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휴 Sep 13. 2024

가을이지만, 여전히 덥습니다


농원 옆 강가의 푸르던 은행잎이 한 무더기씩 노란빛이 보였다. 가을이 선발대를 보낸 듯했다. 이제, 무덥던 여름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서고 가을이 들어차고 있다. 맑고 푸른 하늘에 흰구름도 몇 점 띄워 놓았다. 강물도 시원스레 흐르고 하루 중 몇 차례 기차도 지나간다.



"휴가 오고 싶은 곳이네요."



농원을 구경 온 사람들이 가끔 하는 말이다. 우린 일하러 왔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농원 주위 풍경이 좋다는 말을 들으니 어깨가 으쓱해진다.  



입추가 지난 9월 초인데도 날씨는 여름이다. 블루베리 비닐하우스에 들어서자마자 열기로 숨이 멈칫 해진다. 짧은 작업 시간으로도 너무 더워서 엄청 땀을 흘리게 된다. 



요즘은 블루베리 나무가 많이 자라서 키 낮추기 가지치기를 했다. 나무의 키가 너무 크면, 내년에 블루베리가 열렸을 때 수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년의 열매를 생각해서 열매가 달리는 결과지를 만드는 작업이 지금부터 시작인 셈이다. 남편은 키 큰 나무와 옆으로 쓰러진 나무의 가지를 자르고, 나는 화분에서 또다시 몰라보게 자라난 풀들을 뽑았다.





사상 유래 없이 뜨겁다는 구월의 햇살을 받으며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을 하려니 금세 땀이 찼다. 솟은 땀이 눈으로 몰려서 눈가가 쓰렸다. 얼굴 아래로 흐른 땀은 턱을 타고 화분으로 떨어져 내렸다. 블루베리 나무가 내 눈물과 땀방울을 받고 건강히 잘 자랐으면 좋겠다.



그나마 은행나무  아래는 이파리가 커져서 제법 그늘이 생겼다. 한 더위가 물러가서 오늘부터는 은행나무 아래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바람이 없는 날은 덥기도 하지만, 강가라서 그런지 늘 바람이 있는 편이라 오늘도 무척 시원했다. 보성으로 가는 무궁화호 기차가 지나간다.





쉬느라 넋 놓고 강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물길이 불쑥 일어나는 환각 같은 현상이 보였다. 무슨 일인지 얼른 감이 잡히지 않아 미간을 모으고 숨죽여 살펴보았더니, 검고 긴 무언가가 지나가며 물무늬를 만든 거였다. 수달의 등을 본 것 같았다. 분명, 수달이었을 것이다. 이 강에 수달이 산다는 말을 옆집 할아버지한테도, 윗집 복숭아 밭 아저씨한테도 들었던 생각이 났다.



지난겨울에 고라니는 직접 보았었는데, 내가 직접 수달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백로들이 강물에서 먹이를 찾거나 강물 위를 날아다니는 모습은 가끔 보였었다. 까마귀, 까치, 참새, 물까치 등 온갖 새들이 떼 지어 있다. 새들이 많은 곳은 사람이 살기에도 좋은 터라는 말을 들었다.



새들이 비닐하우스 위나 은행나무 주변을 날아다니는 모습, 진입로를 걷다가 우리가 나타나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면, 새들은 자신들이 살던 터에 허락도 안 받고 농원을 꾸린 우리가 불청객일 터였다.




더운 날씨에 자꾸만 나를 불러내는 농원. 소풍 가는 마음으로 가고 싶어서 좋은 점만 찾아서 적어 보았다. 무언가를 하기 싫을 때, 내가 습관처럼 하는 행동이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어떤 사안이 있을 때,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적어 보라고 했던 조언을 나도 실천해보고 있다.

 


생각도 조종이 되는 것 같다. 좋은 방향으로 생각할라치면, 좋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힘들게 일하다  허리 쉼을 한다. 은행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놓고 손짓한다. 꿀 같은 쉬는 시간이다. 여름 같은 가을이지만, 저기 오고 있는 가을의 옷자락이 보인다.

이전 10화 상처, 이미 다 나았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