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럽다가도 어느새 낭만적이고, 조용하다가도 금방 활기를 띠곤 했다
외로웠던 부다페스트를 밤새 달려 새벽녘 프라하에 도착했다. 한숨 푹 자긴 했지만 여전히 어깨는 긴장감으로 굳어 있었다. 부다페스트보단 덜하지만 어쩐지 음산한 중앙역, 아직 날도 다 밝지 않은 새벽 7시, 6월 말인데도 여전히 써늘한 날씨. 코루나만 얼른 인출하고선 가디건에 스카프까지 두르고 호스텔을 찾아 길을 떠났다.
다행히도 프라하는 공부를 많이 해둔 곳이었다. 호스텔 가는 법도 착실히 익혀두고 트램 표 사는 법, 트램 타는 법도 꼼꼼히 알아뒀다. 지하철에서 트램으로 갈아타고 까를교 바로 앞에 있는 호스텔로 들어갔다. 체크인 시간은 오후라 이날도 캐리어만 맡겨두고 거리로 나왔다. 한국이라면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할 시간이지만 까를교는 한산했다. 그 시간에 까를교에 있는 사람은 나와 내게 사진을 부탁하던 한국인 여행자 한 명뿐.
그리고 나는 프라하를 떠나기 전까지 그렇게 한산한 까를교를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희귀한 광경인 줄 알았다면 사진 찍어둘걸. 그땐 미처 몰랐다.
해가 떠도 프라하는 아주 추웠다. 바람이 너무 차가워 얇은 가디건에 스카프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정도. 부다페스트에서도 버텼건만, 프라하 첫날 몇 시간만에 패배를 선언하고 자라에서 가죽재킷을 사고야 말았다. 그리고 나는 삼일 내내 가죽재킷만 입고 다녔다.
따뜻해지니 비로소 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가 올 듯 말듯한 하늘, 약간은 흐린 빛이 잘 어울리는 고풍스러운 건물들, 알록달록한 지붕, 꽤 밝아 보이는 사람들(죄다 여행객이겠지만). 프라하는 참 예쁜 도시였다.
알록달록 참 예쁘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그야말로 흐르는 곳이라 관광객도 정말 많았다. 실제로 현지인보다 관광객이 훨씬 많다고 했다. 지나가는 백 명 중에 한 명쯤 현지인이었을까?
어딜 가도 사람들은 웃고, 악기를 연주하고 음악을 듣고 맥주를 마셨다. 지도 없이 아무 데나 걸어 다녀도 지리가 금방 눈에 익을 만큼 작은 구시가지. 이곳저곳 쏘다니다가 까를교 한 편에 앉아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을 들었다.
어느 도시나 그렇겠지만, 프라하는 참 이야기가 많아서 고작 며칠 머무르는 것으론 성에 차지 않는 곳이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국에 무려 500년이나 지배당했던 체코가 독립선언문을 읽어 내린 시민회관(Obecni Dum, 직역하면 시민의 집) 앞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고, 교과서에서 배웠던 프라하의 봄에 대한 이야기를, 수많은 사람들이 그 봄을 만들기 위해 자유를 외치며 죽어간 거리에서 들었다. 단 한 번 지나가는 것으로, 단 한 번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는 그 거리에 쌓인 이야기를 반의 반도 읽어내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자연스레 비슷한 고통의 역사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역사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목도했다. 체코의 독립을 선언한 발코니를 보며 감동받는 동시에 광주는 얼마나 훼손되고 폄훼되는지를 떠올렸다.
부다페스트에서 못 보고 온 야경을 프라하에서 대신 보기라도 하려는 듯, 프라하에서 지내던 삼일 내내 나는 야경을 보러 다녔다. 하루는 혼자 가볍게 까를교를 거닐었고 하루는 동행들과 꽤 먼 곳까지 다녀왔다. 마지막 날은 프라하에서 재회한 애인과 골목골목을 누볐다.
프라하는 낮과 밤이 정말 다른 도시다. 낮엔 활기찬 춤곡의 선율이 들릴 것 같은 도시라면 밤엔 느릿한 재즈가 재생되는 것 같달까. 관광도시답게 밤에도 이곳저곳 활기차고 꽤 유명한 클럽도 있는 곳이지만, 그 활기 속에서도 낭만이 느껴지는 프라하의 밤.
두 번째 도시 프라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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