는 주장을 해왔다. 농부가 되고 싶어서 농업경제학과에 입학했고, 농협에 근무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남편. 농부의 딸로 자란 나는 팔순이 넘는 지금까지도 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모님의 삶이 달갑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고생하시는 부모님처럼 농부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남편은 소읍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 농사일은 잘 모른다. 그런 사람이라서 농사짓는 것이 꿈이라는 말이 조금은 낭만적인 생각인 것 같았다.
농사는 낭만이 아니라는 걸 몸으로 체득해 간다. 남편은 우리의 벌건 얼굴과 손마디가 굵어지는 것이 훈장이라도 된다는 듯 자랑스러워한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참 행복인 것 같다. 매일 농원에서 주어지는 일들을 누구보다 잘해 내고 싶은 내 마음도 이미 농부다.
올 여름의 따가운 햇살은 인내와 참을성을 대명사로 평생을 살아온 나도 허물어뜨린다.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을 것 같아 남편 쪽을 향한 화살의 방향을 돌려 항변조차 들을 수 없는 저 먼 하늘로 원망을 실어 보낸다. 초보 농군을 벗어나 4년 차 농부인 나는 이제 안다. 나무들도 우리도 흙 속에 뿌리내리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 무더운 여름을 건너가기가 참 힘들지만, 가을은 꼭 온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