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민혁 Jan 20. 2024

불편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법

추억에 젖어사는 안타까운 사람들

광수는 어릴 적 친구다. 소위 말하는 불알친구다. 내가 그 친구랑 연락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한순간의 다툼이나 의견 충돌로 인해 마음이 상하거나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그 친구의 변하지 않는 모습 때문이었다. 광수를 포함한 여러 친구들과는 최소 20년은 알고 지냈고, 근 30년에 가까운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왕성했던 20대를 훌쩍 지난 어느 시점에 친구들의 관계도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생각에 불씨를 댕겨준 일은 내가 운영하는 회사가 성장하면서부터였다. 


그저 직장인이었을 때에도 모든 친구들과의 연락과 소통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30대를 접어들면 친구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일구어나갈 초석을 마련하는 중요한 시점임을 안다. 그렇게 삶에서 사회적인 위치를 만들어나가는 시점이 오면 친구라는 단어는 추억을 나누는 삶의 휴식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친구라는 관계는 누가 잘 나가고 누군 힘들고의 격차 따위로 깨거나 무너트릴 정도의 이슈로 쉽게 형성되지 않는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더 깊어지거나 멀어지는 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의 유무에 있다.




광수는 가끔 내가 운영하는 회사의 회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내가 바빠서 휴대폰으로 연락이 되지 않을 때 회사로 걸려온 광수의 유선전화로 인해 회사 직원들은 광수의 존재를 대부분 알고 있었다. 회식자리에서의 광수는 나를 포함한 모든 직원들에게 스스럼없이 편하고 유쾌한 모습을 보여줬다. 종종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위해 직원들이 모르는 나와의 어릴 적 이야기들로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나는 살짝 당황하기도 했지만 즐거워하는 회사 사람들의 분위기에 유쾌한 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해할 수 없는 광수의 언행이 잦아지면서였다. 


회사에는 사장인 나보다 나이가 많은 직원들도 더러 있었는데 광수는 공적인 자리에서도 우리 둘 사이의 관계에 심취한 나머지 직원들 앞에서 말실수를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태연한 척 분위기를 넘기곤 했지만 불편해하는 직원들의 모습과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광수의 인지능력이 문제였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오랜만에 직원들이랑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한 직원이 내게 말을 건넸다. 

“사장님, 저는 사장님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그런데 전에 회식자리에서 함께했던 그 친구분으로 인해 사장님에 대한 존경이 흐려지고 있습니다. 저는 사장님을 사회에서 뵌 직장 상사이자 인생 선배로서 많은 걸 배우며 감사해하고 있는데, 사장님의 친구분이 사장님의 부족했던 옛 시절의 일들을 언급하며 사장님을 깎아내리는 모습이 매우 불편해 보였습니다. 사장님과 회사에 대한 마음에 사적인 감정을 이입시키면 안 되는데 그분의 존재로 인해 종종 혼란스럽기도 하고 여러 가지가 흐트러집니다. 사장님과 회사를 위해서라도 친구분과 거리를 두는 게 어떠신지 말씀드려 봅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직원의 말에 두 가지를 느꼈다. 

이 사람은 진짜 사장인 나와 회사를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광수는 어릴 적 추억에서 헤어 나오지도 못하고 똥과 된장도 구분하지 못하는구나. 직원의 그 얘기를 들은 후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도 그제야 살펴보게 됐다. 그러고 보니 전에 퇴근시간이 맞아서 회사 앞으로 놀러 온 문철이는 광수와 달랐다. 나는 그때 문철이가 내게 ‘사장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 모습에 장난하지 말라고 핀잔을 준 적이 있었다. 그때 문철이가 하는 말이, “야 너희 회사 앞에선 보는 눈도 많은데 당연히 사장님이라고 불러야지 뭐라고 부르냐?” 하고 너스레를 떨던 게 기억이 났다. 그리곤 회사를 한참 벗어난 번화가에서 밥을 먹고 술 한 잔을 하면서도 문철이는 어릴 적의 추억을 끄집어내기보단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나중에 할 일들에 대한 아이디어와 계획들을 살펴봐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어려운 부탁도 아니어서 나는 스케줄을 훑어본 후 문철이에게 언제든 오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회사 직원들은 광수만 나의 친구인 줄 알고 문철이는 친구인 줄 모르고 있었다. 회사 내에서 마주치는 직원들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 모습과 나를 만나는 모습이 외부 사람과의 미팅인 줄 알고 있었다. 나중에 다른 직원에게 들은 바로는 자신을 내 친구라고 말하지 않고 사장님이랑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며 자신에게 많은 도움을 준 은인이라고 말하며 갔다고 했다. 그 얘기를 전해 들은 뒤부터 나는 친구라는 단어를 여러 번 곱씹으면서 자연스럽게 휴대폰의 번호를 지워나갔다. 지워나감과 동시에 차단까지 설정하고는 몇 안 남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부탁을 했다.


“친구야 미안하다. 나 앞으로 광수의 연락은 받지 않을 테니 혹시 광수가 나를 찾거나 내 안부를 물으면 그냥 모른다고 해줘라.”


친구의 관계를 정리한 후의 나의 모습과 나의 일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이 동시에 생긴 것이다. 좋은 습관은, 어디에서건 누구와의 만남이나 관계를 맺어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겠다는 마음이었고, 나쁜 습관은, 아니라고 생각되면 미련 없이 모든 걸 한순간에 끊어버리는 것이다. 아니다 싶은걸 앞뒤 안 보고 끊어버리는 행위가 그렇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나의 심신이 안정되고 평화로워지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며칠간은 잡념으로 혼자만 괴롭겠지만 이것이 불편한 것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관계란 게 그렇다. 어느 순간 어떠한 부분에 있어서 일방적인 건 어쩔 수 없다. 희생이라는 단어도 끊임없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자신만 곪아 터진다. 그리곤 철칙이 생겼다. 마음으로 결정한 그 순간까지 절대 미소를 잃지 말자는 것이다. 


만남과 관계는 무조건 좋음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한두 번 혹은 몇 번은 불편한 상황이 될 수도 있고 비판으로의 진심도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홀딱 벗겨진 진심이 반복되는 가운데, 자신이 불편하고 기분이 언짢으면 그 누구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아닌 것이다. 관계에서의 미련은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버리지도 못하고 집안 구석에 쌓여있는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것이다. 그 미련의 울타리에 둘러싸이면 정체하다가 결국엔 퇴행하는 삶의 낙오자의 모습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순수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