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가 주말 내내 방에서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무슨 서핑을 저리 하나 싶었는데, 토요일 저녁이 다되어서 거실로 나와서는 선언을 했다. "엄마 집을 새로 지어야겠어!" 그 길로 장모님 댁으로 달려간 와이프가 세 시간 정도 토론을 한 후 최종 승인을 받아 왔다. 몇 년 전부터 내가 제안했던 안건이 드디어 채택이 된 순간이다.
요즘 들어 와이프의 최고 관심사는 부동산이었다. 사실 요즘 대한민국은 억 소리가 나는 연봉을 받는다 하여도 집을 사려면 10년은 저축을 해야 할 상황이다. 그 와중에 기본 소비지출과 아이들 육아나 교육비용을 제하고, 50 이후의 은퇴를 준비하는 연금이나 보험 등의 비용도 제한다면 20년도 모자랄 것 같다. 예전처럼 성실하게 일하고 꼬박꼬박 아껴서 저축하는 패러다임으로는 승산이 없는 셈이다. 그런 상황이니 부동산을 통한 부동산 투자만이 내 집 마련의 유일한 방법이고, 다행히 와이프는 이 분야에서 '촉'이 좋은 편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와이프가 구매를 하자고 나를 많이 설득했고, 결국은 옳은 판단이었으니까.
반면에 나는 외부의 빠른 정세 변화가 둔감한 것 같다. 나이가 들 수록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상관없는 거북이 같은 삶을 닮아간다고 할까. 다만, 와이프와 아이들과 누리는 지금의 삶이 조금 더 나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구성을 의식주라고 하는 만큼, '집'은 우리 삶에서 중요한 요소이고, 그래서 나는 집에 관심이 많다. 아이들과 앞으로 지낼 시간을 셈해보면 15년 남짓하다. 그 시간만큼은 행복하게 채워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인데, 매일 같이 '뛰지 마라'라는 잔소리를 하며 지내고 싶지는 않았다. 이왕이면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면서, 작은 식물도 키우고, 반려견도 키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매일 같이 교류를 할 수 있다면, 부모님이나 우리, 그리고 아이들 모두가 조금은 더 풍성하게 삶의 향기를 맡을 것 같았다. 이런 모든 부분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이, 어머님 댁을 토대로 새로 집을 지어 올리는 프로젝트였다.
물론 외동딸이 한참 크고 있는 손주 둘이나 데리고 들어와 산다고 하니, 장모님이 손사래를 치셨었다. 지난 십 년간 큰 녀석을 맡아 봐주셨기에 얼마나 힘든 일인 것을 잘 알고 계시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작년부터는 큰 녀석이 할머니 손을 떠나 혼자 자기 할 일을 챙기고 있는데, 그렇게 독립 아닌 독립을 하고 나니 어머니도 꽤 적적하셨던 것 같다. 와이프가 직장 생활의 어려운 점에 대해서도 어머님께 자주 말씀드리다 보니, 본인이 도움을 조금 더 줘야겠다는 생각도 하신 것 같다. 어려운 결정이 어머님을 통해서 나왔기 때문에, 그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아버님은 외동딸과 손주 둘이 들어온다고 하니 만사 OK 셨다. 역시 남자와 여자는 참 다르다.
어머님 댁은 서울 망원동에 있는 오래된 단독 주택이다. 와이프와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동창인데, 그 시절에도 그녀는 이 동네에 살았었다. 20년 전에 아버님이 새로 리모델링을 하셨는데, 공사 중간에 시공사가 잠적을 하는 바람에 엄청 고생을 하셨다고 한다. 사실 그 때문에 '집을 짓는다'는 것 자체에 장인어른이나 장모님 두 분 다 엄청난 부정적 이미지가 있으셨다. 세월이 많이 지나서 건축에 대한 시스템이나 법규, 정보 공개 등의 상황이 많이 좋아졌고, 무엇보다 공사 진행에 대해서는 와이프와 내가 책임지고 진행하겠다는 조건으로 승낙을 받았다.
50평 단독 주택에 새로 집을 지으려면 우선 건폐율과 용적률을 따져 봐야 한다. 대략적으로는 50평의 절반 정도인 25평 정도의 부지에 건물을 올릴 수가 있다. 건물 유형에 따라 층고제한이 적용되는데, 우리는 5층 정도의 건물을 올리기로 하였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2층에서 거주를 하시고, 우리는 5층을 복층으로 설계하여 지낼 계획이다. 1층은 필로티 구조로 주차장으로 활용을 하고, 2층과 3층은 임대를 주어 어머님의 노후 자금으로 사용하시기로 하였다. 대략적인 공사 비용을 평당 500만 원으로 산정을 하는데, 25평*4층이니 건설 비용은 약 5억이 예상된다. 현재까지의 계산이 맞는다면, 총 임대 주택을 3개 층을 만드는데, 1개 층의 전세금은 공사비용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2개 층에 대해서는 월세 임대를 계획한다면 월 200 이상의 임대 수익이 가능하다. 신축 건물을 올리면서 부지 전체의 가격도 상승하기 때문에, '건설이 성공적으로만' 진행된다면 경제적인 면에서나, 삶의 질에 관한 면에서나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 같다.
문제는 건설이 성공적이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라고 한다. 어떤 강의에서는 10명 중 한 두명만 처음 설계 시 계획하였던 디자인, 건설 비용, 완공 일자를 맞춘다고 한다. 그 외의 8명은? 가지 각색의 트러블에 시달리고, 최악의 경우는 완공을 못하거나, 소송에 휘말린다고 한다. 자기 집 짓기에 대한 내용은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매력은 있으나 리스크가 큰 계획이었다. 시작은 매우 즉흥적이었지만, 시행을 위해서는 정말 꼼꼼한 검토와 계획 수립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