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가을을 보내고 있다. 일을 손에 놓은지 한달이 넘어가고 있고, 조직 변경으로 상위 관리자가 바뀌었지만, 아직 만나보지도 않은 상태. 하루 8시간을 꾸역꾸역 버텨가며 보내는... 말그대로 조직적 방치 상태에 놓였다
회사가 준 소속감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내가 가지는 그 사회적 지위와 소속감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체감하고 있다. 100여명의 우리 담당 멤버들, 24명의 우리 팀원들. 9명의 우리 파트원들... 우리라 칭할 수 있었던 동료들이, 수장이 떠난 후로 순식간에 모두 흩어졌고, 그렇게 강했던 결속감은 마치 자석의 NS극이 바뀌듯이 떨어져 나갔다. 그 중에서 리더 역할을 했던 사람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깊다. 나만 해도 고작 9명의 파트 리더였지만, 그들이 내게 대하는 태도의 조그만 변화에도 마음에 상처를 받고 있다. 면직 처리된 팀장이나 담당들은 많은 모멸감을 느끼고 자존감을 바닥내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을 것 같다.
잔인한 얼굴
얼마 남지도 않은 내 자존심에 가장 스크래치를 낸 두 사건은 후임 팀장 선임건과, 기존 프로젝트의 즉시 종료 판정이었다.
함께 일하던 팀장은 여러면에서 유능한 사람이었다. 학사장교 출신이라 모든것이 FM 스타일이라는 것이 흠이라면 흠일까. 14년도에 어려운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잘 성공시켰다. 멤버들 고생은 엄청 시켰지만, 그만큼 큰 보상을 안겨주었기에 그때부터 따르게 된 것 같다. 그런데 그 FM스런 성격이 결국은 독화살로 돌아왔다. 윗분들은 고분고분하지 않은 그의 성격을 좋아하지 않았다. 모시던 상무님들께 깍듯이 대했었지만, 결국 자기를 넘어버릴 것 같아 밟아 버리는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아끼던 임원들은 단명해 버렸다. 상사 복이 없는 것일까.
이번에 결국 면직 처분을 받은 것도, 5년전부터 악연이었던 전무가 직속 상사가 되면서 된 결정이었다. 면직 처분 후에 다른 빈 자리도 많이 있었지만, 처우를 봐주지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대립관계에 있던 후배를 팀장으로 앉혀 놓았다. 물론! 그 후배는 새로온 전무 라인 사람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그동안 무엇을 위해 일해왔나라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엔지니어로서 맡은 기술을 잘 개발하고 양산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시키는 것이 임무라 생각하였는데, 그것이 주된 임무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머리로 이해되지만 마음으로는 거부한다. 이상과 현실의 극심한 대립전이 진행중이다.
프로젝트의 즉시 종료 판정 또한 다분히 정치적 판정이었다. 이제는 없어진 이전 조직에서 발의하고 진행하였던 프로젝트인데, 전무, 팀장 모두 호평을 했던 프로젝트이다. "회사의 미래를 위해서 누군가는 이런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당연히 연말에 있을 평가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했었고, 열심히 멤버들 독려해 가며 진행해왔었다. 그런데 정치적 이유로 모시던 전무님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니, 이 프로젝트들이 삽시간에 '쓸모 없는' 기술이 되었다. 새로 담당하게된 팀장에게 항변해 보았지만, 위에서 결정한 내용이니 따라야 한다고 한다. 그간 진행한 내용을 리뷰드리고 결정해 달라해도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다. 기술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고, 어느 조직의 누가 진행을 했냐가 프로젝트의 진행 여부를 결정하다니,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전출=배신자
전출 신청을 한 후로 한동안 비밀을 유지했지만, 지금은 왠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어서 오히려 편해졌다. 안됬을 경우에는 상당히 난감해 지겠지만, 그 상황은 그 때가서 고민해 보려 한다.
재미있는 것은 안좋은 상황에 놓은 많은 동료들이 나에게 '부럽다'라고 한다는 점이다. 전출=배신자라는 문화가 팽배하기 때문에 전출이 어그러질 경우 올해 고과는 반납해야한다. 그나마 신청서를 낼 수 있는 건 다행이고, 전출 신청 공지를 아예 전달 받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회사에서는 경영환경 악화 때문에 전출을 진행한다 하지만, 현업 팀장들은 자기 조직 유지를 위하여 이를 차단하였다.
나 같은 경우는 두가지 상황이 맞아 떨어져 전출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첫째는 회사의 경영환경에 대한 진단을 나름 선제적으로 하였고, 회사에 잔류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미리 했다는 점이었고, 둘째는 전출 신청이 어그러진다하더라도 받을 불이익이 최소인 상태였다는 점이다.다행이라고 생각하긴 왠지 씁슬하네.
