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그림자를 찾는 시간

by 공작

#감나무

전주시 완산구 용진면 산정리 백자동 332


나의 본적이다.


시골집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다.
가을이면 가지마다 주황빛 감이 열렸고, 그 아래로는 마당 한편에 텃밭이 있었다.

감나무는 우리 집을 지켜주는 든든한 기둥 같았다.

안채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바깥채에는 우리 가족이 살았다.

전쟁 이후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전남 함평에서, 전주로 와서 터를 잡고 직접 집을 지었다고 했다.

자식들이 자라고, 식구가 늘면서 몇십 년에 걸쳐, 그 집은 수도 없이 많은 보수작업 끝에 점점 집의 형태를

갖춰갔다.
동생과 나는 안채와 바깥채를 오가며 숨바꼭질을 했다.
그러면 누가 먼저 닿나 내기하듯 전속력으로 달리다 넘어져 울기도 했다.
마루에 앉아 정면으로 감나무를 올려다보면

계절은 감나무 가지 사이사이를 통과해 흘렀다.


가을이면 흑설탕을 품은 커다란 감을 실컷 깎아 먹고 나서 남은 것들은

장독 안에 감을 오래 넣어두었다가 희눈이 내리는 겨울날이면, 할머니는 숟가락과 함께 홍시가 된

감을 한 개씩 꺼내주었다. 추운 겨울날 따듯한 아랫목에서 , 숟가락으로 홍시 껍질까지

혙바닥으로 핥아먹었다. 입안에 퍼지던 달콤함과 이 불 속의 아늑함. 그날들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해 어떤 사람들이 큰 다라를 가지고 와서, 우리 허락도 없이

우리를 품고 자란 감나무를 마구 흔들고 작대기로 쥐어팼다.

한평생 감 따는 것을 지켜본 아이로서 감은 그렇게 따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긴 막대기로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똑하고 따야 하는 것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처음 감을 따는

그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할머니와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지켜보았다.


사업에 실패한 아빠가 우리 집을 팔았고, 그 순간부터 감나무도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까치 먹으라고 남겨두는 감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까치가 먹을 것도 안 남기고

다 털어갔다. 우리가 이사도 가기 전에 감나무가 자기네 것이라 우기는 그 뻔뻔함에 치가 떨렸다.


어떤 것들은 뿌리째 뽑히지 않아도, 그저 속이 비어버린 채 허무하게 사라진다.

우스꽝스러운 사람들에 의해서. 때론 억울함을 토로할 시간도 없이.


이따금 감나무를 보면, 나는 시선을 거둘 수 없다.

우리 감나무도 여전히 , 그 집에 서 있을까.

까치가 먹을 감은 남겨져있을까.


가끔 감나무를 생각한다.

그 아래서 울고 웃던 우리가,

아직도 그 어디엔가 앉아 있는 듯한 착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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