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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혁 Nov 26. 2020

늘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꼰대는 자신이 꼰대인 줄 평생 절대 모른다

자주는 아니지만 몇몇 독자분들이 인스타그램 디엠으로 궁금한 사항을 물어온다.

"작가님 글이 좋아 책도 사보고 했는데, 작가님에 대해 인터넷에 정보가 많이 없더라고요.

실례지만 나이를 알 수 있을까요?"라는...

순간 당황을 했지만 관심을 두는 고마운 마음에 정확한 숫자를 말하진 못하고 불혹을 넘겼다고만 말했다.

그러시더니 깜짝 놀라시면서 그렇게 안 봤다고,... 30대 초반 정도로 봤다고 말씀해주셨다.

속으론 기뻤지만, 출처 없는 대답에 뻘쭘하고 갈 길을 잃은 대화의 마침표만 찍었다.

내 글과 책에선 어디에도 중년(?)의 느낌은 나지 않았고, 

잘 보이지 않지만 프로필 사진도 그 정도는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은 대면해도, 대화를 여러 차례 나누어도 상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사람인데,

그 사람이 쓴 글 몇 개, 책 한 두 권을 읽고 평가 판단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사람들은 작은 사실과 정보를 알면 마치 모든 걸 안다는 듯이 사회와 세상을 보는 근성이 있다.

세상과 사람들을 늘 새롭게 보려 하는 생각보단 쌓고 경험했던 것들로 남은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쌓인 것들이 자신의 자아를 형성하여 세상에 섞이려 하기에 

대부분에 것들의 높낮이를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관계에서도 순위를 정하고 상향과 하향을 판단하기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평생 트러블 속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나 보다.


나의 책에도 짧게 썼지만 난 이상하리만큼 꼰대 근성이 전혀 없고, 10대들에게도 절대 말을 놓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받고 싶은 만큼 타인을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몸에 밴 습관이다.

많이 알고, 많이 가졌다고, 뭐든 타인보다 수치로서 높다고 타인보다 우월에 있는 건 절대 아니다.

기성세대들이 가장 크게 실수하는 것 중 하나가 "어린것들이란!... 어린것들이 뭘!..."이다.

낙서가 덜 되어 있는 종이 같은 10대, 20대 초반 정도의 친구들에게는 삶을 어느 정도 살아본 사람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인해 창의적인 생각과 발상을 풍부하게 펼칠 수 있는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

그런 것을 갖지 못했고 가질 수도 없다면 부러워하며 무시하려는 생각보다 

눈높이를 맞춰 어울리고 흡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서양을 동경하진 않는다.

다만 부러운 것 중 하나가 노인과 손자뻘 되는 아이가 친구처럼 이야기하며 어깨동무를 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이 비단 영화의 상황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숫자에 지배되고, 숫자로 인해 관계를 맺고, 숫자로 세상을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조금이나마 거부하고 밀어내려 하지만,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니

인식은 하되 마음은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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