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계절은 어디쯤인가요?

[겨울의 문장]

by 김민경


나의 계절은 오랫동안 한 자리에 멈춰 있었다.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그들의 화사한 순간을 빚어내는 동안, 정작 나의 내면은 소리 없는 소모와 평가의 압박 속에 시들어 가고 있었다.


미용실이라는 공간은 기묘하다.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매일 수십 명의 시선과 마주해야 했다. 낯을 가리는 이가 감당하기에 거울 속으로 쏟아지는 타인의 기대와 무심한 평가, 불특정 다수와 끊임없이 이어가야 하는 대화의 문장들은 너무나 무거웠다.


거울은 타인의 아름다움을 비추는 도구였으나, 나에게는 나를 감시하고 재단하는 서슬 퍼런 감옥과도 같았다. 손끝으로는 타인의 가장 빛나는 계절을 완성해 주면서도, 정작 나의 마음은 계절의 순환을 잊은 채 무채색의 공간에 유폐되어 있었다.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해 퇴장을 선택했다. 오랫동안 손에 익어 살점처럼 느껴지던 가위를 내려놓는 일은 단순한 직업의 포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구축해 온 유일한 세계를 무너뜨리는 결단이었다. 화려한 가위 소리와 타인의 목소리가 가득하던 거울의 방을 나와, 아무도 찾지 않는 낯선 고요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마주한 첫 계절은 겨울이었다.


사람들은 겨울을 끝이라 말하지만, 나에게 겨울은 비로소 시작된 정직한 대면이었다. 소음이 사라진 방 안에서 나는 타인을 향해있던 거울을 내 쪽으로 돌려세웠다. 타인의 머리카락 끝에 맺힌 미세한 결함 대신, 내 영혼의 바닥에 가라앉은 해묵은 상처와 불안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처음 마주한 나의 민낯은 황량했다. 타인의 화사함을 위해 나를 땔감 삼아 태워버린 자리에는 차가운 재뿐이었다. 하지만 그 시린 추위는 나를 해치려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필요한 장식들을 다 털어낸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생의 골조를 확인하게 하려는, 가장 정직한 구원의 신호였다. 침묵의 시간이 깊어질수록 얼어붙은 땅 아래에서 나를 살릴 문장들을 하나씩 건져 올렸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채 오직 나를 위해 써 내려간 문장들. 그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건네는 최초의 온기였다.



이곳에 나의 사계절을 기록하기로 했다. 이 연작은 단순히 계절의 변화를 읊조리는 감상이 아니다. 치열하게 나를 지워냈던 과거로부터 나를 되찾아오는 복원의 기록이자, 타인이라는 거대한 해류 속에서 나만의 정박지를 찾아가는 항해 일지에 가깝다.


나의 계절은 거꾸로 흐른다. 추위에서 시작해 생동으로 나아가는 이 흐름은, 죽어있던 나의 감각들을 하나씩 깨워가는 재활의 과정이기도 하다. 숫자로 나누지 않은 이 투박한 기록들이, 각자의 계절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가장 추운 곳에서 발견한 구원의 문장들을 이제 조심스럽게 꺼내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