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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Sep 06. 2024

상처, 이미 다 나았어요~


블루베리 하우스의 풀 뽑기를 한 순례 마치고, 복숭아 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복숭아 수확을 마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있으려나 생각했던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내년 농사는 9월부터 시작입니다."



복숭아 영농교육 시간에 지도 강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도 복숭아나무 가지의 가운데로 자란 큰 가지들을 잘라내는 가지치기를 8월 말부터 시작했다. 잔가지들이 통로를 막을 정도로 크고 굵게 자라 있었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초록으로 건강하게 잘 자라나고 있는데, 어떤 나무들은 시들해 있었다. 특히, 한 품종이 그런 현상이 많아서 나무의 품종이 나쁜 거라며, 그 나무를 심었던 것을 후회했다. 잎들이 노랗게 변해갔고, 가지들도 축 쳐지며 힘이 없었다.



가지치기를 하면서 우연히 발견했다. 연초에 가지치기를 하다가 부러진 가지를 칭칭 동여맸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무는 다시 한 몸이 되었다. 묶은 끈을 풀어주지 않아서 그 부분은 얇고 다른 부분은 통통해서 병목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무식하고 무심한 농부 같으니라고... 우리가 무슨, 농부라고..... 이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어찌해야 하나...  묶인 줄을 풀어주고 나무들의 상처를 쓰다듬으며 눈물이 맺혔다. 얼마나 아팠을까? 말도 못 하고 아니, 열심히 말을 했던 것이다. 나무는 색깔을 노랗게 변해가면서, 힘을 빼앗기면서 부지런히 우리한테 말을 걸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않고, 나무 탓만 했던 것이다.





나무는 스스로 열심히 크면서 부러진 가지의 상처를 모두 이겨 냈는데, 묶었던 끈을 풀어주지 않아서 물과 양분의 공급이 약해져 앓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에 발을 다친 친구가 있었다. 이미 상처가 다 나았는데, 계속 아프다는 생각을 하며 걷지도 않고, 밖에 나가지도 않다가 스스로 고립되어 더 아프게 된 사람이 생각났다. 충분히 나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잘 회복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았어야 했다. 



복숭아나무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라게 하려다 부러뜨린 것이 너무 미안해서 혀를 차며 묶어 주었었다. 고맙게도 단단하게 붙어서 살아나게 되었는데, 묶음줄에 묶여서 또 상처를 받은 나무가 되었으니, 병 주고 약 주고 다시 병을 준 그런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안한 상황이 되었다.



가끔, 둘째가 어른스러운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가 생각났다. 아픈 아이라고 생각했던 둘째가 사실은 나도 모르게 성숙해져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마냥, 어린아이인 줄만 알았다가 어른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말이다.



벌써, 농부 4년 차인데 스스로 언제까지 초보 농부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인가? 농부가 아닌 척, 한 발을 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하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프로답게, 일에 쫓겨 허둥대지 말아야겠다. 진짜 농부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무들을 세심하게 보살피고, 농사 일도 적극적이고 치밀하게 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픈 나무의 묶음줄을 풀어 주면서, 이미 농부가 되었으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한 내 마음의  묶음줄도 풀리는 것 같았다. 나무들이 소생해서 힘을 내고 살아 준다면, 나도 더 단단한 농부로 흙속에 뿌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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