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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혁 Sep 15. 2020

섬세하다 예민하다

널 만날 땐 섬세했는데 너와 헤어진 후 예민해졌다

섬세하다. 예민하다. 

이 두 단어가 몇 날 며칠을 머릿속을 맴돈다. 단어 자체도, 느낌도 조심스러워 섣불리 글을 써나가지 못했다.

그러던 중 "섬세한 것은 대개 예민하다."라는 구절을 만났다. 예민하니까 섬세하고, 섬세하려면 예민해야 한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대개`라는 말이 무언가 내 마음을 건드려 한참 동안 그 감정 위에서 머물렀다.


나는 섬세하다, 그러나 예민하지는 못하다.

어떠한 일을 하거나 상황에 몰입을 하면 여러 번 부르거나 건드려도 쉽게 반응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집중을 해야 할 때면 기쁜 표정도 여러 가지, 라는 것이 보이고, 슬픈 표정도 상황과 때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 보인다. 상대의 작은 표정과 몸짓에도 반응을 하며 대처하는 능력은 상승했지만 그로 이해 나 자신을 잃어버렸는지 배도 고프지 않고, 고단한 하루를 보낸 뒤에도 피로 따위가 몰려와 잠을 자거나 쉬고 싶다는 충동이 쉽사리 들지 않는다.


나는 예민하다. 그러나 섬세하지는 못하다.

예민하기 때문에 아무도 날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은 벌여 놓았는데 불편함도 모르고 치우지도 않는다. 주위는 늘 어질러져 있고 만성적인 귀찮음의 짜증과 반복의 일상으로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는 시간만 늘어간다. 아주 가끔은 숨 쉬는 것조차 의미를 잃어가는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곤 한다. 소중함으로 든든히 채워졌던 날들이 의미 없는 시간으로 꽉 막혀버린 일과가 되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널 만날 땐 섬세했는데

너와 헤어진 후 예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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