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의미의 첫 걸음

13. 달리기

by 김민경


달리기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친다

순서대로 뱉어내는 숨

손끝과 발끝이 서서히 제 온도를 찾는다


속도가 붙자

눈앞의 풍경은 잉크처럼 번지고


땅을 박차는 힘이

굳어있던 몸을 흔들어 깨우면

허공에 남은 발걸음은

조금씩 길을 낸다


귀 안을 가득 채우는 숨소리 사이로

흐릿한 것들이 제자리를 찾고


멀게만 보이던 너머가

비로소 확신으로 만져진다



-




이름만 '런닝화'였을 뿐, 신발장 구석에서 꺼낸 그것은 한 번도 길 위를 달려본 적 없는 박제된 사물이었다. 변화를 꿈꾸며 큰맘 먹고 결제했던 순간의 결의만 묻어 있을 뿐, 밑창은 돌 하나 밟아본 적 없이 매끄러웠고 천의 결은 때 한 점 타지 않은 채 지나치게 깨끗했다.


그 무결함은 오히려 나에게 모욕적으로 다가왔다. 주인인 내가 멈춰 서 있는 동안, 나를 대신해 세상으로 뻗어 나가야 했을 사물조차 고인 시간 속에 갇혀 있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봄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지나치게 하얀 운동화를 꺼내 먼지를 털어내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버거운 일이었다. 밖으로 나가겠다는 결심이 현관문까지 도달하는 데에만 며칠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어떤 날은 옷만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섰다가 다시 주저앉았고, 어떤 날은 신발을 신은 채 현관 타일 위에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다. 그때 나를 제자리에 붙들어 맨 것은 도구의 부족함이 아니라, 도구가 주는 생소한 압박감이었다.


앉은 자세로 운동화 끈을 쥐고 발등을 단단히 조여본다. 끈을 당길 때마다 질긴 나일론 줄이 손가락 마디를 파고들며 하얀 자국을 남겼다 사라졌다. 팽팽하게 당겨진 매듭이 발등을 압박해올 때 느껴지는 통증은 낯선 긴장을 동반했다. 그것은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혹은 도망치고 싶을 만큼 불안할 때 가슴 속에서 요동치던 심장 박동과 닮아 있었다.


신발이 내 발을 꽉 움켜쥐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내가 이 문을 열고 나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육체적으로 실감했다. 현관 앞에서의 그 길고 지난했던 망설임과 기다림이야말로, 사실 내가 내디딘 진정한 의미의 첫걸음이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마침내 문을 열고 나섰을 때,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봄의 온기가 아니라 아스팔트의 차갑고 정직한 딱딱함이었다. 운동화라는 얇은 고무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면의 질감이 발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보도블록의 요철, 아스팔트의 미세한 균열, 가끔 밟히는 마른 나뭇가지의 부러지는 촉각까지 밑창은 가감 없이 내 뇌로 전달했다.


그 충격은 발목을 지나 종아리로, 무릎으로, 다시 온몸으로 파동처럼 번져나갔다. 대단한 운동 능력을 갖추겠다는 야심도, 기록을 갱신하겠다는 목표도 없었다. 그저 멈춰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 안에 켜켜이 고인 공기가 탁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그 고인 숨을 어떻게든 바깥으로 밀어내고 싶었을 뿐이다. 지면은 내가 내딛는 힘만큼 정확한 크기의 반작용을 내 몸에 돌려주었다. 사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그 정직한 충돌이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막상 달리기 시작하자 세상은 아주 단순한 형태로 재편되었다. 찬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가 뜨거운 숨이 되어 빠져나가는 과정만이 유일한 진실이 되었다. 속도가 붙어 주변 풍경이 잉크처럼 번지며 흐려지는 순간, 오직 내 눈앞에 놓인 길만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 몰입의 순간 속에서 나는 확인했다. 내 마음이 결코 막다른 길에 갇혀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자국이 허공을 차고 오르며 길을 만든다는 이 명쾌한 물리적 원리를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이해하기 시작했다.


달리는 동안만큼은 타인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그들의 시선에 갇혀 지내던 시간도, 정체된 채 침잠하던 우울도 내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오직 내 호흡과 보폭만이 존재했다. 세상은 끊임없이 효율을 따지고 타인의 기록과 나를 비교하라고 재촉하지만, 운동화 끈을 묶고 길 위에 선 나는 그 모든 강요로부터 면제되었다.


내가 얼마나 뛰든, 어떤 볼품없는 자세로 숨을 몰아쉬든 아스팔트는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터질 듯 가쁜 호흡이 오히려 달콤하게 느껴지는 역설 속에서 나는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기이한 해방감을 맛보았다.


달리기가 끝나고 나면 몸 구석구석에 쟁여져 있던 묵은 공기가 빠져나간 듯했고, 머릿속을 부유하던 소음들은 비로소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것은 세상과 나 사이에 가로막혀 있던 벽에 미세한 틈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달리기를 반복할 때마다 그 틈은 조금씩 넓어지는 듯했고, 언젠가 그 틈을 지나 다시 광활한 세상 밖으로 온전히 나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품게 했다.


지금도 공기가 차갑게 스며드는 계절이면 나는 다시 길 위에 선다. 신발장 구석에서 꺼냈던 그 지나치게 깨끗했던 운동화는 이제 제법 낡아 있다. 여기저기 흙먼지가 배어 있고, 밑창의 돌기는 아스팔트와의 마찰을 견디느라 닳아 없어졌다.


하지만 나는 이 낡아버린 운동화가 처음에 보았던 그 무결한 새것보다 훨씬 아름답다고 믿는다. 닳고 해진 사물에는 함께 통과한 시간의 흔적이 남는다. 그것은 멈춰 있던 내가 세상으로 발을 내디뎠다는, 가장 정직한 물적 증거다.


지나온 시간을 증명할 마음도, 비대한 성취에 가닿으려는 미련도 없다. 그저 달리는 동안만큼은 단순해질 수 있다는 것. 멈춰 있지 않다는 감각을 잊지 않으려 오늘도 운동화 끈을 묶는다. 정직한 숨소리에 몸을 맡긴 채 나를 기어이 밀어내는 일.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나를 잊지 않으려 오늘도 길 위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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