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

눈도 보이지 않고 말도 못 하는 병신

by 이민혁

바꿀 수 없는 것의 늪에 빠지다


학창 시절 때 유난히 친한 두 친구가 있었다. 그 둘은 항상 붙어 다녔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처럼 시끄럽게 떠들며 어울렸다기보단 짧은 대화를 나누어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였지만 형제라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뭔가 끈끈함이 느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두 친구의 가정사가 비슷했다. 나는 그들과 ‘절친’은 아니었지만 친구들이 어울릴 때면 늘 함께했기에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하는지 정도는 대충 알고 있었다.


두 친구는 늘 같은 고민으로 대화를 했지만 받아들이는 모습은 서로가 달랐다. 정도의 차이는 조금 있었지만 두 친구의 아버지들은 그리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둘은 어두운 가정환경에서도 늘 밝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 친구는 감정의 기복이 조금 있어서 평소에 좋았다가도 약간의 화와 폭력성을 드러내곤 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나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를 나가려는 찰나에 그 두 친구가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펑펑 울면서 힘들어하는 그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서 엿듣게 되었다.



친구 1: “우리 부모가 그런 걸 우리가 바꿀 순 없잖아. 우리는 우리의 나은 인생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지. 그러니 너무 집안일에 신경 쓰지 말고 우선 공부에 집중하자. 그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자 방법이잖아.”

친구 2: “공부고 나발이고 집안이 개판인데 무슨 공부를 해서 나은 삶을 살자는 소리야. 넌 좀 상황이 나아서 공부할 맛이 나니? 난 지긋지긋한 집구석 때문에 아무것도 하기 싫어. 내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간다고 우리 부모가 바뀌고 우리 집이 바뀔 것 같아? 헛소리 집어치워. 다 필요 없으니까.”



나는 그 친구가 그렇게까지 힘든 고민이 있는 줄 몰랐다. 가정이 조금 불우하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지, 가슴에 쌓아둔 것이 이토록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친구와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 비밀을 몰래 엿들은 후로 먼저 말도 걸어보고 매점에서 빵과 음료수도 몇 번 사주곤 했다. 그래도 그 친구는 모나거나 삐딱하진 않아서 내 호의를 받고 고맙다며 웃어주기도 했다. 나도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어서 내 앞가림이나 잘해야 했지만 진심으로 그 두 친구가 좋은 대학도 가고 잘 되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시간이 한참 흘러 성인이 된 나는 다른 동창 친구들에게 궁금했던 두 친구들의 소식을 물어보았다. 역시나 긍정적이던 한 친구는 서울의 좋은 대학을 나와서 전공했던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도 많이 벌고 잘살고 있다고 한다. 반면 늘 괴롭고 힘들어하던 다른 친구의 소식을 아는 동창들은 아무도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도 이사를 갔고 모든 연락처도 바뀌었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만 아마도 그때의 암울한 모습으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면 굳이 다른 친구들과의 연락을 일부러 끊을 리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도 어릴 때 그 친구의 좋은 모습을 기억하며 큰 별일 없이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의 기도를 여전히 속으로 하고 있다.



눈도 보이지 않고 말도 못 하는 병신


그 친구를 생각하면 나 역시 바꿀 수 없는 현실의 것들에 괴로워하던 예전의 모습과 닮아서 안타까움이 앞선다. 실은 나도 쉽게 바꿀 수 없고 숨기고 싶던 단점들로 인해 10대와 20대를 흘려보냈으니 말이다. 내 젊은 날의 청춘은 온통 말도 잘 못 하는 ‘어버버 병신의 모습’과 ‘애꾸눈 장님’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결국엔 나아지는 것 없이 침몰하고 말았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아서 실수하는 모든 것들을 대충 웃으며 넘기고 살았다. 한쪽 눈만 갖고 생활하는 일상이 당시엔 지금만큼 익숙하지 않아서 쉽게 피로해지는 육체를 그 누구에게도 구체적으로 설명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안 보이는 눈이 불편해서 완전한 장님이 되지 않기 위해 보이는 눈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하는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이 나를 지배해 버렸다. 육체적인 장애도 장애였지만 평범한 일상에서 내가 말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할 때의 그 비참함과 수치스러움은 종종 나쁜 생각으로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당시엔 스스로나 사회적으로 더 나아지고 발전되고 싶은 마음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평범하게 남들처럼 하고 싶은 말, 할 말을 자연스럽게만 할 수 있다면 세상에 바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 시절의 하루하루는 온통 ‘말실수하지 말아야지’, ‘최대한 말을 안 하고 하루를 보내야지’, ‘발음이 잘 나오지 않는 말은 다른 어떤 단어로 돌려서 말할까’ 등의 순간순간을 아무렇지 않게 무사히 보낼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었다. 수치스럽게 살고 싶지 않다는 욕망은 크다 못해 나의 전부였다. 말더듬증을 고쳐보려고 학원과 기관을 수차례 알아보았다. 그러나 서울뿐만이 아닌 다른 지방의 여러 곳을 알아보고 다녔어도 20대가 끝날 때까지 나아지는 건 거의 없었다. 부모님에게조차 더 이상 짐이 되기 싫어서 창피함에 편지만 써 놓고 가출을 하기도 했었다. 쉽게 고쳐지지 않는 장애를 비관만 하며 빠져나올 수 없는 늪지대를 황금 같은 시절 내내 헤매고 살았다.


