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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일어나는

손유미

by 민휴

오늘의 시 한 편 (79).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동시에 일어나는


손유미


이제 막 읽기 시작한 책의 표지에는 바닷가를 걷는, 다

벗은

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원래 이 그림에서 그는 혼자는


아니었다 바다 수영을 마치고 허청허청 물을 빠져나온 그

는 닦을 수건과 소금기 게워낼 물을 찾으며 ‘아 이 개운함과

노곤함을 유지하며 바라봐야지 이런 자세로 살아내야지’ 하

며 벅차오름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런 그를 혼자 두지


않고 멀리서 다가오는 이가 있었으니 저이는 마침 죽은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죽은 이에게 알은체하는 방법은……?

그는 그런


고민에 빠지고 그런 그를 기다려주지 않고 죽은 저이는

계속 다가오고 있었다 단정한 옷차림 생전의 모습 그대로

오히려 그가…… 더 죽음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그러나 그

런 것과 상관없이 그는 인사를 건네기로 마음먹었다 죽었다

는 이유로 생전부터 유지한 인심을 잃을 순 없는 노릇 아닌

가! 그는 죽음



저이에게 건네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인사말 몇 개를 떠올렸고

기꺼이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 표지는 그 장면을 잘라내고

그를 혼자로 남겨두었다


영원히 혼자 죽을만큼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말해볼까



바다 바깥에서 꾼 꿈에 대하여

아무래도 혼자 꿈은 혼자 죽음 같은


꿈속에서 그 사람은 돌아오고 있었다 헤엄치는 자세로 마

른 풀숲을 헤치며 하지만 분명한 걸음걸이 그렇지 그는 돌

아오고 있구나 불명예로부터 죽음 시도로부터 멀리서도


저, 덮은 책 같은 표정을 나는 읽을 수 있구나



요의를 느꼈다 살아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안전하게 그를 볼 수 있었다


언제까지 혼자여야 한단 말인가!

그가 이 정도 말은 할 만하다



다른 책을 펼칠 때에도 그는 헤엄치듯 있었다

바닷물이 모두 말라 소금을 하얗게 덮을 때까지



꽤 괜찮은 개정판이 벌써 나온

옛날 책처럼 서 있어라


그 사람을 오래도록 세워둔다

살아 있음 안팎에서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저, 덮은 책 같은 표정을 나는 읽을 수 있구나



(꿈 이야기를 하고 있다. ‘허청허청’ 정신없이 행갈이도 연갈이도 자기 마음대로 횡설수설하는 것으로 이 시가 명확하지 않는 안개 속 같은 이야기라는 것을 그런 심리를 표현하려는 것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읽어 보라고 이렇게 이상한 방식으로 편집한 시인의 의도가 설핏 엿보인다. 이런 복잡한 구조의 시도 뜻을 읽어 낼 수 있어야 진짜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한껏 목울대를 키우는 모습이 연상된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것 같은 삶은 어떤 것일까. 바다를 들어갔다가 나와서 죽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고 살아내야만 하는 삶일까를 짐작해 볼 뿐, 나는 끝내 시의 진심을 읽지 못한 것 같은 부끄러운 미진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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