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노력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제 삶은 노력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 가능합니다.
단 한순간도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노력이라는 가치를 가장 잘 실현한 시기는
대학 시절입니다.
공대에서 편입한 만큼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생각을 했고,
다른 학생들을 따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경쟁자들이 공부하지 않는 시간에
학습해야 앞서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벽과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한다면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게 된 계기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보신 분들을 알겠지만
하루가 말도 안 될 정도로 길어집니다.
5시간 일을 해도 아침 8 시인 걸 확인하면
왠지 모를 뿌듯함과 승리감이 들더군요.
통학 시간에도 제 손에는 전공 서적이 있었습니다.
1시간 정도 소요됐기에 이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낼 수 없었습니다.
잠깐 스마트폰을 보고 싶다는 충동은
밤 10시에 떠오른 치킨 생각처럼 강렬했지만,
경쟁자들을 생각하며 참았습니다.
"독하다."
친구들이 저에게 가장 많이 한 말입니다.
대화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혼자 밥을 먹을 정도로
저는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다 보니
학점 4.0을 넘겼고,
각종 상을 받았으며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노력은 잘못된 노력이었습니다.
목표를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만 했기에 성적에만 몰입했습니다.
높은 학점은 달콤했지만,
그만큼 위험했습니다.
마치 25일마다 들어오는
월급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열심히 할수록
목적성이 사라졌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기 위해 꿈을 꾸는
그런 주객전도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단순히 새로운 걸 배우는 걸 좋아하고,
글쓰기를 잘한다고 생각해 기자를 꿈꿨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확신이 들지 않자
언론사 인턴 생활을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실제 근무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예상보다 언론사 생활은
흥미로웠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습니다.
6개월에서 길게 1년은
개인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
수습기자 삶을 견딜 자신이 없었습니다.
글쓰기가 좋긴 했지만
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글을 쓰긴 싫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제가 원하지 않는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데스크는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느껴졌고,
각 언론사마다 존재하는 방향성에 맞춰
기사를 쓰는 일은 하기 싫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현직 기자분들을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다들 사명감 있고, 대단한 분들이지만 제가 그 삶을 견뎌내지 못할 거 같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렇게 방향성을 잃고
전혀 생각지 못한 회사에 입사합니다.
1900대 5라는 무지막지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을 당시에는 기뻤지만,
그때는 몰랐습니다.
고통의 시작이라는 걸.
프리랜서라는 삶을 살기까지
9년 동안 시행착오를 했습니다.
그 노력과 시간을
좀 더 올바른 방향에 맞게 썼다면
지금쯤 저는 좀 더 다른 길을 걷고 있을 겁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모두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사실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노력의 양보다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과연 그 노력이 여러분의 삶을 풍요롭게 할까요?"
"그 노력의 끝은 어디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까?"
아니라면 일단 펜을 내려놓고
방향성부터 찾길 바랍니다.
목적지 없이 비행하면
어느 순간 연료가 다 떨어질 거고
추락하게 될 겁니다.
방향성을 먼저 생각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