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팀장이야!
보통 자신의 팀장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고 입사를 하게 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팀장이 현재 공석인 경우이거나 새롭게 팀이 세팅되어 팀장의 입사일자가 나보다 조금 늦어지는 경우가 아닌 이상 정상적으로 팀장의 인터뷰를 마친 후 입사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팀장님 보다 한 달을 먼저 입사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내가 제일 선임이었기에 빠르게 회사에 적응하고 큰 기대감을 갖고 팀원들과 함께 새로 오실 팀장님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팀장님이 드디어 입사하셨다. 새로운 곳에서 서로 힘을 합쳐 변화를 만들어낼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터라 당시 너무 반갑고 기뻤던 나는 한걸음에 다가가 웃으며 인사드렸다.
" 팀장님 입사를 축하드립니다. 업무관련해서 혹 궁금하시거나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 주세요!"
난 너무 반가움에 인사를 드리고 자리로 돌아왔다.
"저기~"
팀장님은 나를 부르셨다.
" 용무가 있음 미리 시간을 확인 후 말을 거시고 용무가 끝났으면 인사를 하고 가는 게 기본 아닌가?"
내가 팀장님께 제일 처음 들었던 말이었다.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이게 뭘까... 뭔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너무 선 긋는 분위기라서 나도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게 서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우리 팀과 새로 온 팀장님과의 회사생활은 시작되었다.
군대가 아닌데 군인다운 모습을 바라는 팀장님.
어느 날 팀장님은 나를 부르셨다. 자신이 rotc 몇 기라면서 군대시절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셨다. 뭐 남자끼리니까 그럴 수도 있으니 난 부담 없이 이야기를 듣고 적당하게 리액션을 해드렸다.
이야기가 마무리되려던 순간
" 그런데 말이야. 우리 팀 남자들은 왜 이렇게 각이 안 살아있어? 뭔가 활기가 없고 걸어 다닐 때도 뭔가 딱딱! 각이 있어야 하는데 뭐 다 무슨 패전병같이~ 좀 각 좀 살리고 다녔으면 좋겠네"
회사에서 각을 살려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뭔가 선을 넘는 발언들은 점점 팀의 분위기를 좋지 않게 만들고, 더 이상 함께 일하고 싶지 않게 만들고 있었다.
"저기 내 자리로 와볼래요? 여기 자리들 정돈이 아주 불량하지? 책상 위에 좀 치우고 다니라고 하고, 줄도 좀 맞춰놓고 다니고 했으면 좋겠네 기본 아닌가?"
직급에 취해있는 우리 팀장님
팀 미팅이 진행되고 여러 가지 의견들을 논의하고 있었다. 나는 현 상황에 대한 이슈를 중심으로 의사결정의 방향에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팀장님께 말씀드렸다.
" 저 잠깐만요.. 자료정리는 잘 되었고 , 아무튼 결정은 내가 하는 거니까 기다려봐요."
"네 그래도 다른 팀원들의 의견도 들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 허허... 참 본인 직급이 뭐예요? "
"네? 과장입니다만.."
" 과장 위에 차장! 차장위에 부장! 부장 위에 이사예요 이사! 내가 이사입니다"
당시 이사라는 직급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셨는지 팀장님은 바로 본인의 직급을 강조하시면서 내 입을 막으셨다.
또 이런 경우도 있었다.
매일같이 아침마다 회사에 일찍 오시는 다른 팀 팀장님이 계셨다. 당시 우리 팀장님도 출근을 매우 일찍 하시는 편이셨는데 두 분이 거의 사무실 오픈을 번갈아 가면서 하시고 계시는 상황이었다.
어느 날 팀장님은 나를 부르셨다.
" 아니 저 김팀장.. 본인은 부장이고 나는 이사인데, 아니 왜 출근을 했으면 나한테 인사를 안 하는 거야?
왔으면 내 자리에 와서 인사하고 가는 게 기본 아닌가?"
