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완 동시집 『참좋다, 고맙다 고맙지』(아동문예, 2025)
안종완 작가가 쓴 동시집이지만 5년 전, 작고하신 박종현 선생님(전 아동문예 발행인 겸 문학인)과 함께 쓰신 글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 분의 모습이 겹쳐서 보인다. 아마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강하고, 고락을 함께하신 세월의 힘으로 서로 마음이 통하기 때문이 아닐지 생각된다. 따로 또 같이, 곁에 없어도 늘 마음에 품은 사람은 함께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안종완 작가는 「시인의 말」에서
“어린이들아! 너희들이 있어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빛나고 있단다.”라고 말했다.
신현득 아동문학인협회 고문님은 「이 동시집을 읽는 어린이에게」에서
“안종완 시인의 동시는 세상 모든 것을 고마운 것으로 인정하고 그 고마움을 분석해서 그 하나 하나에 시를 매어다는 시법을 쓰기도 한다. 세상 만물은 시인의 손으로 쓰다듬어 달래는 가운데 이들 소재가 감동을 받아 시귀가 되게 하는 마법을 쓰기도 한다.”라고 표현했다.
『참좋다, 고맙다 고맙지』 동시집은 6부로 구성되었고, 총 65편이 실렸다. 할머니의 시와 손녀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특별함을 더해 주는 동시집이다. 박종현 선생님의 세상과 어린이를 향한 귀한 말씀이 한 편의 시가 되고 동시집의 제목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종완 작가가 가슴으로 써 내려간 동시집으로 들어가 보자.
냉이야
너는 왜
하얀 꽃만 피우니?
응, 나는
작은 것,
맑고 깨끗한 게
좋아서.
그렇구나.
맑고 깨끗한 그 마음
나도 갖고 싶어.
그래? 그러면,
내 꽃대에
줄줄이 달린 하트모양 열매(♡)에
나의 모든 것을 담아
너에게 줄게
― 「냉이꽃」 전문 (p22)
“모든 것을 담아 너에게 줄게.” 이런 너그러운 마음 너무 좋다. 꽃이 하는 말에 작가의 넉넉한 마음이 담겼으니 더할 나위 없다. 냉이가 향긋한 냄새와 함께 나물로, 국으로, 부침으로, 약으로 사람들한테 모든 것을 내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꽃 속에 더 크고 맑은 마음을 담아서 한없이 내주고 있었다는 것을 이 시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멀리 바라보고
나아갈 방향을 정했지.
쉬지 않고 나아갔어
서두르지는 않았지.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담벼락을 단단히 붙잡았어.
발자국마다
최선을 다했지.
뒤돌아보는 일은
결코 없었어.
― 「담쟁이의 말」 전문 (p38)
담쟁이가 들려주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는 작가를 상상해 본다. 담쟁이의 발자국에 자기의 삶을 담아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마치, 내가 걸어온 발자국처럼 인식되어 마음이 뭉클해진다. 독자도 담쟁이처럼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시라서 담쟁이가 더 좋아졌다. 담쟁이는 담을 타고 오르면서 그 담을 더 튼튼하게 하고 예쁘게 만들어 주는 특성이 있어서 아동문학 전문지 아동문예 발행인으로서 자기의 길을 가면서도 타인을 이롭게 하는 삶을 살아온 작가와 박종현 선생님의 모습이 겹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날마다 선물을 받는단다.
날마다 선물을?
응, 눈만 뜨면
내 앞에 와 있어.
좋겠다, 오빠는
그런데 무슨 선물이야?
그런 바로
음~ 바로
‘오늘’이란다
오늘은
내게도 오는데.
― 「날마다 선물을」 전문 (p46)
‘오늘’은 날마다 새롭게 오지만, 또 하루가 그냥 시작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을 살아내야만 할 의무로만 생각한다면 삶이 얼마나 고될 것인가? ‘오늘’은 날마다 받는 선물이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 선물은 ‘오늘’ 일 것이다. 귀한 선물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오늘’은 특별한 선물이라고 알려 준다. 날마다 선물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매일을 기쁘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안종완 작가의 밝고 긍정적인 마음 자세는 이렇게 넉넉한 품을 드러내서 독자를 행복하게 한다.
마음속 깊이 숨어있는
나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숙제를 미루고 있는,
친구 민서를 부러워하는,
설렁설렁 공부하는,
내가 보인다.
너는 너 자신에게 솔직하니?
너 자신을 믿고 있니?
네가 하는 공부가 재미있니?
질문을 던져본다.
지금 이 시각
환한 빛으로 내게 온
나를 찾는 시간이다.
― 「지금 이 시각」 전문 (p48)
‘나를 찾는 시간’을 ‘환한 빛’이라고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그만큼 귀한 시간이라는 뜻이겠다. 자기의 깊은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어린이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시각’이 멈춰 있는 시간으로 생각되기는 하겠지만, 그런 고뇌의 시간을 만들고,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어린이는 분명, 멋진 어른이 될 테니까. 안종완 작가의 평소 삶에서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는 과정을 거치며 부단히 노력하는 습관과 성찰을 생활화하는 모습을 동시로 승화시킨 것 같아 이 시를 자꾸만 다시 읽어보게 된다.
꽃들은
화장하는 일 없지.
잘 보이려고
꾸미는 일도 없어.
있는 그대로
보여줘도,
예쁘다
아름답다
좋아들 하지.
나에겐
우리 할머니도 그렇다.
- 「나에겐 할머니도 그렇다」 전문 (p112)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고 인정해 주는 든든한 내 편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있는 사람은 행복한 거라고 했다. 꽃들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나에겐 할머니가 있으니까. 할머니는 나를 꽃처럼 예쁘다, 아름답다고 말하며 좋아해 주는 든든한 지원군이니까.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주는 깊이를 이야기하면서도 존재 그 자체로 사랑받고 싶어 하는 어린이의 마음이 보인다. 살아가는 것의 궁극적인 목표가 결국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라는 순리를 알려 주고 있다.
안종완 작가가 이태원 참사, 안중근, 코로나 시대 등 사회적 상황을 글로 써내는 작업은 유의미한 활동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어린이들에게도 이웃과 사회적 현상들을 들려줄 의무가 어른에게는 있다. 사회적 상황을 우리의 삶과 연관 지어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나로부터 가족과 이웃, 사회로 확장해 관심을 펼쳐 나가고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려는 책임 있는 활동에 경의를 표한다.
유난히 할머니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시가 많다. 어린이들의 첫 번째 사회인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어린이를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이 느껴진다. 안종완 동시집의 큰 테마인 이웃과 자연과 가족과 내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결국은 사랑이라는 울타리로 묶여 있는 한 덩어리라는 것을 알게 해 주는 동시집이다.
이 동시집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보다는 안종완 작가가 살아온 곡진한 삶의 발자국에 감사와 위로를 전하며, 박종현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함께 그리워하는 마음을 보태면 좋겠다. 좋은 동시집을 발간하신 안종완 작가님께서도 평안하시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