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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Aug 12. 2024

미지의 아이를 만나다

5인 5색 동시집 『미지의 아이』(문학동네, 2021)를 읽고

미지의 아이는 내가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는 유년의 나다. 이 동시집에는 나와 비슷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고 생각되는 또 다른 내가 있다. 늘 함께 있으면서도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아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고, 미완성의 아이라는 말도 한다. 그러나 송선미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까지나 미지의 존재인 것 같다.”     


비단, 사람이 아닐지라도 자연이나 동물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면 더 깊이 알고 싶고 궁금해질 터다. 친구이고 가족이면 더 할 것이다. 그 존재가 나라면, 그런 미지의 내가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살아가고 있겠거니 짐작해 본다. 내 안의 미지의 아이를 찾아 동시집으로 들어가 보자.     



      

1나의 비밀 스타 (정유경총 8) 

    

친구들을 향한 관심, 친구들과 나의 공통점을 찾으려는 내가 그려진다. 말놀이의 재미를 보여주는 동시를 잘 쓰기로 이름난 정유경 시인의 「우주 만물 열쇠 집의 언니」가 마음을 붙잡는다. 재미있는 발상의 동시다. 「너와 나의 ㄱㄴㄷ」은 꼭 따라 써 보고 싶은 실험적인 동시다.      


소나기는 좋겠다 

    

소나기는 좋겠다.

갑자기 시끄럽게 울어도 돼서.   

  

소나기는 좋겠다.

원하는 만큼 짧게도 길게도 울 수 있어서.    

 

소나기는 좋겠다.

울고 나면 화창해질 슬픔이라서.     


소나기는 좋겠다.

아무도 왜 우는지 묻지 않아서.   

  

소나기는 좋겠다.

소나기는 좋겠다. 

    

비 오는 처마 아래 가만히 서서

우는 곁을 지켜 주는 사람 있어서. 

                              ― 「소나기는 좋겠다」 전문    

 

어떤 아이는 소나기가 내리는 어느 날, 처마 아래서 소나기의 울음소리를 들어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제 울음인 양, 소나기의 울음을 들으며 마음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는지도 모르겠다. 울고 나면 화창해질 슬픔 정도만 가져서 소나기는 정말 좋겠다.    



       

2나는 내 생각을 존중한다 (김개미총 9)   

  

긍정의 아이콘이다. 나를 사랑하는 당찬 아이가 나온다. 

“나님, 아주 훌륭하십니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아이다. 곤충이 되어 보려 하고, 좋은 것을 주고 싶은 친구도 있다. 강아지 인형도 살아있는 친구라고 생각하는 아이. 공터를 사랑하고 공터에 숨겨진 그들만의 비밀을 사랑한다. 가족과 자연을 사랑하고 그렇기에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아이다.     

 

화분 속 장미    

 

우리 집엔

근사한 대문도 없고

넓은 서재도 없고

아늑한 다락방도 없습니다   

  

그런데 장미가 피니까

티나를 초대하고 싶어집니다

티나에게 장미를 보여 주고 싶습니다  

   

티나가 장미를 달라고 하면

가위로 잘라서 주겠습니다   

  

지난주에 장미 봉우리가 맺혔을 때

나는 장미가 누구 것인지 알았습니다 

    

나에게 생기는 모든 아름다운 것,

그중에 처음 것은 다 티나 것입니다

                                ― 「화분 속 장미」 전문     

          

친구에게 꽃을 보여 주고 싶어 하는 아이 역시 미지의 아이다. 집 구경은 아니더라도 모든 아름답고 처음인 것을 친구와 나누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전해져 따뜻해진다.    



  

3넌 어디까지가 너야? (임수현총 10)   

  

동심의 본령은 친구와 자연, 그리고 나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것일 거다. 화자는 고양이를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다. 햇빛을 앞 배에 바르고, 달을 핥는 고양이를 등장시킨다. 고양이 시인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존재를 표현하는 환상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시들이다.   

   

달콤한 잠   

  

난 지금 달콤한 잠을 타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있어 

    

아직 안 가 본 데가 너무 많아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가기 위해

잠을 모으는 중이거든     


언젠가 나는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이 잠 속으로 돌아올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 이 잠이

달콤해

이 어둠이 

좋아

                         ― 「달콤한 잠」 전문

     

땅속 씨앗을 생각하며 이 동시를 썼다는 시인의 말을 읽었다.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가기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이라고’ 말을 끝맺는다. 아이들은 자면서 큰다는 말이 있다. 잠은 또 얼마나 달콤한가? 꿈속에서 지구를 한 바퀴 돌 만큼 큰 꿈을 가지게 되는 상상을 하면 우주를 가진 것처럼 마음이 넓어진다.       