시간이 많아 생각해 봤습니다
종일 생각할 시간이 많다 보니, 지난 12년간의 회사 생활에 대한 반추를 많이 하게 된다.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입사 1~3년까지는 최연소 박사 타이틀에 취해서 온갖 건방을 다 떨고 다녔었다. 까칠하고 비난하기 좋아하고 싹싹한 면은 1도 없는.. 얼마전 그 당시에 같이 했었던 선배들을 만났는데, 그나마 나를 좋게 봐준것에 감사하다고 해야할까.
입사 4~9년 사이에는 Task 활동을 하면서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 프로젝트 리더나 파트 리더의 기회도 이떄 얻게 되었다. 따를 만한 팀장을 처음 만났다. 그런데 문제는 분야와 윗줄. 모시던 상무님들이 두명이나 사임을 하였고, 나머지 분들은 좋은데로 떠나갔다. 우리를 데리고 가지는 않았다. 팀장만 잘 모시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팀장이 잡은 줄이 썩은 줄이면 그 아래 딸린 우리들도 다 같은 신세가 됨을 몰랐다.
입사 10~12년차가 가장 뼈아픈 기간이다. 파견을 나갔던 공장에서 뒤늦게 리더 자리를 잡고 잠시 생활을 했었는데, 그 기회를 계속 살리지는 못했다. 내가 속한 분야가 이미 너무 올드해졌고, 연구원으로서 할일은 많지 않았다. 공장을 떠나올 때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던 사업부 팀장을 따라갔으면 어떘을까.. 지금 팀장이 복귀를 강하게 희망하였고, 이곳에 돌아오면 편한 생활이 보장되었었다. 단기간의 성과, 나를 끌어줄거라 믿은 팀장.. 지금 생각해보면 멀리 내다 보지 못한 유혹에 끌려 최악의 수를 둔 것 같다.
고참이 되면서 자연스레 선배보다는 후배가 더 많아졌는데, 후배와의 관계 설정은 항상 어려운 과제였다. 정이 가는 후배나, 끌어주고 싶은 후배에게 어려운 숙제를 주었고, 이를 소화하는 이들은 좋은 관계가 되었지만, 대부분은 떨어져 나갔던 것 같다. 11년차에 본팀으로 돌아올 때 내가 붙은 수식어는 대부분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입사 때 박사 타이틀에 취해 거만했던 내모습과 마찬가지로, 11년차에 나는 그 전의 작은 성공에 취해 있었던 까다롭기만 한 선배였던 것 같다. 결국 지금 이런 상황이 되어 보니, 나를 따르는 후배가 몇 없다는 현실이 쓸쓸하다
여기가 전쟁터라지만, 밖은 지옥이야
드라마 미생에 나오는 명대사가 요즘은 자꾸 생각이 난다. 전출이 어그라질 상황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바깥 세상을 기웃거리고 있다. 예전에 연락하던 헤드헌터와 통화를 했다. 사정을 이야기 하고 구직 상황을 물어보는데, 받은 대답이 좀 황당했다. "님의 스펙과 경력으로, 지금 상황에서 동종 규모와 업계로의 이직은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사유는 회사에서 인력 유출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말인지 방귄지. 내가 잘난 인재도 아닌데, 나가는 건 또 왜 막겠다는 건가. 중견 기업도 괜찮으니 한번 살펴보라는 조언을 마지막으로 통화를 마쳤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이력서를 쓰고, 평소에 관심이 있던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하였다. 회신이 올까. 면접이라도 보게될까, 여러 생각이 머리를 휘젓는다. 지옥이라도 좋으니 나가보면 좋겠다.
나도 널 방치해서 다행이야
회사가 나를 방치하고 있지만, 나도 회사를 방치하고 있기 때문에 버틸 수 있다. 내가 회사에 메달리는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아찔하다. 실제로 주변에는 이번 인사조치 이후 면직된 분들이 많고, 그 분들은 회사에서 다시 자기를 써주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내가 그나마 이 상황에서도 '근자감'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아직은 40대가 아니라는.. 그나마 어릴 때 받아놓은 학위가 있다는 정도 아닐까. 다만 이런 근자감도 이번까지일 것 이다. 한해 한해 나이를 먹음을 잘 느끼고 있고, 우리 나라 사회에서 이미 부담스러운 연차에 돌입해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이번 생에서 회사 생활 몇 번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함이 좋겠다. 지금까지의 실패 사례를 돌이켜볼때, 난 '갱생' 과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