이제야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정말 아름다운 날들을 참으로 바보같이 살았었다. 뭐든 할 수 있는 아름답던 20대의 많은 시간을 스스로 자책만 하며 흘려보낸 것이다. 공부도 안 했었고 일도 정상적으로 취직을 해서 안정적인 직장을 다녀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냥 그때마다 필요한 돈을 충당하듯 아무 일이나 하면서 대충 살았었다. 그런 자유로움마저 없었다면 육체적으로나 마음적으로 갖고 있는 나의 장애들은 아마도 곪아서 썩어 지금의 내 모습은커녕 존재조차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허송세월을 보낸 아름다운 순간들이었지만 그 의미 없어 보이는 시간들로 인해 어느 순간 나의 모습을 조금씩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바꿀 수 있는 것들에 집중했던 순간


중년의 나이가 된 지금이지만 그때의 그 단점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단지 많이 옅어졌을 뿐이다. 중요한 건 그땐 그것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는데 이제는 단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됐다. 여전히 나의 단점들은 나의 생활을 불편하게 한다. 예전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여전히 말이 종종 안 나오거나 막힌다. 그럴 때면 이 불편한 순간을 빠져나올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쓴다.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사물이나 물체를 파악하고 박자를 맞춘다. 멀리 보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이나 시계의 초침 같은 것들 말이다. 그 박자에 집중하고 심호흡을 몇 번 하면 말이 막혀서 안 나오거나 더듬대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나의 단점이 내 삶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안 보이는 불편한 눈은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나고 나니 익숙해졌다. 여전히 눈은 쉽게 피로해지긴 하지만 평소에 무리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눈 피로를 회복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행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의 삶을 정진하지 못하게 제한하는 단점을 이기는 방법은 그것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닌 바꿀 수 있는 다른 것을 찾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서른이 훌쩍 넘어서 깨달았다. 그래도 마흔이나 쉰이 넘어서까지 이것을 알지 못하고 괴로움의 늪에 빠지지 않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인생은 희로애락이라고 했다. 나쁜 일 뒤에 찾아온 기쁨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불행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젊었을 때 나를 괴롭히던 장애와 단점이 아무렇지 않게 된 중년의 나이가 되니까 또 다른 불편함이 찾아왔다. 약간의 공황장애와 극심한 이명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삶을 덮쳤다. 이로 인해 거의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외출이나 누군가를 만나는 일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원인과 해결책을 찾으러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어봤지만 큰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고통의 1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또다시 알았다. 이것 역시 정면으로 맞설 필요가 없었다. 또다시 찾아온 마음의 병으로 인해 삶을 멈추는 일을 반복할 수는 없었다. 이 책의 원고를 한창 쓰고 있던 초창기에도 극심한 이명으로 인해 진도를 잘 나가지 못했었다. 그러나 원고의 마무리가 되어갈 때쯤엔 이명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쉽게 바꿀 수 없는 육체의 불편함보다 내 의지대로 해나갈 수 있는 원고 쓰기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삶에는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바꿀 수 있는 것인데도 용기가 나지 않아서 포기하거나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바꿀 수 없는 것인데도 싸우다 보면 언젠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도 있다. 생각보다 길지 않은 삶에서 자신이 선택한 길이 한없이 뚫려있는지 막혀있는지를 구분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미련한 끈기가 되어선 안 되고 안타까운 포기가 되어서도 안 된다. 내게 주어진 것, 내가 정진할 수 있는 것,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짊어져야 한다. 고난과 역경으로 힘겹게 오르는 걸 무작정 내려놓으라는 말이 아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게임에서 아이템을 모으듯 조금씩 우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최대한 빠르게 판단을 기울여야 한다.


살다 보면 두 마리 토끼를 순차적으로 잡을 수 있는 행운의 순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건 쉽지도 않고 바라서도 안 된다. 날렵하고 건강해 보이는 토끼를 먼저 잡으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면 눈앞에 보이는 아무 토끼를 먼저 잡아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두 마리 전부를 못 잡을 확률은 꽤나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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