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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의 로망 카라반

by 해리안

캠핑을 시작한 건 2015년도였다. 캠핑 용품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던 시절, 친구에게 타프 하나 의자 두 개를 빌려서 7월 더운 여름날에 상암동 노을캠핑장에 올라갔다. 한 시간 동안 타프를 치며 낑낑거린 후에, 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며 행복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에 텐트, 의자, 테이블 등등 캠핑 용품을 하나씩 사서 모았고, 자력으로 캠핑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작은 녀석이 태어나기 전이라, 큰애랑 둘이서도 다녀보고, 와이프랑 셋이서도 다녀봤었다. 2016년에 몽산포를 처음 갔었는데, 일요일 오후에 도착한지라 한적하게 소위 말하는 전세 캠을 즐겼었다. 그때의 그 평화로움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즈음부터 한국에 캠핑붐이 일었고 전국 각지에 캠퍼들이 많아졌다는 점이었다. 가고 싶은 캠핑장은 늘 예약이 꽉 차 있어 갈 수가 없었다. 우리 가족이 좋아했던 몽산포 캠핑장은 선착순이라 예약 전쟁에서는 예외였지만, 대신 주말에는 늘 난민촌이었다. 차를 바꿀 수는 없어 세단 트렁크에 짐을 싣고 다녔어야 하는데, 짐 챙기는데 반나절, 다녀와서 정리하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또 짐이 많아지면 불가피하게 캠핑장에 가서 세팅을 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거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굉장히 우스운 패턴의 캠핑을 반복했다. 전날 밤부터 짐 챙김, 아침 내내 차에 짐 테트리스 하기, 캠핑장 도착하면 두세 시간은 사이트 세팅하기, 이미 어둑어둑해진 시간에 저녁 준비하기, 밥 먹고 나면 지쳐 쓰러져 잠들기, 다음날 아침 먹고 철수 준비하기, 다시 트렁크 테트리스, 돌아오면 또 반나절은 짐 정리하기.. 언젠가부터 캠핑은 부담스러움이 되었다. 아침에 한바탕 난리를 부리고 출발을 하다 보니 짜증지수가 높아서, 애꿎은 아이들에게 성을 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캠핑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일 년에 한 번 정도나 나가는 수준이 되었다.


당시에 가을에 한 번씩은 아버지, 매형, 조카와 우리 집 남자 셋이 모여서 '남자들만의 캠핑'을 갔었다. 2019년에도 한글날 연휴를 기회로 몽산포를 다시 갔었다. 이때 진정한 난민촌 생활을 경험했는데, 도처에 텐트가 널려있어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려 헤맬 정도였다. 어느 때처럼 사이트 세팅에 열을 올리다 지쳐 너부러져 있을 때, 우리 옆 사이트에 남자 셋이 트레일러를 하나 끌고 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텐트 트레일러였는데, 당시에는 그게 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우리는 사이트를 구축한다고 세 시간 동안 걸쭉한 육수를 쏟아내고 있었는데, 그쪽 팀은 차에서 내리더니 셋이서 몇 번 레버를 돌려 텐트를 세웠다. 내 눈앞에서 딱 오분만에 사이트를 구축하더니, 트렁크에서 삽과 호미 장화를 꺼내 챙긴 후 유유히 갯벌로 나갔다. "아, 저게 캠핑인데, 저렇게 즐기려고 오는 건데, 왜 나는 노동을 하러 여기까지 왔을까." 소위 말하는 현타가 심하게 왔다. 그날 이후로 캠핑을 끊었고, 텐트 트레일러를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카라반의 세계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난민촌 같은 텐트들 속에서 빛나던 그 카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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