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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Oct 17. 2016

낭만의 도시, 베네치아

너무 짧았던 하루 반

다섯 번째 도시, 잘츠부르크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도착한 베네치아. 


부다페스트에서 프라하까지 야간열차 한 번 타봤다고 이번에는 여유만만하게 야간열차를 기다렸다 탔는데, 세상에나. 당연히 모두 잘츠부르크에서 타는 줄 알았는데 이미 두 명은 이미 자고 있었다. (아침에 들어보니 빈에서 출발했다고.)


그런데 내 침대는 3층, 지나치게 높았고 사다리는 너무 무거웠다. 자는 사람들 깨울까 봐 최대한 조용히 올라갔는데 웬걸, 허리도 못 펼 정도로 천장이 가까웠다. 그렇게 높은데 침대엔 작은 팔걸이 하나뿐. 떨어지면 최고 중상이다 싶어 벽에 꼭 붙어 잤다. 


기차는 부다-프라하 야간열차보다 훨씬 깨끗하고 아주 시원하다 못해 추웠지만 정말 불편했다. 혹시라도 누군가 야간열차 예약을 하려고 한다면, 그전에 이 글을 본다면 부디 제발 아래층으로 예약하시길....


그렇게라도 자면서 도착한 베네치아. 아침에 준비가 늦어 못 내릴 뻔했다. 기차는 자그레브까지 가는 거였는데(...) 겨우겨우 닫힌 문 열어가며 떠나려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베네치아에 당도했다. 


씻지도 못하고 모자는 망가지고, 짐 정리도 제대로 못하고. 야간열차의 여파로 나는 아주 꾀죄죄했지만 베네치아는 정말 반짝반짝, 그 자체였다.





실은 베네치아는 크게 기대한 도시가 아니었다. 잘츠부르크에서 피렌체로 바로 넘어가고 싶었는데 영 여의치 않아 경유지로 선택했던 도시. 많이들 아름답다고 했지만, 그냥 상업도시일 것 같아서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었던 것이다. 직접 와서 본 베네치아는 상업도시가 맞다. 비싸고 비싸며 비싸다... 


하지만 아침 햇볕에 반짝이는 바다를 보는 순간, 다들 베니스-베니스 하는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밤보다 낮이, 낮보다 아침 햇살에 더 아름다운 도시. 수상도시인만큼 정말 어마어마하게 더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어딜 가서 이렇게 매일 반짝이는 바다를 가르며 다닐 수 있을까? 알록달록한 건물보다 바다의 반짝임이 더 아름다웠던 베네치아.



알록달록 색색으로 물든 모습도 아름다웠다. 상큼하고 활기차다. 파란 배를 몰고 빨간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는 이탈리아노





첫날은 온통 바다, 온통 바포레토만 타고 다니며 바닷바람을 맘껏 맞았다. 


해 지는 베네치아



밤 깊은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엔 해가 지면 마주 본 두 카페에서 두 밴드가 연주를 시작한다. 귀에 익은 곡들이 광장을 가득 채우고 우린 카페 손님들 뒤에 서서, 산 마르코 광장 아무 데나 털썩 앉아서 음악을 들었다. 밤이 되어도 베네치아의 공기는 뜨뜻했고, 베니스 모기는 아주 지독했다.





베네치아를 떠나는 날 아침,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섬을 돌아보고 싶단 생각에 캐리어를 호스텔에 맡기고 바포레토 드라이브를 나섰다. 섬을 한 바퀴 돌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산 마르코 광장까지만 가기로 하고 섬 밖으로 크게 돌아가는 바포레토를 탔다.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렸지만 우리는 이 짧은 일정이 아쉬워 조금만 더 가보기로 했다. 한 정거장만 더, 한 정거장만 더, 하다가 내렸던 곳. 본 섬을 떠나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섬의 중심부보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곳이었다. 



작은 골목, 빛바랬지만 여전히 예쁜 알록달록 색색들, 쨍한 햇볕 아래 널린 귀여운 빨래들. 카메라 든 관광객보다 동네 주민이 많던 마을. 


어딜 가나 빨래는 사랑스럽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멀리 와서 돌아가는 길은 험난했다. 눈에 밟히는 골목들을 놓아두고 허겁지겁 중앙역으로 향했다. 겨우 산 마르코 광장까지 걸어가서 배를 탔는데, 고장이 났는지 원래 루트에서 벗어난 곳에서 정박해 다른 배로 갈아타게 되었다. 


나는 기차 놓칠까 봐 안절부절, 애인은 나를 달래며 겨우 중앙역 도착. 도착하자마자 호스텔로 날아가 캐리어 두 개에 배낭 두 개를 끌고 들고 역까지 날아왔다. 덕분에 무사히 피렌체 가는 기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이별을 아쉬워하다가 좋았던 기억마저 꼬아버릴 뻔했다. 다음엔 천천히 안녕해야지, 하고 다짐한다. 늘 어렵고 늘 잘 안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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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민하(mano/minami)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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