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 (문학동네, 2014)을 읽
무라카미 하루키는 1949년 교토에서 태어났다. 1968년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연극과에 입학해 전공투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발표하는 책마다 권위 있는 상을 수상했다. 1987년 『노르웨이의 숲』을 발표,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리며 하루키 시드롬을 일으켰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르웨이 숲』의 다른 이름의 책 『상실의 시대』로 처음 만났다.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등장해서 무거운 마음으로 빠져들었던 책이었다. 한때,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소설 1위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하루키의 소설집을 읽었는데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 책은 오랜만에 읽은 하루키 소설이었다.
한밤중 한 시가 넘어 걸려 온 전화가 나를 깨운다. 자기 부인이 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 오래전에 사귀었고, 헤어진 뒤로는 단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전화 통화를 한 적도 없다. 그녀는 주인공이 사귄 여자 중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한 세 번째 사람이 된다. 엠이라고 명명하여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내가 죽은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남자가 된다고 믿는다. 그녀가 왜 자살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면 복잡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며 이야기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녀가 유명한 사람이라 이름도 만난 이유도 밝힐 수 없는 것이라고 유추해 본다. ‘엠’이라는 가상 인물과 열네 살에 만났다는 가상 설정을 한다. 설정한 이야기 속에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가상인지 뒤섞여 있다.
그녀는 어느 날 사라져 버렸고,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했다고 한다. 뱃사람들을 따라 전 세계 곳곳의 바다로 떠돈다고 한다. 엠은 열네 살 때 사랑에 빠졌어야 하는 여자들로 결론지어진다.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전세계의 뱃사람들은 그녀를 훔쳐 가려고 눈독 들이는 사람들 같다. 틈만 나면 등장해서 그녀를 빼돌린다. 뱃사람, 선원으로 상징되는 의미는 그녀와 헤어져야만 할 이유, 그녀가 떠나가야만 하는 이유를 나열하지 않고 한마디로 규정하는 도구다.
“그녀의 죽음과 함께 나는 열네 살의 나를 영원히 잃어버린 것만 같다. 야구팀 등번호의 영구결번처럼 내 인생에서 열네 살이라는 부분이 송두리째 뽑혀 나간다.”(p325)
그녀의 삶과 죽음의 과정도 왜 그녀의 남편이 나에게 전화했는지 밝히지 않는다. 주인공은 그 이유를 다각도로 유추해 보지만, 책에서는 찾아 읽을 수 없고 독자의 상상에 맡겨 둔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 후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p330)
떠나버린 그녀가 좋아했던 음악, 책, 사소한 습관 등 회상으로만 존재하고 실체를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상상하게 만든다. 그녀가 평소에 원했던 평화로운 곳에서 편안하게 지내기를 바라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작가는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그건 여자 없는 남자들이 아니고는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문장 뒤에 이어지는 그 이유는 8가지나 이어서 뒷받침 이유를 말한다. 한 마디로 규정하지 않고 뛰어난 언술로 여러 상황을 반복하여 설명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혀 준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란 순수하게 사랑했던 첫사랑이 없는 남자들을 뜻하는 것으로 읽혔다. 그런 남자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남자라고, 거꾸로 생각해 보면 남자들은 고독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