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 좋은 이별하기는 가능할까?
얼마 전 청룡영화제 시상식장에서 배우 박정민과 가수 화사가 뮤직비디오에서 나왔던 장면을 연출하며 화재가 되고 있다. 이 노래는 지금까지의 이별 노래와는 다르게 슬픔과 집착, 미움이 아닌 연인사이의 "좋은 안녕"을 고하는 이별을 담고 있다. 아무튼 노래도 노래지만 중요한 것은 왜 이 장면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많은 패러디까지 나오고 있는 것일까?
나는 아내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여보 박정민의 어떤 부분이 멋있어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는 거야?"
"눈빛을 보라고, 바라보는 눈빛에 진심이 느껴지고 자연스럽잖아"
눈빛이라... 난 박정민 배우의 눈빛을 집중해서 보았다. 그때 알았다. 꾸며낸 것이 아니라 뭔가 진짜 자연스러운 찐 감정이 나오는 눈빛이 보였다.
깊은 사랑의 끝에서도 서로를 응원하며, 슬픔을 딛고 더욱 단단하게 나아가기 위해 과거를 아름답게 보내주는 그런 눈빛이 박정민 배우의 눈빛에서 보였다. 말 그대로 진짜 good goodbye였다.
문득 나는 회사와의 "좋은 안녕"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연인사이에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듯이, 회사에서도 입사가 있다면 결국엔 퇴사라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노래 가사처럼 서로를 응원하고 아름답게 헤어지는 이별만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회사와의 이별에도 진흙탕과 같은 감정싸움이 있을 수도 있고, 서러움과 집착이 있을 수도 있다.
과연 회사와 좋은 이별이라는 게 있을까?
솔직히 말해, 마냥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회사는 인력을 잃는 것이고, 개인은 안정을 버리는 것이니까. 서로의 이해관계가 끊어지는 순간에 낭만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Good) 이별'은 없어도 '깔끔한(Clean) 이별'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내가 생각하는 회사와의 'Good Goodbye'는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말에 찝찝함이 묻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나는 재입사를 했었던 회사에서도 다시 퇴사를 했던 경험이 있다. 두 번의 퇴사를 순간을 마주하면서 회사와 깔끔한 이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것은 바로 서로에게 더 이상 빚이 없는 상태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서로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적인 직장인에게 필요한, 쿨하고 깔끔한 이별의 기술 3가지를 정리해 본다.
첫째, 빈자리는 남기되 구멍은 남기지 말아야 한다.
내가 떠난 자리에 나의 부재(빈자리)가 느껴지는 것은 나의 능력이지만, 내가 떠난 자리에 수습되지 않은 사고(구멍)가 남는 것은 나의 무책임이다. 완벽한 인수인계는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일 잘했던 사람'이라는 나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함이다.
막상 퇴사를 앞둔 시점이 되면, 앞으로의 일들에 관심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곳은 떠나면 그만이지. 누군가가 자리를 채우면 회사는 또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떠난 자리에서 만큼은 더 이상 문제가 발생되지 않도록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고 마무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퇴사 후 꿀맛 같은 휴식 시간에 "그 파일 어디 있어요?"라는 전화를 받고 싶지 않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매뉴얼을 다듬어라. 그것은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보험이다.
둘째, 이별의 이유에 집착하지 마라.
연인과의 이별에도 어느 순간 마음이 변하면, 더 이상은 묻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이유가 없는 것이 이유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를 알아내려고 집착할 필요는 없다.
"마지막이니까 회사를 위해 솔직하게 불만을 말해줘."
"김 대리, 팀장이 힘들게 한 거 없어? 내가 다 들어줄게."
이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마라. 당신이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 당신이 쏟아낸 '솔직한 조언'은 개선의 씨앗이 되는 게 아니라
"역시 걔는 평소에 불만분자였어"
"마무리가 안 좋네"
라는 험담의 안주가 될 뿐이다.
나가는 마당에 회사를 고치려 들지 마라. 그건 남은 사람들의 몫이고, 월급 받는 임원들의 책임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나의 평판을 깎아먹지 않을 안전한 명분이다. '일신상의 사유',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 같은 모범답안이 존재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감정 배설의 시원함은 5분이지만, '불평 많은 퇴사자'라는 꼬리표는 5년을 갈 수도 있다.
셋째, 레퍼런스 체크의 공포: 적을 만들지 마라
업계는 생각보다 좁고, 인사팀과 팀장들의 네트워크는 촘촘하다. 당신이 이직하려는 회사가 평판 조회를 할 때, 누구에게 전화할까? 슬프게도 지금 당신이 꼴 보기 싫어하는 바로 그 상사일 확률이 높다.
억지로 웃으며 송별 회식을 하거나, 마음에 없는 감사를 표할 필요까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일은 깔끔하게 했던 사람', '마무리는 확실했던 사람'이라는 팩트 하나는 남겨야 한다.
감정적으로 싸우지 말고, 기능적으로 완벽하게 헤어져라. 마지막 날 웃으며 악수하는 것은 상사를 존경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내 커리어에 지뢰를 심지 않기 위한 고도의 비즈니스 전략이다.
이별은 감정 정리가 아니라 '계산 종료'다
프로답게 계산기를 두드려보자. 깽판 치고 얻는 순간의 사이다와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얻는 평판의 안전함. 어느 쪽이 남는 장사인가? 진짜 'Good Goodbye'는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 것이 아니다. 내 통장에 퇴직금이 정확히 입금되고, 전 직장에서 업무 관련 연락이 오지 않으며, 이직한 회사에서 "전 직장 평판이 좋으시네요"라는 말을 듣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그리고 가장 현실적인 'Good Goodbye'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