생각해 보면 참 본인 격을 깎아내리는 이야기들을 매번 나를 불러 반복하셨던 것 같다. 그리곤 항상 마무리 멘트는 비슷했다.
" 과장 위에 차장! 차장위에 부장! 부장 위에 이사예요 이사! 내가 이사입니다"
업무로 괴롭히며 기강 잡는 우리 팀장님
당시 팀의 업무 중 내가 담당하고 있던 파트는 팀장님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 이기도 했고, 그래서 뭔가 업무적으로 깊게 간섭을 하실 수는 없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그래도 항상 진행 시마다 보고하고 논의가 필요한 부분은 논의하면서 업무를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업무 보고를 하는 도중 팀장님은 나에게 한마디를 하셨다.
" 내가 본인 업무에 대해서 한번 건드려 볼까? 내가 한번 건드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
뭐지? 난 내가 잘 못 들은 건가 싶을 정도로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 나하고 뭘 하자고 하시는 것인지...
이후 업무 일정을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업무진행에 토를 다려고 하는 듯 보였다. 다행히 업무진행에는 무리가 없었기에 뭐 꼬투리 잡힐 부분은 찾지 못하고 마무리되었지만 난 더 이상 이분의 이런 행동을 참고 견디기가 어려웠다.
팀장님 복도 없지... 난 이제 체념을 하고 회사생활을 정리하려고 했다. 정말 열심히 하고 싶었지만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더 이상 있을 필요는 없다고들 이야기해 주었고 나로서도 별다른 선택은 없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새지 말라는 법은 없는 법, 결국 이분은 팀 밖에서도 여러 가지 이슈를 만드셨고, 자연스럽게 나가는 방향으로 정리가 되셨다.
별거 아닌 일들이었지만 이분에게는 분명 직급에서 오는 조직 내에서의 권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생각이 들었다. 조직 안에서 내가 대접받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받지 못하게 되면 뭔가 억울하고 부당하다고만 생각했을 테고, 이는 결국 팀원에게 모든 것이 전가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세대가 바뀌고 인식이 많이 바뀌었는데 이분은 혼자만의 시간에 갇혀계신 것 만 같았다. 자신이 고생해서 겪었던 시절이 있다면 그것을 그대로 되돌려주기보다는 더 좋은 방법을 찾아 새롭게 적용해 보는 것이 성장에 있어 도움이 되실 텐데 성장은 멈추어 있고 자신의 의식만 더 짙어진 느낌이 들었다.
팀에 싸늘함과 긴장을 불어넣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적당한 긴장감은 팀운영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긴장감의 방향이다.
업무에 있어 생각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긴장감이라면 팀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관계에 있어 불필요한 긴장감을 형성하기 시작하면 이는 결국 팀 내 커뮤니케이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팀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팀장에게 다가오는 것이 불편해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려움이 있는데 팀장에게 물어보기가 어려워지고, 이것을 이야기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하면 벌써 팀장과 팀원 사이에 벽이 쌓이고 있다는 증거이다.
직급이 있는 것에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직급이라는 것이 단지 수직적 구조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직급은 결국 그만큼의 역할과 책임이 늘어난다라는 의미이지 누릴 수 있는 게 더 많아진다는 것이 아니다. 성숙하지 못한 팀장은 자신이 누릴 것만을 바라고 이를 채우려고만 할 것이다.
올바른 리더가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역할과 책임이 커질수록 더욱더 각각의 팀원에게 집중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팀원들이 건강한 생각을 갖고 업무에 임하게 만들어야
팀의 성과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본인이 직급이 높아서, 사람을 많이 부리고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잘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족한 부분을 감추고 혼자서 결정하는 것보다는 부족함을 인정하고 팀원들과 함께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단단한 팀워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팀원들과 이야기할 때, 난 수시로 나 스스로를 점검해 본다. 나에게서 그들과의 관계에서 불편한 긴장감을 주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함께 더 잘해볼 수 있는 방향으로 고민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역할이기 때문이다.
팀장님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이 말을 자주 듣는 게 리더의 역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