    

4이름을 좀 날려 볼까? (임복순총 10)    

 

명랑한 아이가 여기저기로 뛰어다니는 듯한 동시들을 본다. 월요일에는 거짓말을 하나 지어보라고 권하기도 하고, 티슈 하나 사면서도 이것저것 다 따지면서 별로 따지는 사람이 아니라고 우긴다. 퍼즐을 맞추며 조각난 마음을 맞출 줄 아는 아이다. 그야말로 꿀 떨어지는 아이다.      


빙수의 발전     


세상이 어디까지 발전할지

사람들은 몹시 궁금해하잖아.

나도 그래.    

 

팥빙수 과자빙수 초콜릿빙수 인절미빙수 과일빙수 치킨

빙수 불고기빙수 호박빙수 캐러멜빙수 치즈빙수 마카롱빙

수 고구마빙수 흑임자빙수 땅콩빙수 야채빙수 카레빙수 

꽃게빙수 달고나빙수……     


빙수에 빠져서

지금까지 안 먹어 본 빙수가

거의 없는 나는

몹시 궁금해.     


세상의 발전은 곧

빙수의 발전이니까.

                      ― 「빙수의 발전」 전문     


여름엔 빙수, 겨울에도 빙수다. 사계절 빙수는 반가운 간식이다. 세상의 발전을 빙수의 발전에 빗대어 동시까지 썼다면 시인은 진짜 찐 빙수맨이다. 또한, 어린이들도 가장 좋아할 간식이 아닐까 싶다. 빙수 가게 앞을 지나가다가도 이 시를 떠올릴 것 같다.     



      

5부. 나미지의 이름 (송선미총 10)    

 

낯선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자그마한 벌레의 이름이 궁금하고 고양이를 사랑하는 아이. 방울 소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지도 궁금하고, 나를 닮은 아이도 궁금해하는 호기심 천재다. 골목길 계단에서도 세상을 볼 수 있는 품이 넓은 아이. 단짝 친구가 곁에 있으면 비가 와도 상관없이 세상이 두렵지 않은 아이다. 그런 아이가 그리는 집은 또 너무 멋진 집니다. 지우개도 필요 없는 속삭이는 집이란다. ‘새를 그리면 하늘이 생기고, 나무를 그리면 언덕이 생기고, 담을 그리면 마당이 생기고, 벽을 그리면 방이 생기는 집’이라고 한다. 그런 멋진 집이라면 나도 가지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누구, 미지의 소이     


소이를 알기 전

‘누구’는

아무하고나 노는 

부정칭이었다    

 

소이를 알고부터

‘누구’는

너하고만 놀고 싶은

미지칭이 되었다.   

  

너, 

미지의 소이   

  

누구?

미지의 소이     


소이,     


너는 누구니?

           ― 「누구, 미지의 소이」 전문     

     

처음에는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 해독하기 어려워 반복하여 읽었다. 누구는 소이와 친구가 되고 싶은 아이다. 소이는 누구일까? 소이는 내 안의 미지의 아이라고 생각되었다. 결국, 나와 진정으로 소통하고 나를 알아가고 사랑하라는 말로 들렸다. 다섯 명의 시인들의 동시가 끝나면, 시인들의 대화가 이어진다.    



  

「미지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진희와 지니, 소이 들에게」에서(p111)


다섯 명의 미지의 아이들을 동반한 대화 부분이 수필 같아서 이 동시집을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책이 더 좋아졌다.  동시집이 탄생하게 된 재미있는 과정과 성숙한 여자아이들을 위한 테마를 가진 이 동시집이 정말 좋은 책이라고 느껴졌다. 나도 그랬다. 일찍 철들어 엄마의 시중을 들고, 할머니와 동생들을 보살피던 어린 시절의 나와 만나는 시간이었다. 시인들의 어린 시절도 보였고, 내 어린 시절과 겹쳐 보이기도 했다.    



김개미 시인의 “자기 자신의 내면을 보살필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

정유경 시인의 “모든 아이들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동시집의 테마를 정했다는

송선미 시인의 “살짝 낯설지만 또 비슷한 자신의 모습을 독자들이 만났으면” 바라는 마음

임수현 시인의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아이를” 쓰고 싶었다는 말

임복순 시인의 “조금 힘들거나 두려워도 나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나를” 그리고 싶었다는 말, 무엇보다 재미있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마음에 들었다.     


 

다섯 시인의 엉뚱 발랄하면서도 색다른 깊이와 맛이 있는 어우러짐이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동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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