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필사
필사
한 마디씩 깎여 나갈 때마다
문장은 한 뼘씩 길어졌다.
제 몸을 갈아 바닥을 구르는 동안
검은 흑연은 지워지지 않는 글을 남겼다.
손가락 끝에 겨우 걸린 짧은 키는
더 이상 작아질 곳 없는 절정.
이제는 쥐기보다 품어야 할 만큼 작아졌으나
너는 단 한 번도
허공에 헛된 획을 그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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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의 오른손은 차갑고 단단한 금속을 견디는 데 길들여져 있었다. 가위 고리가 닿는 자리마다 노랗고 딱딱한 굳은살이 돋아났고, 나는 그것을 생존의 훈장이라 믿으며 살았다. 그 시절의 내 손은 타인의 요구를 완성하는 유능한 도구였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가위질을 하다 보면, 손가락 끝이 저릿해오는 얼얼한 마찰이 찾아오곤 했다. 거울로 둘러싸인 미용실에서 나는 늘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물을 내놓아야 했고, 그 결과가 곧 나의 가치가 되던 날들이었다.
가위를 내려놓고 처음 연필을 쥔 날, 나는 생경한 설렘을 느꼈다. 그것은 단지 새로운 도구를 잡았다는 해방감이 아니라, 학창 시절 외에는 해본 적 없는 행위를 시작한다는 데서 오는 순수한 두근거림이었다. 기존의 딱딱한 문턱은 연필의 각도를 버텨내기에 적절한 위치가 아니었다.
연필이 머물러야 할 세 번째 손가락 첫 마디는 가위가 한 번도 침범하지 않았던, 말갛고 어린 생살의 영역이었다. 가벼운 나무 몸통이 그 무른 자리에 닿는 순간, 찌르는 듯한 감각이 전해졌지만 그 낯선 자극이 싫지 않았다. 새로운 삶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방비한 자리를 맨살로 마주하며 길들여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그 아픔을 기꺼이 감각하며 나를 다시 배우기로 했다.
아무도 없는 방, 책상 앞에 앉아 커터칼을 든다. 기계에 밀어 넣어 매끈하게 깎아낼 수도 있지만, 나는 무딘 칼날로 연필의 몸통을 조금씩 저며내는 수고를 선택한다. 칼날이 나무 결을 파고들 때 느껴지는 미세한 저항감, 그리고 사각거리는 소리. 연필을 깎는 행위는 단순히 필기 도구를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라, 흩어진 마음의 모서리를 정교하게 다듬는 의식에 가깝다.
나무 향이 콧속을 채우고 검은 흑연 가루가 손가락 끝에 묻어날 때, 나는 비로소 형언할 수 없는 평온함을 느꼈다. 깎여 나가는 나무 부스러기를 보며 어떤 거창한 의미를 떠올리지는 않았다. 다만 그 순간, 거울 속 타인의 시선도, 매출을 압박하는 숫자의 소음도 없는 오직 나만의 방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이 선명해졌다. 조금은 뭉툭해도 부러지지 않는 마음을 다듬듯, 나는 천천히 연필을 깎았다.
필사를 시작하자 막막함이 먼저 찾아왔다. 눈으로 읽을 때는 찰나였던 문장들이 손끝을 거칠 때는 왜 이리 무겁게 느껴지는지. 종이의 결과 연필심이 마찰하며 내는 소리는 고요한 방 안에서 유일한 고동 소리가 된다. 때로는 문장이 너무 깊어 연필 끝에 과한 힘이 실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연필심이 툭 부러지며 흐름이 끊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는 문장은 없었다.
얄궂게도 내가 베껴 쓴 타인의 글보다, 그 글을 쓰기 위해 연필을 쥐고 버티는 ‘행위’ 그 자체가 내 안을 더 가득 채웠다. 일 외에 다른 무언가에 이토록 집중해본 적이 있었을까. 타인의 문장을 옮겨 적는 지루한 노동 끝에, 내가 견디고 있는 것은 타인의 문장이 아니라, 그저 속절없이 흩어지던 나의 시간을 연필 끝으로 눌러 담는 법이었다. 연필 끝에서 묻어 나온 흑연이 종이 위에 단단히 박히듯, 나의 시간도 비로소 어딘가에 정착하고 있었다.
필사는 타인의 숲을 거니는 일이었지만, 그 숲을 헤치고 나아가는 발걸음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필사를 하다가 손날에 시커멓게 묻어난 자국을 보면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그것은 사라지는 노동이 아니라 쌓이는 노동의 증거였다. 한 장 한 장 채워질 때마다 손목의 관절은 뻐근해졌지만, 그 뻐근함은 미용실에서 느끼던 근육통과는 질감이 달랐다. 타인의 머리카락을 쓸어 담던 손이 이제는 타인의 지혜를 내 몸으로 통과시키는 통로가 되어 있었다.
어느 밤, 필사 대신 나에 대한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의 기억은 더욱 강렬하다. 남의 말을 빌려오는 우회로를 지나 드디어 내 안의 문장에 연필 끝을 맞댔을 때, 손가락의 붉은 열기는 비로소 의미를 찾았다.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살던 시간 동안 껍데기는 두꺼워졌지만, 연필을 쥐고 나를 기록하는 시간 동안은 내면이 단단해지고 있었다. 문장을 잇지 못해 하얀 종이를 노려보는 시간조차도 오롯이 나의 것이었다. 연필은 정직했다. 내가 고민하는 만큼 닳았고, 내가 멈추는 만큼 기다려주었다.
그 닳아짐의 끝을 응시하다 보면, 종이 위에 글을 옮겨 적는 필사(筆寫)는, 연필의 처지에서 보면 제 몸을 갈아 흔적을 남기는 필사(必死)에 가깝다. 종이와의 마찰을 견디며 제 뼈인 흑연을 조금씩 부러뜨려 문장을 그린다.
연필이 닳아진다는 것은 곧 소멸에 가까워진다는 뜻이지만, 그 궤적을 따라 비로소 읽을 수 있는 문장들이 태어난다. 검은 흑연 가루가 종이의 미세한 틈 사이로 박혀 들어갈 때, 연필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묵묵히 작아질 뿐이다. 이 사물의 정직한 소멸이, 백지 위에는 가장 선명한 삶의 기록으로 남는다.
이제 내 손에는 두 개의 성취감이 공존한다. 미용사 시절의 성취감이 매출이나 손님의 칭찬 같은 ‘결과’에서 오는 것이었다면, 연필을 쥐고 얻은 성취감은 오직 ‘과정’에서 온다.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손에 쥐기조차 힘들 만큼 작아진 몽당연필 한 자루가 남는다.
나는 이 짧아진 연필을 ‘절정’이라 부른다. 더 이상 깎일 곳도 없는 그 작은 몸뚱어리에는, 빨리 써서 결과를 내겠다는 조급함을 버리고 오직 그 시간을 견뎌낸 나의 인내가 고스란히 박혀 있다. 연필이 짧아질수록 나의 문장은 길어졌고, 연필이 소멸할수록 나의 내면은 확장되었다.
매끄러운 새 연필로 남기보다, 비록 닳아 없어질지언정 끊임없이 나만의 속도로 흔적을 남기는 고집을 택하기로 한다. 숫자가 증명하던 나의 가치는 휘발되었지만, 과정을 견뎌낸 연필 자국은 내 손마디에 든든한 품으로 남았다. 붉게 달아올랐던 생살이 기록을 지탱하는 자리가 되어주듯, 나의 봄은 그렇게 나를 다시 깎아 만드는 정직한 통증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아무 소음도 없는 방, 나는 다시 연필을 쥐고 문장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