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알아본 것은 소형 카고 트레일러였다. 일단 짐을 집에 보관하지 않고, 주차장에 늘 보관만 할 수 있다면 트렁크에 테트리스 해야 하는 스트레스도 없어질 것이고, 캠핑을 조금은 쉽게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국산 소형 트레일러도 굉장히 많아져서 가격대도 크게 부담은 없었다. 트레일러가 작아서 별도의 면허가 필요하지도 않다고 했다. 하지만 이 트레일러로는 몽산포에서 만난 사나이들과 같은 자유를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캠핑장에 가서 몇 시간 동안 사이트를 구축해야 한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조금 더 투자를 하기로 결정했다.
두 번째 후보는 텐트+트레일러였다. 몽산포에서 내 눈을 홀려버린 바로 그 모델이다. 알아보니 텐트레일러라 불리는 제품이었고, 사람들의 평가도 좋은 편이었다.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텐트 설치가 10분 내외로 가능하다는 부분이었다. 짐을 옮길 필요도 없고, 텐트 설치도 가능하니, 내 고민은 90% 정도 해결된 셈이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천만 원 정도의 가격을 투자하자니 왠지 조금 부족한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가장 큰 단점은 텐트는 텐트라는 점이었다. 눈이나 비가 온다면 집에 와서 텐트를 말려야 하는데 지하 주차장 밖에 없는 우리 환경에서는 꽤 어려운 일일 것 같았다. 공간이 협소하니 잠자는 공간으로만 사용되고, 취사 등을 위한 공간은 별도로 꾸며야 한다는 점도 단점이었다. 휴식, 취침, 취사가 실내에서 가능한 케이스를 생각하다 보니 결국은 하드탑 트레일러, 카라반으로 관심이 옮겨져 갔다.
카라반에 대해 고민할 부분은 크게 세 가지였다. 어디에 보관하지? 운전은 어떻게 하지? 어떤 생활을 할 거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싶다면 가능한 모델은 한두 개로 좁혀진다. 장축 기준 4미터 이내일 것. 높이는 2미터 이내일 것. 초소형 카라반들이 여기에 속하는데, 귀엽고 기능성 좋은 모델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었다. 하지만 사이즈가 작다 보니 보통 성인 2명 정도가 생활 가능하였다. 아이들이 아직은 어려서 불편을 좀 감수하면 4명이 지낼 수는 있겠지만, 폭풍성장하는 녀석들을 생각하면 장기적으로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카라반 판매 업체 몇 군데를 방문했다. 실물을 보니 4명의 가족이 지내기에는 독립된 침대와 화장실이 있는 500급 이상의 유럽형 카라반은 필요할 것 같았다. 티코 사러 갔다가 그랜져 샀다는 이야기처럼, 첫 시작과는 정말 판이하게 다른 곳에서 결론이 나버렸다. 문제는 500급 카라반 정도를 운영하려면 전용 주차공간과, 공차하중이 꽤 나가는 튼튼한 견인차, 그리고 전용 견인 면허가 필요하다는 점. 그때 구원투수로 장인어른이 등장하셨다. 원래부터 카라반이나 차박에 관심이 많으셨던 장인어른이, 위 문제들을 아주 쉽게 해결해 주셨다. 30만 킬로를 넘긴 오래된 코란도가 한대 놀고 있었는데 그 차를 견인차로 쓰라고 하셨고, 주차를 할 수 있는 공간도 파주 운정에 하나 마련해 주신 것.
이제 내 로망은 현실에 꽤 가까이 다가왔다. 견인차와 주차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내가 할 일만 해결하면 됐다. 두 번의 좌절 끝에 소형 견인 면허를 취득했다. 20년 여름은 카라반 구하기가 정말 어려운 시즌이었다. 독일과 영국에서는 카라반 제조 업체들이 셧다운 되어 수입이 막혔었고, 국내에 남아있는 중고 매물들은, 해외여행에 발 묶인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나오기가 무섭게 팔려 나갔었다. 장터에서 매복하기를 수개월, 정말 운이 좋게 가까운 김포에서 내가 원하던 카라반을 만나서 구매할 수 있었다.
처음 차량을 인수받았을 때의 흥분감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반년 전 몽산포 난민촌 캠핑장에서 텐트 트레일러를 보며 부러워했던 내가 이런 하드탑 트레일러를 가질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간절히 원하면 가질 수 있다는 말이 이런 것인가. 처음 한 달간은 정박지에 가져다 둘 수가 없는 사정이 있어 동네 근린공원에 있는 주차장에 한 달 정도를 두고 지냈었다. 7월이었던가 일주일 간의 여름휴가 기간 동안 아침에 카라반에 출근해서, 창문 열어놓고 에스프레소 한잔 내려 마시고 책 보고, 낮잠 자며 보냈었다. 주말 아침에는 큰 애와 자전거 트래킹을 다녀오는 길에 카라반에 들러서 라면 하나 끓여 먹고 쉬다가 돌아오기도 하였다.
카라반 구매에는 허들이 많다. 비용도 처음 생각 대비 세배 이상 늘어났고,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주변 환경도 많이 받쳐 주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와이프와의 확실한 consensus가 중요하다. 우리는 현실적 선택을 한 셈이다. 십 년 된 고물 자동차를 바꿀 때가 되어 자금을 준비해 왔었는데, 폼생폼사로 좋은 차 뽑아서 일주일에 한 번 타고 말 거면 차라리 같은 돈을 카라반에 투자하자고 협의를 했다. 이런 모든 과정이 없었다면 아마 아직도 결정은 못한 채 애만 태우고 있었을 것 같다. 이제 이 카라반과 함께, 아이들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좋은 추억을 쌓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