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민혁 Feb 22. 2021

“머문다”의 앞 수식어는 `영원히`가 아닌 `잠시`이다

영원한 만남도 없고 영원한 이별도 없다

2019년 초 첫 책의 계약을 끝내고 곧 출간될 책의 홍보를 위해 더욱 열심히 SNS(인스타그램)에 열중하던 때에 많은 독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뭐든 어디서든 다 그렇겠지만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신인 작가여서 많은 분이랑 소통을 하려고 노력을 정말 많이 했다. 사소한 댓글이나 메시지, 메일에 시간과 열정을 들여가며 답해주고 소통을 하였다. 나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많은 분이 응원해주었고, 책이 출간되면 여기저기 많이 알리고 홍보하겠다는 따뜻한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 피드백에 열정과 용기는 더욱 타올라 글도 계속 쓰고 활동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어떤 분의 메시지가 기억에 남는다. 연인과의 이별로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마음을 장문의 메시지로 담아 상담을 요청하였다. 상담사도 아닌 내가 뭐라고 약간은 부담도 됐지만 간절한 그분의 글귀에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보편적이면서 주관적인 생각과 이야기를 몇 번에 걸쳐 위로해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처가 아문다, 치유되는 것 같다, 고맙다, 감사하다”는 그분의 말에 나 또한 뿌듯했고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시간을 들였고, 생각과 신경도 조금 쓴 나의 열정이 금전적으로 보상은 되어주지 않았지만, 나로 인해 누군가가 어둠에서 나왔고, 새로운 삶의 태양을 맞이하는 것 같아 기분은 좋았다. 더욱이 분명 책이 출간되면 많은 홍보도 해주시고 그럴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몇 달이 흐르고 거의 일 년 정도가 흐른 것 같았다.

그분의 존재를 잊고 나 역시 내 일과 삶에 열중하며 살았다. 두 번째 책을 출간하는 시점이 오니 나의 위치도 조금은 성장한 것 같았고 독자들도 많이 늘었다. 예전보다 문의나 메시지도 많이 오는 바쁨에 불필요한 메시지를 매번 거를 수 없어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다. 수십 또는 수백 건의 메시지를 넘겨보는 중 예전에 그분과의 메시지 창을 확인 후 그분의 계정에 들어갔다. 그분과의 상담이 끝나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그분은 다른 새로운 연애를 하고 있었고, 근래의 사진을 보니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결혼도 하셨다. 

흐뭇한 마음 뒤편에 씁쓸한 마음 몇 가지가 놓였다. 일단 그분의 계정은 나와의 연결을 끊었다. 나의 계정과 연결을 끊은 건 궁금하지도 않았고, 중요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다만 몇 달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죽을 것 같던 마음이 회복되어 다른 연애를 하고 곧 결혼까지 했다는 현실이 나로선 조금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물론 사람들의 감정에는 저마다 양과 질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보상을 바라고 상담을 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때의 생각을 더듬어보면 나는 매우 열정을 다해서 상담해주었다. 그런데 내게 돌아온 건 그저 허무함뿐이었다. 몇 줄의 글로서 감사하다는 말을 끝으로 상담사인 나와는 소통을 끊었고, 그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곧바로 결혼까지 하는 매우 행복한 비단길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걷고 있었다.

너무나도 행복한 순간을 즐기고,

죽을 것만 같은 이별의 고통이 찾아오고의 반복이

그저 우리네 삶이자 인생이다.


글을 쓰기 전의 나의 모습도 그저 다를 바 없는 기쁨과 행복, 슬픔과 불행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표현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글을 쓰기 직전 수많은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와 담아둘 곳이 없어 방황하던 시점에 감정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법을 조금 익힌 것 같았다.

그리곤 또다시 포근한 생각의 구름 위에 누웠다.

“머문다”라는 것의 앞에 수식어는 `영원히`가 아닌 `잠시`인 듯하다.

만남도 이별도 영원한 만남이 없고 영원한 이별이 없듯이 잠시이다.

그 잠시 속에서 짧지만 깊고 넓은 행복을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늘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