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 에세이 『경찰관 속으로』(이후진프레서, 2023)를 읽고
친구야! 내가 최근에 읽은 얇지만 단단한 책하나를 얘기해 줄까 해. 제목은 『경찰관 속으로』인데 좀 특이하지? ‘경찰서 속으로’가 아니라서 말이야. 그래서 나도 처음엔 제목이 비문처럼 생각되었어. 이 책은 경찰관인 작가가 직업에서 만나는 사건, 사람에 관한 이야기야. 속표지에 [경찰, 관 속으로]라고 적혀 있어서 경찰이 등장하는 이 책이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내용이 될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했어. 목차도 ‘산 사람, 죽은 사람, 남은 사람’으로 사람에 집중한 이야기였어.
편지글 형식의 글쓰기가 친밀감을 준다고 배웠거든. “언니에게 부치는 편지”라는 부재는 잘 아는 동생이 나에게 하소연한다고 생각하게 되어 글이 더욱 다정하게 읽혔어. 중요한 문장을 글의 말미에 한 번 더 적어서 자신의 글을 강조하는 방식은 참 센스 있는 지점이야.
내가 잘 모르는 사회적 문제들을 맞닥뜨리는 현장의 살아있는 글이었지. 죽은 사람의 집을 청소하는 특수청소부의 이야기인 김완 작가의 에세이 『죽은 자의 집 청소』을 읽을 때만큼이나 충격이 크더라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죽은 사람을 향한 애잔한 마음들이 그려져 있었어. 몰랐는데 경찰관도 너무 많은 죽음을 마주하는 일이더라고. 자기 직업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느낀 점을 책으로 썼다는 것도 두 책의 공통점이지. 세상에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직업이 있고, 그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만의 고충과 사유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어.
자살, 폭행, 폭력, 실종, 방임, 장애 등 복잡다단한 상황의 한가운데서 살고 있으면서도 인식하지 못하고 외면한 채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반성하게 해. 아픈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향을 피우는 작가의 마음, 해결책이 없을 것 같은 문제상황이지만,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도록 직접 겪은 경찰관의 삶을, 경찰관이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어.
우리 삶 가장 가까이에 있는 법의 중재자가 경찰관이고 그들도 수많은 사람들과 얽힌 감정 노동자라는 것을 알았어. 작가는 약자의 편에 서서 부조리한 세상을 한탄하고 있었지. 생의 밑바닥을 대면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내막들이었어. 내가 그런 상황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는 말도 부끄럽지만, 해야 할 것 같아.
나는 교통 범칙금 딱지만 날아와도 떨리고, 경찰 정복만 봐도 뭔가 걸리는 일은 없나 멈칫하게 되던데 정작, 경찰관은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 갖가지 민원에 시달리는 일종의 만만한 사람들이더라고. 음주 난동 신고부터, 택시 기사 요금 받아주기, 허위신고 전화 대응, 주차 시비, 사기 피해, 자살소동 등 민원도 가지각색이더라고. 그리고 그들은 겉으론 딱딱해 보여도 마음은 여린 사람이기도 했어.
책 속에는 여러 사건 사고들이 나오는데 특히나 이 부분이 가슴에 남았어.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의 아픔을 해결해 줄 수 없어서 안타까운 상황을 적어 놓은 문장이었지. 작가는 그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더라고.
“나를 비롯한 이 공간의 모든 것이 너희에게 미안해하지만 정작 너희 부모는 미안함을 모른다는 현실을 내가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제대로 씻지도 못해 머리에 이가 생긴 채로 집구석에 사물처럼 놓인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하늘이 쪼개지는 기분을 느껴.”(p32)
친구야! 너도 알다시피 난 지역아동센터에서 10년 넘게 근무했던 사회복지사였잖아. 아이들 문제에는 민감할 수밖에 없지.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이기도 했으니까.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2013년에 발표한 건데, 2012년 아동학대 유형 중 부모에 의한 학대가 83%나 된다는 것에 너무 놀랐어. 경찰관이 찾아가도 자기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잖아. 그게 학대받는 아이들을 얼마나 숨 막히게 할지 생각하니 먹먹했어.
그래서 유독 그 부분을 읽는데,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만났던 아이들. 각자의 사연들이 떠 오르기도 했어. 서류 일이 너무 많아서 주말도 없이 일에 파묻혀 살아야 했지만, 아이들과 공부하고 놀이하고 그런 생활들은 참 좋았어. 참새처럼 재잘거리던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해. 학교 시험에서 처음으로 1등 했다며 상기된 얼굴로 말하던 아이. 센터에 서로 먼저 오겠다고 달려오다 넘어져 무릎에 피를 흘리던 아이. 스승의 날 캔 커피를 내밀던 아이. 다문화가정, 조손가정 아이들. 그 애처롭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학대하는 부모가 있고, 그런 어른이 있다는 것이 너무 속상했어.
이제 사회복지사는 아니지만, 내 생은 늘 돌봄의 시간이었어. 형제들 뒷바라지, 시어머니 병시중, 아이들 돌봄 등이 나의 일이었고, 직업이었지. 새해가 되면 한 번씩 보게 되는 토정비결에 내가 ‘정화일주’라고. 촛불이라서 주위를 밝히는 사람이라는 신탁을 들었어. 내 삶이 너무 버겁게 느껴지던 어느 날, ‘나는 누가 밝혀 주느냐?’며 울었어. 농부가 된 지금은 어떠냐고? 나무를 돌보고, 텃밭의 야채들을 돌보는 식물 사회복지사가 되었지, 뭐야. 내 운명은 돌보는 사람인가 봐. 그렇다면 가족도 남도 그리고 나도 잘 돌봐야 할 것 같아.
작가의 방식처럼 나와 마주한 것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어. 내가 서 있는 농부의 삶을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뽑아낸 문장들도 글로 쓸 수 있을 것 같아. 누군가에게 공감을 일으킨다면 더할 나위 없을 거야. 친구야! 제일 먼저 네게 보여 줄게. 기다려 줘! 나를 녹여낸 문장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